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노랫말’을 찾아(2)
덕진출신 김지평씨, 3관왕 대상 작품
1984년 가수 이진관 불러 큰 인기
인생 의미 돌아보게 한 가사 ‘매력’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걸
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곱게 그려야 해

친구야 친구야 우린 모두 나그넨 걸
그리운 가슴끼리 모닥불을 지피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

김지평의 가요인생 ‘모종밭’은 고향

1984년 10월 27일 아세아레코드사를 통해 발표된 ‘인생은 미완성’이다. 가수 이진관이 불러 크게 히트한 이 노래 역시 덕진출신 작사가 김지평 씨의 노랫말로, 이듬해인 1985년 KBS가요대상 가요부문 작사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1986년 가톨릭가요대상 작사부문 대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인 1986년 PCI 최고인기 가요대상을 연거푸 차지한 3관왕 작품이다. PCI 대상은 시상 직전까지 2년에 걸쳐 각 방송사 방송횟수를 총집계하여 1등에 주는 상이다.

이 노래는 삶은 무엇인지, 인생은 무엇인지,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시적인 가사가 매력적인 곡이다. 이 노래로 이진관은 1980년대 감성 발라드로 큰 인기를 모았다. 

특히 이 노래는 영암출신 필자의 인생관이 가장 알기 쉽게 표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즉 필자의 체험적 칠정(七情 : 喜怒哀樂愛惡慾, 모든 생활감정)이 노랫말의 중심을 이루는데 영암은 김지평의 가요인생 동안 피워 올린 작품들의 ‘모종밭’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김지평 씨의 회고담이다.

잊을 수 없는 6.25한국전쟁의 상처

아홉 살 때였다. 6.25가 터졌다. 밤에는 인민군이 와서 약탈해 가고 낮에는 경찰들이 들이닥쳐 협력자를 색출, 묶어갔다. 인민군에 딸려 간 자가 있는 집은 경찰의 핍박을 면할 수 없었고, 경찰가족이 있는 집안은 인민군의 학살을 면할 수 없었다. 필자의 집은 치명적이게도 경찰 가족이었다. 작은 누나가 경찰에게 시집을 간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인민군이 들이닥쳤다. 총을 들이대며 “경찰 가족이지?”라고 물었다. “식구 중에 경찰은 없는데요?”라고 어머니가 작게 말했다. “딸년이 경찰새끼 한테 시집갔잖아? 그 놈 여기 몇 번 왔나?” 드르륵 한번 갈기면 온 식구의 생명이 날아 갈 순간이었다. 그 때 밖에서 들어서는 한 인민군이 있었다. 그가 어머니더러 “나를 쳐다보세요!”라고 하면서 모자를 벗었다.

예전 우리 집안일을 하며 살다가 나이가 차서 딸처럼 시집을 보내준 길순이의 남편이었다. “길순이 한테 잘 해줘서 산 줄 아세요” 하고는 일행을 떠밀며 나가 버렸다.

경찰이었던 매형은 해남 화원전투에서 죽었고, 과부된 누나는 혜자라는 딸 하나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혜자만 믿고 살겠다며 희망 삼더니 혜자 또한 열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 혜자를 차가운 땅에 묻은 날 혼자 숨죽여 울던 창백한 얼굴의 누나를 잊을 수 없다. 길순이네는 전쟁 후 소식이 없다.

한 세월 흘러 필자는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수를 상대로 카운슬링에 종사하게 되었다. 당시 필자는 가톨릭에 입교했었고 그 하얀 신념으로 수녀님과 함께 사형수 카운슬링에 임했었다. 사형수의 절반쯤은 공산주의와 관련된 사상범들이었다. “경찰가족이지?”하며 총을 겨누던 인민군과 그들을 돌려 세우며 나가던 길순이의 남편이 생각났다.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남북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었다.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깊이 생각했었고, 점차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인간의 목숨은 죽어도 또 죽여도 죽지 않는 영원 불멸성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사형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죽는다. 우리는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이고, 영혼의 고향은 따로 있다. 모두가 길손인데 어느 누가 하고픈 것 다하고 죽을까 보냐. 일도 못 다한 채로 사랑도 못 다한 채로 미움도 못 다한 채로 죽는다. 죽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다. 두려워하거나 서러워 할 것이 아니다. 영원히 살 본향 천국을 바라보며, 남을 소중하게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이런 대화가 카운슬링의 주조였다. 그 때의 그 말이 노랫말이 되어 이 노래 ‘인생은 미완성’이 된 것이다.

두봉 주교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

그러면서 필자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이 노래 ‘인생은 미완성’이 KBS 가요대상을 받을 당시는 신군부 때여서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사 정신이 사회를 압도하고 있었다. 가요대상 시상작품 선정 과정에서 ‘인생은 미완성’이 뽑히자 “나라에서는 안되면 되게 하라고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쓰다가 말고, 부르다 말고… 그런 노래를 뽑을 수 있느냐?”며 세칭 조정관(정보요원) 측이 비토의견을 내는 바람에 재검토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침, 심사위원장이 시(詩)적으로 지극히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논거를 굽히지 않아 대상을 받게 되었다고 필자는 회고했다.

그리고 프랑스 신부로 26세 때 한국에 와서 신부로 15년, 주교로 21년간 활동하다 은퇴한 두봉(杜峰) 주교가 KBS-TV에 출연해서 “평생을 한국인으로 사셨는데 한국노래 중 좋아하는 노래가 있느냐?”는 사회자의 물음에 “‘인생은 미완성’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지평 씨는 “어떤 상(賞)이나 훈장보다 값진 말씀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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