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은적산 봄 풍경. 겉으로는 아늑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골짜기마다 역사의 상흔이 남아있다.은적산 마실길을 나선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은적산은 필자가 사는 모정마을에서 보면 학파들녘 너머 서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능선 위로 번지는 저녁노을이 인상적이다. 마을 동쪽에 위치한 월출산의 우락부락한 모습과는 반대로 둥글둥글한 능선으로 길게 이어진 여성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산이다. 그래서 은적산은 그 이름처럼 늘 한적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은적산이 품고 있는 마을들을 답사하면서 그 동안 잘 모르고 있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은적산 역시 우리 국토를 초토화시켰던 임진왜란(1592~1597)의 참화(慘禍)를 피해가지 못 했다는 사실이다. 엄길마을의 전몽성·몽진 형제,
--------일제침략에 저항해 의병활동 활발했던 의절의 고장 자리매김--------조극환 등 뜻있는 인사들 영암 장날에 맞춰 만세운동 주도해--------구림 회사정서 집결 독립만세 외치며 1천여명 영암읍내 진출 #전통적 의병활동 중심지 전통적으로 영암군은 호남지역 교통의 요지이며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그만큼 일본 제국주의 자본에는 주요한 침투 대상이었고, 그래서 강력한 경제적 침략의 위협 아래 놓여 있었다. 게다가 일찍 사족(士族)의 문화가 발달하고 일제 침략에 저항하는 의병 활동이 활발한 고장이었던 만큼 항일운동의 전통도 뿌리가 깊었다. 따라서 3·1 운동의 소식도 비교적 일찍 접하게 되었다.1919년 3월 초 영암군에도 3·1 운동의 소식이 전해
마을 안쪽에서 내려다 본 소호정. 정자 안에는 이름 난 선비들이 쓴 시가 가득 걸려 있다.소호정의 연혁서희서가 쓴 소호정기를 보면 ‘1589년 형과 함께 정자를 지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정자가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불에 타 없어진 건물터에 다시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주변 풍광을 끌어들여 시를 지으며 선비들과 교류하였다. 이때가 1612년이다.존재 위백규가 1758년에 쓴 소호정기에는 "주인의 5대손 서호원(徐祜遠)이 다시 정자를 새롭게 세워, 호수의 뛰어난 풍경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도 중건이 있었던 것 같다. 또 서호면 엄길 출신 낭은(郞隱) 최기성
신풍마을에 내리는 봄비절기가 우수인지라 시절에 걸맞게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신풍마을 가는 서호로에도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거센 바람이 지나간 뒤여서 그런지 정오가 지난 오후에 내리는 비는 몹시 순하게 느껴진다. 영풍마을을 지나 모개나무재를 넘는데 도로에는 오가는 차량 한 대 없고 마을 앞 너른 들녘에도 봄을 준비하는 농부 한 명이 없다. 이윽고 신풍마을의 자랑인 소호정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았다. 정자 앞 커다란 은행나무와 동백나무 세 그루가 묵묵히 서서 비를 맞고 있었다. 고요하면서도 쓸쓸하다. 혹시 마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여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닐면서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 뒤에 자리한 대박산에서 엷은 운무가 피어오르고 마을 한복판의
중국 소주와 항주의 서호(西湖)를 본떠 붙여진 ‘서호’ 원래 이름은 산골정(産骨亭)영풍리에서 신풍마을로 가려면 나지막한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주민들은 이곳을 모개나무재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고개 꼭대기에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은적산을 등반하는 사람들이 관봉을 가기 위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모개나무재는 필자가 어렸을 때 형과 함께 리어카를 끌고 칡을 캐러 다녔던 추억이 깃든 길이기도 하다. 군서 모정마을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가려면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도 칡을 캐기 위해 삽, 괭이, 톱 등을 리어커에 싣고 자주 다녔었다. 