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어촌 시골마을에서는 애기 울음소리 듣기가 어렵다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전 세계에서 최저 출산국가에 속한다. 이렇듯 자녀를 적게 낳다보니 금이야 옥이야,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게 키우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녀가 잘못해도 회초리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잘못을 타이르기 보다는 그냥 웃고 넘어가기 일쑤이다. 옛날에 자식이 없어 상심하던 노부부에게 늦둥이 자식이 생겼다. 노부부는 하늘에 감사하며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 키웠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다. 노부부의 제일 큰 낙이었다. 수염을 잡아 당겨도 허허 웃고, 상투를 잡아 당겨도 기쁘기만 하고, 무슨짓을 하던 다 이쁘기만했다. 부모에게 예절을 교육받지 못하고 자란 이 아이는 커서 어떤 행동거지를 사회에 나가 할까요. 공중질서를 지키고
사랑과 정이 넘치는 가정의 달 5월 어느 날, 영암읍자원봉사 회장님으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자원봉사활동이 있는데 조금 도와줄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셨다. 자유스런 몸이 아니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아버님께서 나오셔서 내 일을 흔쾌히 대신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시 회장님께 전화를 드리고 단 1분이라도 빨리 가고 싶은 생각에 회장님 댁으로 달려갔다. 회장님께서도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반가이 맞아주셨다. 잠시도 내가 떠나면 안 되는 가정일 때문에 혼자할 수 있는 봉사활동은 그런대로 할 수 있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는 봉사활동은 쉽지 않았다. 때문에 항상 마음속으로 이름만 기억해놓고 실천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다른 자원봉사자와 보건소직
지금 우리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는 하나, 빈부격차와 가치관의 혼돈, 그리고 분단이라는 명제를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적 갈등과 이념적 대립으로 고귀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 또한 이 시대에 처방해야 할 과제들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악과 선의 차이는 무한정 차이다. 죄를 짓는 것과 덕을 베푸는 것은 우리 생활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고 볼 때, 기왕 살면서 악과 죄를 지은 것보다는 선을 베풀고 덕을 쌓아 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행복한 삶이라고 본다. 죄를 짓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삶보다는 죄를 짓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삶이 값진 삶일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불교든 유교든 천주교든 예수교든 믿는다는 것은 모두가 똑같다. 복잡하고 힘든 세상에서 조금이라
4월 20일은 제28회 장애인의 날이다. 정부나 대다수 일반인들은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의 축제일로 보고 있다. 관련기관에서는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나, 대다수 장애인들은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바깥출입이 드물다. 이런 행사도 야외나 운동장에서 하면 더 나으리라 생각한다. 언론에서도 장애인 관련기사나 방송도 이날을 중심으로 집중 내보내고 있다. 내용도 장애를 극복한 성공담이나 미담사례 등 특집성 기사이다. 유엔에서도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이라는 슬로건 아래 전 세계 국가들이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81년 세계 장애인의 해를 맞이하여 장애인 복지법이 만들어졌으나 내용은 장애인의 삶의 질 보다는 양적인 면에 더 치중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은 약 480
