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지리지 백제조에 “백제를 멸망시킨 당은 옛 백제 지역에 웅진·마한·동명 등 다섯 도독부를 설치하고, 이어 그 지방 수령으로 도독부 자사(刺史)를 삼았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서 신라에서 그 지역을 다 차지하여 웅주·전주·무주의 3주와 여러 군현을 설치하였다.”라 하여 당이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 백제 땅에 다섯 도독부를 설치하였음을 알려준다. 같은 책 백제 본기 의자왕 20년 조에는 웅진·마한·동명·금연(金漣)·덕안의 다섯 도독부를 두었다 하여 지리지에 언급되지 않은 나머지 도독부 이름이 금연과 덕안 임을 확인해준다.이들 도독부가 원래 백제의 5방이 있는 곳에 설치된 것은 아닐까? 라고 추정할 수 있다. ‘周書’와 ‘北史’ 백제전에는 중방 고사성, 동방 득안성, 남방 구지하성, 서방 도선성
나주ㆍ영암 마한축제 하나로 통합돼야오는 10월 12~13일 양일간에 걸쳐 시종 마한공원에서 마한축제가 열린다. 한국 고대사의 뿌리인 마한의 심장, 시종 일대에서 열리는 올해의 축제는 인근 쌍고분에서 신촌리 9호분 금동관과 동일한 금동관편이 출토되어 이곳이 고대 마한왕국의 중심지임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축제를 통해 고대 이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한왕국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역사성을 관광자원으로 연결하여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게 하는 전략 마련도 중요하다. 다만, 우승희 도의원도 도정질의에서 지적하였듯이, 축제가 나주와 영암에서 각기 별도로 추진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명량축제’처럼 속히 전라남도 축제로 승격되어야 한다.
영암여고, 역사탐구대회서 우승하다얼마 전, 전남대학교에서 전남교육청이 주최한 ‘제9회 전남청소년 역사탐구대회’가 열렸다. 치열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전남 중·고등학교 17개 팀이 각기 준비한 작품(보고서, 동영상)을 발표하였다.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는데, 어린 학생들이 준비하였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필자에게는 전남교육의 역동성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이날 대회에서 영암여자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최주하·강민우·김나영·최선화 등 4명이 출품한 ‘90여 년간 잊혀 있었던 영보촌 농민항일운동’이 최고상인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였다. 영암인도 잘 모르는 1930년대 초에 치열하게 전개된 영보 농민들의 항일운동을 다양
김헌창의 난으로 표출된 무주 지역의 반 신라 정서는 그 밑바탕에 마한 정체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에 형성된 이러한 정서를 무마하기 위해 신라 중앙정부는 청해진을 설치했다.하지만 청해진을 거점으로 무주인의 반 신라 정서가 폭발하자, 중앙정부는 청해진 세력을 김제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을 썼다. 그럼에도 무주인의 반 신라 정서는 여전하였다. 이 지역에 형성된 오랜 마한의 정서와 관련이 있다 하겠다.이 지역에 형성된 반 신라 정서 중심에는 장보고와 연결된 선종 사찰들이 있었다. 이들 선종 사찰의 구심점이 쌍봉사였다. 신라 중앙정부는 쌍봉사의 반 신라적 성격을 제어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인근에 있는 화엄사찰인 보림사를 선종사찰로 전환시키고 체징을 절에 주석하게 하고 적극적인 후원을 하였다.
