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영암군민들은 민선6기에 이어, 전동평 군수를 선택했다. ‘2018영암방문의 해’를 맞아 300만명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왕인문화축제를 시작으로 사계절 다양한 관광축제를 개최하고, 군 역사상 최초로 전남체전의 성공적인 개최와 종합우승이라는 쾌거도 이뤄냈다. 군민들의 선택으로 민선7기에도 6만 군민과 함께 꾸는 ‘군민대통합과 군민행복시대 완성’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전동평 군수를 만나봤다.■군민 모두의 관심사인 군민 복지정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지난 4년 동안 어르신들께 최고로 반응이 좋았던 목욕비와 이미용비 지원은 연차적으로 확대하여 연40매까지 지급할 계획입니다. 폭염 속 무더위쉼터로도 역할을 다해주었던 마을경로당에는 부식비를 점진적으
항·포구가 발달한 영산지중해 중심지, 영암마한의 심장이었던 영산지중해의 관문에 위치한 영암지역에 있는 크고 작은 항구들을 중심으로 대외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러 차례의 제방건설로 지금은 대부분 항구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지만 영암군의 11개 읍·면 모두에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영암에는 현재 행정 구역 명칭인 도포면·서호면을 비롯하여 남아 있는 지명을 통해 포구가 24개, 나루터 23개 등 모두 47개의 배가 드나드는 항구들이 있었다.심지어 가장 내륙에 속하고 제법 지대가 높은 금정면에도 포구와 나루터가 각 하나씩 있을 정도였다. 이 가운데 포구와 나루터가 가장 많았던 지역은 군서면과 삼호읍 지역이다. 왕인박사유적지가 위치한 군서면에는 2개의 포구와 9개의 나루터가, 삼호읍에는 8개의 포구
반민특위 조사위원 김준연미군정이 약 3년 만에 끝나고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였다. 남한은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 헌법체제에서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정부가 수립되었다.유엔은 남한의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고 결의를 했다. 반면 북한은 1945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이승만의 신생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선결문제는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요,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반민족 행위자 처벌로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국회는 1948년 9월 29일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제정하여 이에 근거하여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를 1949년 9월까지 활동할 수 있는 한시적 기구
옹관묘는 한반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매장방식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옹관묘는 신석기시대에 처음 등장하는데, 진주 상촌리 유적에서 주거지 내부에 단옹을 세워 매장하는 방식이 확인되었다.영산강유역의 첫 옹관 출토는 1963년 신창동 유적에서였다. BC1세기에서 AD1세기 무렵으로 편년된 이 옹관은 납작한 바닥에 동체의 중하부가 볼록하고 외반구연인 재지 계통의 송국리형 토기와 삼각형 점토대 토기의 양쪽에 쇠뿔 모양 손잡이가 달린 고조선 계통의 명사리식 토기가 결합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신창동식 옹관'이라고 명명될 정도로 이 지역의 독자적 특성을 지닌 토기였다. 이 옹관이 전용 옹관이 아닌 실생활에서 사용된 점토대토기를 이용하고 있어 본격적인 옹관의 이행기 이전으로 추정되고
미군의 영암진주미군이 영암에 진주한 시기는 1945년 11월 초순이었다. 영암에 진주한 미군은 목포에 주둔했던 미 제55보병 중대로 이 중에서 15명을 영암에 파견하여 행정과 치안을 지휘하고 감독하였다.미군정은 전술한 바와 같이 조선공산당을 원천적으로 탄압하였다. 미군의 배치가 불완전한 단계에서는 조선공산당의 인민위원회 활동이 용인되었다. 이때 까지는 남한 거의 전역에 군단위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그 대부분이 얼마 동안이라도 치안질서와 행정기능을 수행했다. 인공에서는 이시기를 ‘합법시기’라 하였다.미군정의 인민위원회 파괴공작은 영암에도 진행되어 영암인민위원회는 46년 2월 미군정에 의해 해산되면서, 군수 조극환과 보안서장 조덕환이 정권탈취와 불법테러 혐의로 구속되었다. 미군정은 유성계