“불탈 때, 많이 아팠지. 나도 지금 가슴이 아퍼! 남대문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네가 불태워지니 내 가슴도 불태워졌다” 어느 어린아이가 대한민국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된 것을 보고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의 편지를 써 올린 글이다. 610년이 넘도록 모진세월을 겪고도 온전하게 오늘날까지 오래도록 우리 국민들과 함께 꿋꿋하게 자리했던, 국민들에게 당당하게 위엄을 보였던,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자랑이었던 숭례문이 한밤중에 어이없는 방화로 단 5시간 만에 무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온 국민은 처참히 불타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무척이나 애통했을 것이다. 숭례문이 순식간에 까맣게 타고 무너졌듯이 우리의 가슴도 까맣게 타고 억장이 자존심이 무너졌다. 크게, 한없이... 왜 하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이웃에 사는 사람이 먼 친척보다 서로 같이 살아 나가는데 가깝다는 점에서 일컫는 말이다. 이웃은 거리상으로 가깝게 있어서 어려울 때 서로 돕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아예 이웃에 대해 무관심한 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기에 몹시 바쁘다. 더구나 이런 무관심의 범주를 넘어서 이웃에 대해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다. 피해를 주는 사람들의 유형은 첫째,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몰염치형이 있고 둘째, 잘 모르고 피해를 주는 무지형이 있다. 둘째유형은 이치를 설명해 주고 시정해 줄 것을 권유하면 대체로 고쳐진다. 그런데 첫째유형이 큰 문제이다. 무슨 심보를 가지고 있는지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갈등을 겪는다. 나는 특히 윗세대와의 갈등이 컸는데, 후에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 이유 중의 하나를 깨달았다. 아랫세대는 서양에서 들여온 제도에 의해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윗세대는 일본제국주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문화충돌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일본제국주의교육을 받은 세대나 서양에서 들여온 교육을 받은 세대나 모두 우리나라의 고유한 민족문화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다. 지금 우리나라는 외국(특히 서양)의 문화가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와서 외래문화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는 깨우침에 의해서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싹터 오르고 있다. 가야금산조를 창시한 김창조는 고향이 영암이다. 그는 월출
우리사회는 독재정권이 들어섬으로써 식민지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따라서 극도의 이기적 출세주의가 인간을 수단화하고, 이러한 일을 하면서도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보다는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못하는 사람이 바보로 취급받는 가치가 전도된 현실에 살고 있다. 6.25 전쟁으로 인해 남북한은 서로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적대화는 이러한 사실보다 심화되었다. 정치권력이 안보를 구실로 그릇된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더욱 적대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반공교육에 의해서 북한에 대해 무작정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이렇게 반공이념은 우리의 교육을 지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비민주적 사회가 정당화되는 모순을 낳게 하였다. 군부독재정권은 1970년대 이후부터
얼마전 남해신사 제례가 시종면 옥야리 남해신당에서 지역의 각계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남해신사의 제례는 1010년 고려 8대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당시 나주군 종남면 옥야리의 산으로 피신한데서 유래한다. 당시 현종은 지금의 남해신사에 피난하고 세자는 옥야리 인근 치자산에 역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현종과 세자는 약 200m 떨어져 피난을 하던 중 남해신이 나타나 현종께 선몽하기를 “빨리 피신하라” 하여 깨어본즉, 가득했던 바닷물은 빠져버리고 갯벌만 남아 있었다. 이에 현종은 급히 무안군 일로면 현재 몽탄리 나루터로 건너가 옥채를 구하고 종묘사직을 보존하게 되었다. 이후 현종은 감사의 뜻으로 남해신사를 건립하게 하고 현종 19년부터 춘추로 제를 모시게 하여 그