지난 7월말, 영암출신 우승희 도의원과 함께 목포의 한 케이블 방송에 출연하여 영산강 마한문화를 주제로 대담하였다. 필자는 ‘백제의 마한’이 아니라 ‘마한의 백제’라는 인식을 지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우승희 도의원 역시 새로운 관점에서 마한사를 보아야 하며, 그러한 인식을 지닌 연구자를 길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지극히 온당한 지적이다.얼마 전 전남도청 ‘마한역사모임’ 공무원들과 나주 복암리 고분 전시관과 국립나주박물관을 찾았다. 예상대로 ‘마한’은 희미하고, ‘백제’는 뚜렷하였다. 마한유물을 발굴·조사·연구하는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기관의 현재 모습이다. 최근 나온 연구논문 역시, 아직도 ‘백제의 마한’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엊그제 나주문화원이 주관하
남도의병의 지휘본부 국사봉영암을 ‘의향’(義鄕)이라 일컫는다. 을묘왜변과 임진왜란 때 앞장서 의병을 일으켰다. ‘영암 의병’이 한말 의병 전쟁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으며, 그 대미(大尾)를 장식하였다. 국사봉은 남도 의병들의 지휘본부였다. 전남의 중·남부 일대에서 전개된 수많은 의병 전쟁의 중심에 ‘영암 의병’이 있다. 1908년 5월부터 1909년 9월 사이 영암지역에서 전개된 전투에 1천여 명의 의병이 일본군과 수십 차례 전투를 벌여 120명이 전사하였다고 일본 기록에 나와 있다.전투 인원의 30%가 희생되는 엄청난 혈전이 계속되었다. 쓰러져도, 쓰러져도, 일어나 일본군과 전쟁을 치렀다. 영암 전체가 의병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졌다. ‘의병의 성지(聖地), 영암’이라고 부르고 싶다. 찬란히
(4)전몽진(全夢辰 1565~1597)전몽진은 자(字)가 응서(應瑞)로 공조판서 사민(工曹判書 思敏)의 8대 손이며 감찰 윤(監察 倫)의 손자이다, 첨중추 방필(僉中樞 邦弼)의 셋째 아들로 영암군 서호면 엄길에서 태어났다. 특히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에 우애가 깊은 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공은 정유재란(1597년) 때 형 몽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암과 강진의 경계인 율치(栗峙)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영암 서쪽 해암포(海巖浦)에 주둔해 약탈을 일삼는 왜적을 은적산 서쪽 유점동(鍮店洞) 전투에서 맞아 싸웠다.공(公)은 형 전몽성 대장의 휘하에서, 떼를 지어 몰려드는 왜적과 맞닥뜨려 선봉에서 싸우면서, “대장부는 마땅히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하며 정의는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필자는 앞서 경주의 관광산업을 ‘안압지 야경’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영암은 어떨까? 7월 하순 무렵 휴가를 이용하여 영암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월출산 기찬랜드는 젊은 학생들에게 인기였다. 영암 터미널에서 광주행 버스가 만원이어서 다음 차를 기다릴 정도였다. 흐뭇하였다. 그러나 기찬랜드를 찾는 관광객들이 각기 다른 곳에서 준비한 먹거리를 가지고 한나절 쉬고 가버린다면, 영암의 지역경제에 과연 도움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역사도시, 영암’의 콘텐츠가 필요하다경주처럼 하루·이틀 밤 묵으며 쉬어가는 그러한 ‘영암’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암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잘 잡아야 한다. 영산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영암은 ‘마한의 심장부’임을 증명하는 시종 고분,
(3)전몽성(全夢星 1561~1597) 임진왜란 때 아우 몽진과 창의(倡義)전몽성은 자(字)가 응상(應祥)으로 공조판서 사민(工曹判書 思敏)의 8대손으로서 감찰 윤(監察 倫)의 손자요, 첨중추 방필(僉中樞 邦弼)의 둘째 아들로 1561년(명종17년 辛酉年) 영암군 서호면 엄길에서 태어났다, 몽일(夢日) 몽진(夢辰) 몽태(夢台)를 형제로 두어 우애가 돈독했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다.공(公)은 골상이 보통 사람과 달랐다. 팔의 힘이 무척 세어 또래 중에서 뛰어났고, 활 삼백 근에 화살을 끼워 능히 쏘았다. 일찍이 글을 좋아하여 문예(文藝)가 뛰어났다. 그러나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다가 드디어 붓을 던지고 무예(武藝)에 열중하여 1583년(선조16년) 무과(武科)