그 당시에는 자갈이 깔린 신작로였지만 지금은 아스팔트 포장이 잘 되어 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산골정(産骨亭)이라고 새겨진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반개발’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파괴가 더 자행되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면 결집된 정보 캠페인이 긴급히 필요하다. 세계를 사회적․생태적 파멸로 몰아가는 산업체계에 대한 불완전하고 그릇된 이미지를 바로잡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더 이상의 개발보다는 ‘반개발’이 필요하다. 반개발의 일차적 목표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미래를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가능한 모든 통신수단을 사용해서, 오늘날의 자본 및 에너지 집약적 경향은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자기존중과 자립을 증진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을 떠받치는 다양성을 보호하고, 지역중심의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발
경기침체 등 겹쳐 ‘소비 위축’생색용 제수용품만 상인들 울상대형마트 속속 개장..지역상권 독식 25일 오전 10시 30분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사흘 앞두고 찾아간 영암5일 시장. 설 대목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5일 시장이지만, 예전의 대목장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추운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가격을 묻는 손님들의 모습은 예전과는 확연히 달리 그리 많지 않았다. 대목장을 보러 온 한 70대의 할머니는 “갈수록 농촌생활이 어려워 생활비도 빠듯한 마당에 차례상을 어떻게 푸짐하게 차리겠느냐”며 “객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도 살기가 예전만 못해 고향 찾는 일이 뜸해져서 설 당일 날 가족들끼리 먹을 음식만 할 요량이다”고 말했다.강추위에도 이른 아침 일찍 나
라다크의 대가족 제도라다크는 다양한 형태의 혼인제도를 갖고 있다. 라다크의 여성들은 늘 존중받고 있으며 가정 내에서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전통 육아는 대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데 아이와 끊임없는 접촉을 통하여 정서적인 유대감과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른 나이부터 역할을 부여하여 책임의식을 갖게 한다. 전통적인 생활방식은 아기와 엄마가 늘 함께 있을 수 있게 한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온 마을이 축하잔치에 참여한다. 아이는 한 공동체 속으로 태어난 것이다. 아이들은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서 무제한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다. 누구라도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제 또래의 집단으로 분리되는 일이 없고 어린 아기에서 조부모까지 모든 나이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란다. 아이들은 주
영풍마을의 따사로운 겨울풍경. 마을은 평화스럽고 풍요로워 보이지만 영풍마을 역시 아이들 뛰어 노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갈수록 쇠락해가는 것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평화롭고 풍요로운 고을에 뛰어 노는 아이들이 없다 영풍마을을 떠나며영풍마을은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은적산이 북서풍을 막아준 탓인지 따뜻하고 아늑하다. 겨울 안개가 적당히 산허리를 감싸고 있어서 수묵화에 나오는 마을처럼 신비스럽기도 하다. 마을은 평화스럽고 풍요로워 보이지만 영풍마을 역시 아이들 뛰어 노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골목마다 빈집이 늘어나고 있지만 객지로 나간 자손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마을들이 갈수록 쇠락해간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이제 영풍마을을 떠나