소나무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지역에 자라며 사시사철 푸르른 잎을 지니고 강인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대나무와 함께 송죽지절(松竹之節:변하지 않는 절개)을 지니며, 송교지수(松喬之壽:인품이 뛰어나고 오래 사는 사람)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영생을 상징하는 생명의 나무이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민족의 삶과 문화에 녹아내린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수종이면서 항상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 친숙해진 나무이다. 또한 때로는 절개 곧은 선비를 상징하기도 하고 우리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가 산을 찾는 것도 그 산에 소나무의 푸른 젊음이 있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우리와 커다란 조화를 이루면서 끝없는 생명의 빛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인간과 하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다”는 속담이 있다. 이 이야기는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위에는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특히 수질, 대기, 토양 등의 오염은 동식물의 생명뿐 아니라 사람의 건강에 큰 피해를 준다. 지구에 환경오염문제가 등장하게 된 것은 1760년대 영국에서 나타난 산업혁명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부터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산업화에 치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산업화의 부산물인 수많은 오염물질의 배출로 인해 좁은 국토의 자연환경은 지속적으로 파괴되어 가고 있다. 어린 시절에 주위의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조선시대에 김선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는 세대간, 계층간, 남녀간 등의 관계에서 심한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다. 갈등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나이든 자는 어린 자를,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남자는 여자를(간혹 여자는 남자를) 무시하고 억누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든 것이, 가진 것이, 남자 혹은 여자인 것이 상대방을 무시하고 지배하는 명분이 될 수 있는 것인가? 2년 전쯤에 정년 퇴직하신 박선생님의 교직생활 중에 있었던 일화를 듣게 되었다. “소풍날이었다. 늦은 오후에 학생들을 인솔해서 오는 중에 학생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 학생은 산 속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옷을 입은 채 실례를 하고 만 것이다. 개울로 데리고 가서 깨끗이 씻기고 다른 학생들에게 놀림감이 되지 않도록 몰래 그
21세기와 더불어 윤리적·도덕적·시대적 사명감에 직면한 이때 충효사상은 인간이 성취한 윤리 가운데 최고의 덕목이다. 忠자는 中과 心의 글자 형자로 보듯이 인간의 내면적 양심인 성실한 마음을 뜻하며 마음에 중심을 잡는다는 뜻이다. 孝자라는 것은 어버이를 봉양하고 섬기는 공자의 효경(孝經)에서 인간의 행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孝자도 “老에 子를 합한 것으로,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으로 부모님을 업고 다닌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 제도로 변화하면서 노부모를 모시지 않고 양로원이나 실버타운에 위탁하는 현시대에 생각을 깊이 해야 한다. 아무리 삶이 바쁘고 각박하다 하여도 자신(신체)을 존재케 하는 부모를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 그래서 그런 건지 젊은 세대는 아이를 낳지
얼마전, 영산강 고고학박물관 건립후보지로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일대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는 매우 부당한 것으로 대다수 영암군민들은 허탈감에 젖어 있다. 시종면 옥야리 일대는 마한의 백제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많은 고적과 유물이 출토되었고 이들 유물이 지닌 역사성은 갈수록 그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다. 예부터 우리지역은 왕(王)골이라 군(郡)터, 궁(宮)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이들 명칭은 고대에 도(都), 읍(邑), 지(地)였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증거다. 또한 문헌을 보더라도 마한은 54개국이요, 진한은 12국이며 대국은 가구가 5천이고 소국은 500~700가구였다고 전하고 있다. 일찍이 선사시대부터 영산강유역에서 정착한 선인들이 바로 이곳 옥야리 일대에서 고대문화를
밝은 달빛이 깔린 들길을 거닐던 나그네가 외딴 집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안에는 피아노를 치던 소경인 어린 여동생과 오빠가 놀라 일어섰다. 한밤중에 홀연히 나타난 미지의 침입자. 침묵이 감도는 방안에는 희미한 촛불과 환한 달빛만 창문을 밝히고 얼떨결에 서 있는 오누이의 처량한 모습 있을 뿐. 나그네는 순간 솟아오르는 음악적 감흥에 취해 낡은 피아노 앞에 다가앉아 구름 사이에서 부서지고 깨어지는 달빛에 도취된 채 악상 따라 무아지경 속에서 연주하였다. 심금을 울리는 피아노 소리에 이윽고 소경인 소녀는 “아아, 베토벤 선생님!” 하고 외쳤다. 불후의 명작 월광곡이 이렇게 창작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베토벤의 월광곡과 김창조의 가야금산조 창작과정
