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점 수(·시종면 명예기자)

 

얼마전 남해신사 제례가 시종면 옥야리 남해신당에서 지역의 각계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남해신사의 제례는 1010년 고려 8대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당시 나주군 종남면 옥야리의 산으로 피신한데서 유래한다. 당시 현종은 지금의 남해신사에 피난하고 세자는 옥야리 인근 치자산에 역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현종과 세자는 약 200m 떨어져 피난을 하던 중 남해신이 나타나 현종께 선몽하기를 “빨리 피신하라” 하여 깨어본즉, 가득했던 바닷물은 빠져버리고 갯벌만 남아 있었다. 이에 현종은 급히 무안군 일로면 현재 몽탄리 나루터로 건너가 옥채를 구하고 종묘사직을 보존하게 되었다.


이후 현종은 감사의 뜻으로 남해신사를 건립하게 하고 현종 19년부터 춘추로 제를 모시게 하여 그 후 나주목사가 초헌간이 되어 인근 6개군 나주, 영암, 해남, 강진, 영광, 함평의 원님을 대동하여 제를 모시게 되었다.


고려시대 전남에서 행해진 국제 중 최초이며, 당 아닌 묘당에서 제를 모셨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제로 거행된 제례는 남해신당제이며, 그 밖의 동해신당(강원도 양양), 북해신당(신의주), 서해신당(서해) 제로 모셔오고 있다.


그러나 한동안 제를 모시지 않아오다 지난 2001년 영암군에서 남해신사를 복원하고 이듬해인 2002년 음력 정월보름에 김철호 전 영암군수 주선으로 위패를 봉안했다. 이어 제례 보존회에서 2003년 4월 영암군수를 초헌관으로 제를 모심으로써 제례 또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제례규모로 보아 정부차원에서 아니면 전남도에서 협조 받아 제를 모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제례보존회도 재정비 결성하여 남해신사제례가 그에 걸맞는 위상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출신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한의 고장, 영산강 유역에 농업박물관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여 마한공원과 함께 옥야리 고분군이 어우러져 유서 깊은 남해신당이 전국의 명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지역 주민들도 합심 노력해서 지역발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앞장서 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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