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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야리 고분 분주토기 영산지중해의 문화역량 보여줘■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49>영산지중해의 정체성 상징, 옥야리 고분 분주토기
시종 옥야리 고분 출토 토기는 외견상 왜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나, 일본의 원통 하니와 중에서 옥야리 방대형 고분 토기처럼 외반된 구연의 끝부분에 1줄의 홈이 돌려져 있는 사례가 없는 등 세부적인 특징, 제작기법은 상당히 다르다. 왼쪽 사진은 시종 옥야리 원통형 토기와 일본 하니와 토기 모습.

우리지역 마한사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상태에서 필자의 글에 대한 독자들의 격려는 많은 힘이 되어 주고 있다. 필자는 그때마다 영암이 ‘마한의 심장’이었음을 힘주어 말한다. 비록 영세한 기록과 충분치 않은 발굴조사를 토대로 어떤 특질을 찾아내는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이를 밝혀내는 것이 필자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영암지역은 구석기 유적을 비롯하여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가히 ‘역사의 보물창고’라 할만 하다. 영암지역의 선사유적 및 유물에 대한 보고사례는, 1960년 시종면 신연리에서 동모·동제검파두식이 발견된 것이 최초가 아닌가 한다. 그 뒤 영암출토 동검·동모가 소개되었고, 시종면 월송리에서 타제석부·유구석부·마제석촉 등의 석기류와 무문토기·격자문조질 토기편·김해식토기편 등의 유물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특히 영암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현재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동 거푸집은 국사 교과서에 오랫동안 수록되어 고대문화를 창조했던 영암인의 뛰어난 역량을 대내외에 과시하여 주었다.

월출산 남부와 북부에 연맹체 병립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2011년 작성한 ‘영산강유역의 고대고분 정밀분포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영암군에는 49건 187기의 고분이 있는데, 분구가 잔존해 있는 고분은 34건 104기이다. 그런데 고분들이 월출산을 경계로 저평한 구릉과 충적평야가 이어지는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으로 구분돼 분포되어 있는데, 북부지역은 인근 나주 일대의 고분이 원형이나 방형인 것과 달리, 제형의 분형을 하고 있다.

특히 시종면 만수리, 내동리, 옥야리 일대는 반남면과 인접한 지역으로 다양한 분형과 대형 고분들이 밀집되어 있다. 이와 달리 남부지역은 대형 고분보다는 금계리, 선황리 고분처럼 초기 옹관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3세기 초반 제작된 영암 선황리 출토 옹관은, 일상 용기로 사용된 옹의 형태를 지니면서도 널(棺) 형식을 띠고 있어 영산강유역에 전용옹관이 등장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유명하다.

말하자면 선황리 출토 옹관은, 일상 생활도구였던 토기를 옹관으로 이용하였던 영산강 상류의 신창동식 옹관을 계승한 것으로, 본격적인 전용옹관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선황리와 금계리 일대에도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선황리와 금계리 지역은, 고분의 성격을 통해 3세기 후반 반남지역과 통합을 한 시종지역의 정치세력과는 구분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영암의 기원을 이룬 ‘일난국’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본다.

반면 시종지역은 배후의 비옥한 영산강 충적평야에서 생산된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대외 교역의 거점 항구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던 남해포구를 중심으로, 주변 여러 나라들과 활발한 교역을 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옥야리 방대형 고분으로 대표되는 시종 일대의 거대 고분군들이 이를 말해준다. 이미 살폈듯이, 옥야리 방대형 고분은 기존의 영산강유역에 유행하였던 옹관 대신 석실분을 처음으로 받아들여 영산강식 석실분의 전형의 기틀을 닦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옥야리 고분의 석실구조는 기존의 영산강유역과 차이가 있지만, 가야, 왜 등 주변지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석실의 목주 위치나 벽석 구축방식 등 세부적인 특징은 가야, 왜 등과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분구 가장 자리에 영산강유역의 토착적 묘제인 옹관묘, 목관묘가 추가적으로 조성되고 있어 시종지역 토착세력들이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외부적 요소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영산강유역의 고대사회가 외부문화를 주체성과 개방성을 조화시키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살필 수 있다. 물론 그 중심에 고대 영암 지역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토착문화와 다양한 외래문화 접목