김헌창의 난은 참가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였다. 왕경 편에 선 삽량주 만을 제외하고 지방과 중앙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전국적 규모로 난이 일어난 것은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이 깊어졌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김헌창이 주의 도독이나 소경의 사신 및 군현의 수령들을 위협하여 자기에게 복속시킨 것처럼 표현되어 있으나 지리적인 여건으로 미루어 보아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왜냐하면 사벌주(상주)나 청주(진주)는 오히려 왕경과 가깝고 반란이 일어난 웅천주(공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단순히 협박 때문에 난에 가담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오히려 거리상으로 보면, 왕경과 가까운 금관경(김해)이 난에 가담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따라서 삼국사기에 김헌창의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난이 일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 행위에 대한 전 국민적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전라남도가 ‘호남의병 역사공원’을 조성할 계획인 가운데 예로부터 외세에 맞서 싸웠던 영암출신 의병장들이 많았으나 사료부족 등으로 잊혀져만 가고 있다. 그 중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몸을 바쳐 싸웠던 전몽성 형제들의 이야기가 있다. 본지는 일찍이 호국정신으로 분연히 일어서 항일 구국투쟁을 하다가 순절한 전몽성 형제들의 이야기를 긴급 시리즈로 엮는다. (1)가계(家系)와 전몽성 형제들전몽성(全夢星)은 백제 온조왕과 함께 십제(十濟)를 세우는데 공을 세운 공신 환성군 전섭(歡城君 全聶)을 시조로 하고 있다. 고려 태조의 건국에 공헌한 천안부원군 전락(天安府院君 全
필자는 이번 휴가기간 경주를 다녀왔다. 밀린 원고 때문에 노트북과 여러 박스의 책을 들고 이동한 탓으로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경주를 휴가지로 선택한 까닭은 국회에서 마한특별법 제정 논의와 관련하여 가야·신라의 역사를 간직한 그곳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현재 그 지역의 유적지 보존실태가 어떠한지를 살펴보려는 의도도 있었다.마한특별법 제정에 모든 역량 집중해야김해가 지역구인 여당 국회의원이 마한을 제외한 신라·고구려·백제·가야사 연구 특별법안을 제출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한 바 있다. 경남도의회 차원에서는 ‘가야사 연구복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촉구 대정부 건의안’을 지난 7월 19일 채택하여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런데 경주에 와서 보니,
영암군은 지난 16일 오후 3시 광주대학교 세미나실에서 왕인문화축제 운영 및 프로그램 진단과 개선방안 그리고 홍보 마케팅 개선과 운영사례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받았다. 이날 참석자는 김희승·김병원·안태기 교수, 이영 대표 등 전문가 4명과 전남도청 관계자, 그리고 영암군 문화관광과장을 비롯한 관계자 4명 등 모두 9명이 참석했다. 왕인문화축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컨설팅 결과를 요약 정리했다. ■자문 결과(요약)왕인박사 일본가오! 퍼레이드, 매년 동일 내용(라퍼커션, 횡렬단) 재미성·유희성 저조, 새로운 변화 시도→ 의상(다문화가정) 및 횡렬단, 퍼포먼스 등 미래 지향적인 테마 발전
엊그제 필자와 같이 근무하고 있는 교수님과 통화할 일이 있었다. 고대사 전공으로 최근 백제 관련 글을 많이 쓰고 계신다. 필자 때문에 마한사에 대한 관심도 점차 갖기 시작하여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교수님 역시 4~5세기 백제의 정치 상황으로 볼 때, 영산강 지역을 백제가 지배하였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황해도 지역을 상실한 백제 아신왕 때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기사가 삼국사기에 자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제가 과연 마한 남부지역을 지배하고 있었겠는가? 비옥한 영산강 곡창지역을 장악하였다면 백성들의 궁핍한 생활이 심각한 상황이 되도록 방치하였을 것인가 등의 문제가 남게 된다. 침미다례 공격으로 백제가 타격을 받았다4세기 후반에 있은 근초고왕의 침미다례
월출산 기찬랜드 개장식에 참석했던 재경 신북면향우회원 40명이 7월 14일(일) 화순 운주사·고인돌 공원을 찾았다. 마침, 운주사에서 그들을 만나 영암의 역사를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불과 2주 전 본란에 연재한 ‘운주사와 도선’의 실제 현장에서 영암출신 인사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것을 보고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천리 떨어진 고향을 찾은 향우들의 모습이 ‘영암인의 저력’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에게 ‘영암’과 ‘월출산 동석’의 의미를 설명해주며 원적을 기억할 것을 당부하였다. 누차 이야기 하였지만, 필자는 출향인들의 ‘홈커밍데이’를 군차원에서 적극 추진하는 것도 영암의 정체성 확립은 물론 귀향 인구 증가와 관련하여