요즈음 소리치면 힘 있는 사람들로부터 군밤 맞기 안성맞춤이므로 눈치 보기에 익숙한 힘없는 사람들끼리 입에서 입으로 이심전심 쌓여지고 있는 몇 가지 항간의 여론이 있다. 그 중 이해관계와 무관한 한 가지만을 과감히 소리쳐서 개선의 정 있기를 기대하며 하소연 한다. 요사이 어떤 행사장에 참석해 보면 행사의 식순 서두에는 으레 참가자 중 저명인사의 소개를 한다. 소개되는 이십여 명의 드높은 직분, 고고한 인품, 혁혁한 공로 등등 충실한 직무 수행으로 사회에 공헌한 나름대로의 공적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고무 찬양할 만한 가치도 있을 것에 공감한다. 하나 훈작의 수여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더도 덜도 보태거나 깎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존귀한 저명인사의 인품이 이런 황당무계한 소개로 썩은
10월 13일, 가야금산조 축제공연을 실내체육관에서 한다는 방송을 듣고 일손을 멈춰 황급히 달려갔다. 공연 10분전이다. 막무가내로 앞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공연장은 인산인해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악성 김창조의 생애를 추모하였다. 김창조는 영암읍 회문리 회의촌 당거리의 외딴 집에서 1856년 7월 세습적인 율객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신분이 낮았던 재인(廣大) 신세의 천시를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보단 마을 앞산을 찾아가 가야금 연주에 몰두하였다. 오죽했으면 마을 사람들이 그 바위를 개금바위라고 하였을까? 그런데 조선시대부터 일제를 거쳐 6·25사변 전 무렵까지 이 용추골짜기에는 황혼이 지면 나뭇짐을 진 머슴들이 줄지어 산길을 내려오면서 부르는 판소리의 창이 구슬프게 울려
지난 21일 공가(빈집)철거 의뢰 신청차 미암면사무소 건설담당 김○○을 찾아간 일이 있다. 그 분 개인을 욕되게 하거나 추켜세우기 위해서가 아님을 전제로 사실을 기술하고자 한다. 의뢰문서를 장시간 검토하면서 “미안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하며 음료수를 주시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셨다. 생소한 사람들만 있는 면사무소를 찾아간 초라한 민원인의 심정은 누구나 다 초조할 것이다. 그때 나도 그랬다. 서류검사를 마치고 현장에 갈 차례가 되어 택시를 부르려고 하였더니 그 분이 자기 개인차로 가야한다고 완강히 우겨 어쩔 수 없이 그 분의 차를 타고 3km 거리에 있는 현장에 가는 동안 어쩐지 미안해서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었다. 박봉의 말단 공무원이 베풀어 주는 호의가 너무 벅찬 부담감을 주었다. 현장조사를 마치
몸에 역력을 간직하고 나라에 쓰이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선비이다. 또한 뜻을 숭상하고 배움을 돈독히 하며 예를 밝히고 의를 지키는 청렴함을 긍지로 여기며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선비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어떠한가?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배움은 많으나 실천하지 못하는,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한 마음을 가진 자, 이것이 곧 현대인이다. 선비의 기본 자세는 가정에서 사회로 도덕적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정신을 갖추는 것이다. 예절을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윤리적인 정신을 갖출 때이다. 예를 실천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극단적인 이기주의는 타파하고 더불어 사는 편안한 마음 자세, 이러한 마음에서부터 육체적인 건강과 사회 생활의 안정이 보장된다고 본다. 따라서 선비란
■ 조 동 현 영암읍 명예기자 영암신문은 우리 고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빠르게 알려주고 옳고 그름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되어왔다. 이제 창간 5주년을 맞이하면서 보다 많은 사건을, 보다 빠르게 보도하는 일이 절실하게 되었다. 모든 생물이 영양소를 섭취해야 생명을 유지하듯이 신문은 양질의 뉴스거리를 얻어야 충실하게 성장할 수 있다. 이 귀중한 신문의 영양소라 할 수 있는 뉴스거리는 신문기자가 수집한다. 따라서 신문사에는 뉴스거리를 수집하는 기자가 꼭 있어야 한다. 기자를 두기 위해선 예산이 수반된다. 그런데 영암신문사는 지역실정에서 보듯이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동안 전국의 많은 향우와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아 많은 성장을 했지만, 인력충원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명예기자제 도입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