필자는 본란을 통해 누차 영암이 마한의 심장임을 여러 기록과 유물들을 분석하여 실증하려 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그동안 영암에서 이를 간단히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오늘은 그 발표문을 토대로 그동안 다룬 내용을 압축하여 영암을 ‘마한의 심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까닭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내용을 적어도 우리 ‘영암인’들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독자적인 문화 ‘영산지중해’의 센터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영암 아리랑’으로 유명한 가수 하춘화, 바둑계에서 ‘영원한 국수’로 알려져 있는 조훈현 모두 영암 출신들이다. 이들의 몸에 배어 있는 뛰어난 창조적인 재능들은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영암의 DNA(유전인자) 때문이라고 믿어진
곳곳에 만세의 함성소리영암에서도 일본 천황의 항복소식은 8월15일 당일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고 있었다. 해방소식이 전해지자 밭에서 김을 매고 논에서 피를 뽑던 농민들도 일손을 멈추고 거리로 달려 나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러 영암 일대가 만세소리와 태극기의 물결로 가득하여 해방을 실감하였다.그런가하면 일부 청년들은 영암공원에 올라가 일본인에 의하여 강제로 참배(參拜)를 해오던 신사(神社)에 불을 질렀다. 일본경찰이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숨을 죽이고 철수 준비에 여념이 없이 서두르고 있었다. 해방당시 영암군청의 직원 구성을 보면 일본인은 5~6명이었고, 한국인이 70명 정도였으며, 군수는 일본인이나 그의 이름에 관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영암면장은 일본인 하합(河合)으로 그는
마한에서 신라와 가야의 원형인 진한과 변한이 갈라져 나왔고 백제 역시 마한에서 땅을 얻어 세워진 나라이다. 곧 마한은 백제는 물론 신라, 가야 등 한반도 남부에 있는 고대국가의 뿌리인 셈이다. 따라서 마한사가 한국 고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백제의 일부로 인식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가야사와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특히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진흥과 관련하여 관심이 일어나고 있는 마한사 연구는 전남도와 지자체들을 중심으로 기본계획이 수립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짜깁기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좀더 거시적인 접근과 함께 미시적인 연구도 함께 진행되지 않
미군의 옷을 갈아입은 일본 통치물론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전술 한바와 같이 일본총독부에서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을 고문으로, 실무자들의 업무지속, 일본인들에 의해 작성된 350권에 달하는 비망록, 한국인 관리들의 임명에 대한 일본인의 추천권 등은 ‘미군의 옷을 갈아입은 일본의 통치’였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미국의 대한 정책은 민족의 자주세력을 억누르고 우파정권을 수립했다는 주장과 남한 내의 친공 세력을 분쇄하고 냉전의 최전선으로서 반공정권을 수립했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었으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할 것이다.조선총독 아베 노부유기는 일본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한반도 내에 있는 자국민의 안전귀환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치안권을 맡아줄 인사로 항복 선언 며칠 전부터 송진
지난 호에 백제가 ‘사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반면, 마한남부 연맹은 ‘매’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매를 신의 화신 또는 최초 샤만의 조상 등으로 인식되었던 시베리아 샤머니즘이 마한지역에 유포되었다는 견해가 있는데 시사적이다. 말하자면 우리 민족의 원류에 해당하는 예맥족의 새, 사슴에 대한 신앙이 지역으로 분화되었다는 것이다.부여·고구려 등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에는 사슴과 관련 언급이 빈출되고 있는데, 백제가 사슴을 희생으로 삼고 ‘부여’ 명칭이 사슴을 나타내는 퉁구스어인 ‘buyu’와 같다는 점에서 백제가 부여계통이 주류였다는 사실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반면, 신라나 마한남부 연맹 등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진한-계림·닭, 마한-매 등 새와 관계있는 언급이