학생 중심 氣찬 영암교육을 위해배움이 즐겁고 가르침이 신나는 영암교육을 실현하는데 중점을 두겠습니다 영암교육지원청 안병창 교육장은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자 자신의 꿈과 진로를 함께 찾아가는 공간으로, 하나 하나 배워가는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라며 배움이 즐겁고 가르침이 신나는 영암교육을 실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교육현장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교육장님께서는 영암교육 발전을 위해 남다른 애정과 열정으로 심혈을 기울여 오신 줄 압니다. 지난 한 해 영암교육은 어떤 성과를 거두었으며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지난 한 해는 미래핵심역량 교육과정 운영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 배움중심
관봉사 조정비영풍마을 돌담길을 따라 한참 걷다 보면 마을 한 복판에 함평노씨 문중사우 관봉사가 자리하고 있다. 관봉사 앞에는 조정비가 세워져 있고 뒤쪽으로는 술유재가 있다. ‘동양의 해동부자’ 금계(錦溪) 노인(魯認) 중국에서도 극찬 문무를 겸비한 지조 높은 선비임진왜란 때 의병 모아 맹활약 명나라서 뛰어난 문인으로 활약관봉사(冠峯祠)에 봉안된 다섯 분의 행장 중에서 필자의 눈길을 가장 강하게 끈 것은 금계 노인이다. 문인 출신이면서도 임진왜란 때 칼을 잡고 전쟁터에 나가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의병장이다. 권율 장군과 함께 여러 전쟁터를 누비며 전공을 세우던 중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4대 핵심발전 전략산업 육성으로 신성장 동력을 창출한다(생명산업,문화관광·스포츠산업,바둑산업,드론·항공·튜닝산업) ► 주민밀착형 복지시스템 가동, 복지사각지대 완벽 해소►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환경 조성, 정주여건 대폭 향상► 아낌없는 교육 지원, 미래 인재 육성 강화► 풀뿌리 자치행정 선도, 군민행복시대 완성 민선6기 출범과 함께 ‘풍요로운 복지영암’ 건설을 기치로 지난 2년 6개월 동안 하나 된 군민의 힘으로 군민행복 시대를 열어 가겠다고 약속했던 전동평 군수. 올해도 영암군의 더 큰 미래를 위해 힘찬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전동평 군수는 민선6기 후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17년
국화·금어초 등 화훼산업을 선도하며 일본에 수출하고 있는 미암 남산농원에는 연중 많은 사람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13년 5월 미암 남산농원을 방문했던 농촌진흥청 이양호 청장(사진 가운데)이 박명준 대표(사진 좌측)의 농장 현황에 대해 청취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시크릿 가든’이라는 상표로 일본에 금어초, 국화, 후리지아 등을 수출하고 있는 남산농원 박명준 대표. 지난해 ‘김영란법’ 시행으로 많은 화훼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본 수출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꾸준한 수출로 고사위기 벗어나 지난해 9월 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부정청탁 등에 대해 처벌할
관봉사영풍마을 입향조인 둔은공 노종주가 봉안돼 있는 관봉사. 이곳에는 함평노씨 시조인 문충공 노목, 중시조인 무열공 노신, 관암공 노홍, 금계공 노인 등의 행장이 함께 봉안돼 있다.세상을 한탄하며 산수에 유랑하다 세상을 뜬 둔은공(遯隱公)오직 공(公)의 심정을 토(吐)하는 글 한수가 세상에 전할 뿐! 관봉사(冠峯祠)영풍마을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을 한 복판에 자리한 함평노씨 문중사우인 관봉사를 만나게 된다. 관봉사는 1968년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옆에는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 술유재(述裕齋)가 있다. 1925년에 창건되었는데 내부에는 술유재기(述裕齋記)를 비롯 운차(韻次) 7수 등의 편액이 걸려 있고, 건물 후원에는 마을나무로 지정된 느티나무 한 그