그런데 영산강유역의 이러한 특성이 고분 구조뿐만 아니라 옥야리 방대형 고분의 분구 주변에 세워져 있는 원통형 분주토기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고분 주변에 세워져 장식적 효과를 내는 토기라는 의미로 분주토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원래 일본 고분 시대인 4∼6세기에 유행하였던 하니와와 유사하다. 이러한 토기가 광주 월계동 전방후원형 고분 등 여러 전방후원형 고분을 비롯하여 나주 신촌리 9호분 등 영산강유역의 대형 고분들에서 출토되었다. 이를 가지고 일부에서는 왜계 고분으로 이해하기도 하였으나, 왜계 하니와와는 다른 독자적인 특성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어, 왜와 상호교류 과정에서 형성된 문화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시종 옥야리 방대형 고분의 원통형 토기는, 기존 영산강유역에서 출토된 원통형 토기와 핵심적인 특징에서는 유사성이 확인되고 있지만 그 특징의 조합 양상은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도 전체적인 형태는 광주 월계동, 명화동 고분 등에서 출토된 원통형 토기와 동일한 통형 원통형 토기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반면, 저부에 원형의 투공이 뚫린 점은, 나주 복암리 2호분, 함평 중랑 유적 등에서 출토된 호형 원통형 토기와 비슷하다.

이처럼 토기의 저부에 원형 투공이 뚫린 사례는 비슷한 양상을 띠나, 그 전체적인 형태는 약간씩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를테면 영산강유역의 호형 원통형 토기, 중서부지역 원통형 토기, 일본 고분시대 후기의 호형 하니와들은 전체적인 형태에서 거의 동일하다. 반면 시종 옥야리 방대형 고분은 평저의 통형이고, 일본의 사쿠라이시의 호케노산 고분은 원저단경호에 속한다.

독창적인 전통을 자랑하다

통형 형태에 있어서도 옥야리 방대형 고분 원통형 토기의 전체적인 외형은, 저부에서 구연부로 갈수록 완만하게 벌어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나주 복암리 2호분, 광주 월계동 1호분, 시종 태간리 자라봉 고분 등에서 출토된 토기와 비교될 수 있으나 완전하게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특징은 일본의 4단 구획된 원통형 하니와를 연상시킨다.

특히 삼각형 혹은 역삼각형, 원형 등 투창은 이를 강하게 나타내준다. 그렇지만 옥야리 고분 출토 토기는 외견상 왜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나, 일본의 원통 하니와 중에서 시종 옥야리 방대형 고분 토기처럼 외반된 구연의 끝부분에 1줄의 홈이 돌려져 있는 사례가 없는 등 세부적인 특징, 제작기법은 상당히 다르다.

이렇듯 시종 옥야리 방대형 고분 원통형 토기는 이제까지 한국이나 일본에서 출토된 원통형 토기, 하니와와는 다른 면모를 보일 뿐만 아니라 복잡한 양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들이 지역 집단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생성되었다기 보다는, 외부와의 문화적 교류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순리라 하겠다. 이를테면 시종지역의 정치세력들은 원통형 토기의 분구 수립이라는 고분축조 기술을 통하여 백제, 가야, 왜와 서로 연결을 가지며 활발히 교류를 하였다.

즉, 영산강유역이나 일본에서 고분 주변에 토기를 세우는 장송의례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다른 양상으로 발생하였지만, 서로 간의 교류를 통하여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발전되어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이러한 교류는 어디까지나 쌍방향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영산강유역의 원통형 토기와 일본의 하니와가 상호 완벽하게 동일한 것이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영산강유역에서 외부문화 증거들이 5∼6세기 고분에서 계속 보이고 있지만, 자체적인 문화 특성들이 외부문화로 완전히 대체되지 않은 채 한층 발전된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영산강유역 고대문화가 대외적인 교류를 통해 독자적인 문화특성을 만들어내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시종지역이 이러한 특성의 중심에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옥야리 고분의 호형 원통형 토기가 왜의 원통 하니와를 모델로 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 형태의 특징 일부만 받아들여 전혀 새로운 발명품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 말해주고 있다.
 

글=박해현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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