들어가는 말한반도가 올해로 일본의 사슬에서 벗어난 지 73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사슬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 일제는 물러갔으나 미국과 소련의 세계정책으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미국과 소련의 군대가 점령군의 자격으로 이 땅에 진주했다.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함께 항일투쟁을 해오던 우리 민족은 미·소에 의해 적대세력으로 돌변하여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눠야 했다. 미군정을 거치면서 남한에 혼란은 가중되었고 남북한이 단독정부를 수립을 함으로써 6ㆍ25한국전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는 김일성과 스탈린 모택동의 오판에 의해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으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키고 말았다.이러한 한국사의 비극은 영암을 비켜가지 못했다. 해방직후 영암
최근 영암을 소개하는 방송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15일(금) 오후 6시 30분에 방영되는 KBS-2TV ‘생생정보’에서 월출산 구정봉 큰바위얼굴이 소개된데 이어 지난 9일(목) 오후 7시 35분에 방영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영암의 여름 보양식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국내외 산을 소개하는 KBS-2TV ‘영상앨범 산, 월출산 국립공원’이 2월 18일(일) 오전 8시 전국에 방영되기도 했다.최근 인기 탤런트 최불암이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소개된 영암의 ‘보양 밥상’은 먹을거리가 빈약하다고 말하는 영암 사람들에게 음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먹을 것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관광시대, 사라져 가는 옛 전통 영암의 ‘먹거리’를 찾아 더욱 계승 발전
‘마한의 심장, 영암’을 슬로건으로얼마 전, 어느 일간지에 ‘영산강유역의 마한사 연구현황과 과제’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본란을 통해 누차 이야기 한 영암이 ‘마한의 심장’이라는 표현을 다시 강조하였다. 교과서에 오랫동안 실려 있었던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국보 231호 ‘용범’ 즉 ‘거푸집’, 다시말해, 한반도에 독자적인 청동기 시대가 존재하였다고 하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인 이 유물이 우리 영암지역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영암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확실히 해준다고 하였다. 영암지역이 영산 지중해의 거점항구 역할을 하며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고 하는 것은, 옹관고분 중심의 영산강유역에 독창적인 석실분과 분주토기 등을 도입한 시종 옥야리 고분 등을 통해 충분히
얼마 전, 지난 4월 익산에 있는 백제 무왕의 부부 왕릉이라고 알려져 있는 쌍릉의 대왕릉 고분에서 출토된 인골이 남성 유골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오자, 그곳에서 180m 떨어져 있는 소왕릉은 왕비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며, 무왕 부부의 무덤이 보다 확실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는 서동요는 삼국유사에 실린 무왕의 혼인 설화이다. 동성왕 때 신라와 혼인 동맹한 것을 언급한 것이라는 이병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던 1980년대, 무왕의 혼인과 관련된 사실이라고 당돌하게 주장하였던 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왕은 출생 설화가 여럿이고, 한미한 출신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몰락 왕족일 가능성이 높다. 백제는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한 이후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 집 창가에길 떠난 소녀 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앉으면그 사람 목소린가 숨어 우는 바람소리둘이서 걷던 갈대밭 길에 달은 지고 있는데잊는다 하고 무슨 이유로 눈물이 날까요아아 길 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이 돌아오면쓸쓸한 갈대숲에 숨어 우는 바람소리.가슴을 적시는 서정성 짙은 가사“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 집 창가에…”로 시작되는 ‘숨어 우는 바람소리’는 영암천(덕진천)의 드넓은 갈대밭을 배경으로 한 노래다. 1993년도 김지평 작사, 김민우 작곡, 이정옥 노래로 발표되었으며, MBC 신인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해 5월 MBC 예술단 제작, 서울음반으로 발매된 ‘숨어 우는 바람소리’는 때마침 컴퓨터가 대