KT(구 한국전기통신공사)와 KT&G(구 한국담배인삼공사)가 인근 나주·강진 등에 흡수 합병된데 이어 국민연금공단 영암상담센터도 이달 말로 폐쇄되는 등 영암군청 소재지 공공기관 축소·이전이 날로 가속화되고 있다.국민연금공단 목포지사는 그동안 영암읍 서남역로 KT영암지점 1층에 운영해오던 영암상담센터를 오는 12월 30일자로 폐쇄한다고 밝혔다. 목포시를 비롯 영암·무안·신안군을 관할해왔던 국민연금공단 목포지사는 영암센터를 폐쇄하는 대신에 내년 1월 2일 무안상담센터를 개소, 운영에 들어간다. 지난 2014년 문을 연 영암센터는 당초 3명의 직원이 민원업무를 처리하다 2명으로 축소한 뒤 이번에 아예 상담센터 문을 닫게 된다. 이번 영암센터 폐쇄는 국민연금 가입자 수를 비롯한 민원
친환경농사 성공비법은 ‘인내’ ‘양심’ ‘신기술’경북 친환경농산물 품평 전체대상 ‘아시아점보’ 농사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경북 울진군 서면 김창섭 농가는 1992년부터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006년에는 농림부 광역친환경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했다. 유기농 농사를 15년째 짓고 있는 김창섭 농가는 본인의 경험만으로는 농사를 성공으로 이끌 수 없음을 깨닫고 울진농업기술센터 친환경녹색대학 교육과정(17기)을 이수했다. 고추전문반 총회장을 맡은 김창섭 농가는 회원들이 고추 농사짓는 형태를 사진으로 찍어 PT로 제작하기도 했다. 김창섭 농가는 아시아종묘 생명공학육종연구소를 지인들과 방문했고, 이후 아시아종묘 종자에 대한
영암군이 지난 한해 동안 중앙부처 및 전남도 등에서 실시한 65개 공모사업에 선정돼 국·도비와 민자를 합쳐 1천6억원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20일 영암군에 따르면 올해 주요 공모사업으로 ▲조선업 관련 일자리사업(30억원) ▲한국트로트 가요센터 건립사업(90억원) ▲영암공설운동장 개보수사업(90억원) ▲삼호행복주택 건립사업(300억원) ▲마을정비형공공주택 건립사업(218억원) ▲영암 노후하수관로 정비사업(153억원) 등 65개 공모사업이 선정됐다.영암군은 이와 함께 총 44개 분야에서 기관표창과 함께 13억원의 상사업비를 받았다.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한 지역복지사업 평가에서 16관왕을 차지한 것을 비롯, 지방재정 조기집행 평가에서 우수상과 공기업경영평가 전국최우수기관, 수도사업평가 우수기관, 전
올 한해도 어느덧 서서히 저물어가고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올해는 지역농민과 서민들에게는 유난해도 힘들었던 한 해였다. 사상 유례없는 쌀값 폭락, 끝없이 추락하는 지역경제, 폭염과 잦은 비 등 이상기온에 따른 농축산업의 피해 등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기 때문이다. 이제 지난 1년간의 아쉬움을 접고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해야 할 시기다. 본지가 선정한 10대 뉴스를 송년특집으로 다뤘다. ‘희망퇴직’ 광풍…대불산단 감원 한파 현대삼호중공업이 당초 5월말까지 희망퇴직을 받기로 했으나 6월말까지 1개월 연장한 가운데 지금까지 사무직 142명, 생산직 65명 등 총 207명이 희망 퇴직한데 이어 이달 말까지 167명이 추가로 회사를 떠날
영풍마을 전경함평노씨 집성촌이었던 영풍마을의 아담하고 정갈하게 쌓인 골목길 돌담길이 정겹고 평화롭기 그지없다.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은 시작된다올 3월부터 청룡리 노동마을을 시작으로 은적산 기슭에 자리한 마을순례를 떠난 지 10개월 만에 선사주거로의 끝에 이르렀다. 선사주거로는 독천 삼거리 노정로에서 시작하여 영모정, 신흥리, 괴음마을을 지나 장천리 선사주거지까지 이르는 길로, 영암지역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 길은 말 그대로 선사시대로 통하는 길이다. 가는 곳마다 여러 기수의 고인돌이 남아 있고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가 보존되어 있다. 원래 계획이 선사주거로를 거쳐 서호로를 걷는 것이었으니 이제 장천리와 엄길마을을 끝으로 반환점을 통과했
서호 저수지(학파1저수지)에서 바라본 월출산 달오름 풍경. 산소마을에서 바라다 본 월출산의 달오름이 장관이다. 서호 저수지에 비친 월출산 달오름을 지켜보시라 십리방죽 - 엄길리 학파1저수지박동열 신도비가 있는 반남박씨 선산 바로 아래 영암에서 가장 큰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일명 학파1저수지로 알려져 있는데 둘레가 10여리에 이른다하여 ‘십리방죽’으로도 불린다. 학파1저수지 명칭은 무송(撫松) 현준호(玄俊鎬)[1889~1950]의 부친 현기봉(玄基奉)[1855~1924]의 호인 학파(鶴波)에서 기원하였다. 이 저수지는 1939년 서호면 엄길리와 서호면 몽해리 사이의 아천포(牙川浦) 어귀에 현준호가 추진한 서호 간척사업의 일환인 일명 학파농장의 관개용수 공급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