바야흐로 ‘마한의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국립청주박물관에서 ‘호서의 마한, 미지의 역사를 깨우다’라는 주제의 특별전(4,30~8,11)이 열리고 있다. 특별전과 연계하여 ‘호서 마한의 대외관계망 형성’이라는 학술 심포지엄도 열렸다. BC 1C부터 AD 4C 무렵까지 충청도 일대에 성립된 마한 세력을 살피고 있다. 호서지역의 마한문화가 AD 4C 무렵 백제문화로 서서히 바뀌어갔고, 북쪽의 낙랑, 부여와도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고 주장한다.이 세미나에서 필자는 두 가지 생각을 하였다. 첫째, 충청도 일대에 백제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한 때를 4C 이후로 살피고 있다는 점이다. 4C 후반에 전남지역이 백제에 복속되었다는 주장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둘째, 호서지역 즉, 충청지역의 마한을
말기암 전문병원 중국 푸다종양병원시종면 출신 (주)한독생의학학회 강종옥 회장(비오신코리아 대표)이 지난 6월 21일~22일 중국 광저우시 푸다종양병원(대표 스지엔(史健) 이사장)에서 말기암 환우들의 희망 프로젝트를 진행, 주목을 받고 있다.강회장은 지난 4월 29일 자신이 설립한 화순의 비오메드요양병원과 말기암 환우 희망프로젝트 교류협약식을 체결한데 이어 최근 관계자들과 함께 중국의 푸다종양병원에서 ‘韓中말기암희망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푸다종양병원은 광저우에 위치한 제남의대부속 병원으로 대부분 3기 이상 또는 현대의학적 치료가 힘든 외국인과 중국 내국인 환자를 중점적으로 치료하는 말기암 전문병원이다. 푸다종양병원이 있는 광저우시는 광동성의 성도이자 베이징과 상하이에 이어 인구 1천10
며칠 전, 경남 남해군 국도변에 있는 고인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청동기와 민무늬 토기 등 다량의 유물이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국토 어느 곳을 막론하고 유적·유물들의 보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머지않아 마한의 실체를 보다 분명하게 입증해주는 증거들이 영산강유역에서도 쏟아져 나오리라 기대해 본다.앞서 도선국사와 해상왕 장보고가 화순 운주사와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가 있을 법하다는 얘기를 꺼낸 바 있다. 운주사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와 용강리에 걸쳐 소재하고 있는 조그마한 사찰이다. 그러나 그 주위의 평지 및 야산 골짜기에 80여 구의 석불과 18기의 석탑이 산재하고 있어 그 특이한 조형미와 규모 면에서 일찍부터 주목되어 왔다. 일찍이 일본인 학자들이 관심을 가진 이래 전남대 박물관에서 여러
고향방문 선물로 지은 노래광주 나주 영산포 아래아래기차도 닿지 않는 곳내 엄마 젖가슴 만지면서 어린 남매 자라난 고향천황봉에 구름 놀고 구름 위에 달이 놀았지까투리 떼 나르고 사슴 노루 뛰던 곳, 내가 어찌 너를 잊으랴.영암아 영암아 월출산아 나는 너를 품고 산단다.무안 목포 영산호 돌아돌아꼬막조개 물새의 고향오빠 누나 손잡고 학교 가면 기억 니은 재미 있었네구정봉아 그립구나 구름다리 너도 그리워순이집에 동백꽃 우물가에 물방아, 눈물 어린 가슴에 고향영암아 영암아 월출산아 나는 너를 품고 산단다. ‘당신의 마음’(방주연) ‘숨어우는 바람소리’(이영옥) ‘인생은 미완성’(이진관) 등 걸작을 내놓으며 작사가
장보고 구비전설은 과거의 전통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형성 및 변형되고 있는 현재적인 것이다. 반역도당이라는 역사적 낙인에 의해 거세되거나 다른 형태로 변형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장보고 구비전설은 오늘날에도 장보고에 대한 학계의 재평가 작업 및 대중문화계의 콘텐츠화에 힘입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고 있다.최근 신라 민중의 수호자,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중·일을 연결하는 해양 경영자로서의 장보고의 위상이 곳곳에서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 삼국사기 등 국내 문헌에서는 주로 역신(逆臣), 체제의 반역자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이나 일본 문헌에서는 장보고를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 민족적 영웅, 민중의 수호자와 같은 긍정적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차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