우리지역 마한사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상태에서 필자의 글에 대한 독자들의 격려는 많은 힘이 되어 주고 있다. 필자는 그때마다 영암이 ‘마한의 심장’이었음을 힘주어 말한다. 비록 영세한 기록과 충분치 않은 발굴조사를 토대로 어떤 특질을 찾아내는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이를 밝혀내는 것이 필자의 소명이라 생각한다.영암지역은 구석기 유적을 비롯하여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가히 ‘역사의 보물창고’라 할만 하다. 영암지역의 선사유적 및 유물에 대한 보고사례는, 1960년 시종면 신연리에서 동모·동제검파두식이 발견된 것이 최초가 아닌가 한다. 그 뒤 영암출토 동검·동모가 소개되었고, 시종면 월송리에서 타제석부·유구석부·마제석촉 등의 석기류와 무문토기·격자문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걸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그래도 우리는 곱게 그려야 해친구야 친구야 우린 모두 나그넨 걸그리운 가슴끼리 모닥불을 지피고 살자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김지평의 가요인생 ‘모종밭’은 고향1984년 10월 27일 아세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된 ‘인생은 미완성’이다. 가수 이진관이 불러 크게 히트한 이 노래 역시 덕진출신 작사가 김지평 씨의 노랫말로, 이듬해인 1985년 KBS가요대상 가요부문 작사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1986년 가톨
지난 주 LPGA사상 최저타 신기록을 세워 세계 여자골프계 역사를 새로 쓴 신북출신 향우자녀 김세영을 보며, “왜 하필 영암 출신일까”라는 자문을 해보았다. 말하자면 마한의 심장 구실을 하며 일찍부터 개방된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이 지역의 정체성이 내재화되어 김세영 같은 세계적인 인물이 탄생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지난 주말 월출산 기찬랜드 개장행사에 잠깐 다녀왔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외지인들이 눈에 띄어 보기 좋았다. 아무쪼록 ‘2018영암방문의 해’가 성공리에 이루어지길 기원해 본다. 조상숭배 사상과 복장 풍습유명한 문화 인류학자인 말리노브스키(Malinovsky)는 유족들이 사자(死者)에 대해서 품는 정서 반응에는 사자에 대한 애정과 시체에 대한 공포의 모순된 정서가 병
영암신문은 지난 6월 29일 본사에서 독자위원 6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8년 제1차 독자위원회를 개최했다.양인(영암문화관광해설사. 전 고교 수석교사), 박기주(전문의용소방대장), 전의홍(영암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 부위원장), 전성원(왕인문해교육사), 김영민(다문화학습코디 영어강사), 오미경(영암문화원)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영암신문 지면개선 방안과 지역사회 이슈에 관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문배근 발행인은 인사말에서 “신문을 발행하는데 있어서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신문사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 있어 독자위원 여러분들이 느꼈거나 주위의 여론을 허심탄회하게 말씀해달라”면서 “신문제작과 편집방향에 지역민과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독자위원회이니 만큼 더 좋은 풀뿌리신문이 될 수 있
분묘에는 그 의식(儀式)의 수행과정에서 발생한 직접적인 잔존물 또는 상장의례와 관련된 의식의 진행과정과 진행방법 등을 살필 수 있는 흔적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자료들이 모여 고대의 상장의례를 복원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하겠다. 장례의식은 그 사회의 성격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에 해당하므로, 내친 김에 마한 시대 지역의 장례의식을 더듬어 보기로 하겠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나타난 기록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보면, 마한은 “장례를 치를 때 곽(槨)은 있으나 관(棺)은 없다. 우마(牛馬)를 탈 줄 모르고 장례를 치를 때에만 우마를 쓴다(其葬有槨無棺 不知乘牛馬 牛馬盡於送死)”라 하였는데, 이는 마한의 장례와 관련된 거의 유일한 기록임에 분명하다. 마한 사람들이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