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기 홍(·영암신문 영암읍 명예기자)

 

우리는 세대간, 계층간, 남녀간 등의 관계에서 심한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다. 갈등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나이든 자는 어린 자를,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남자는 여자를(간혹 여자는 남자를) 무시하고 억누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든 것이, 가진 것이, 남자 혹은 여자인 것이 상대방을 무시하고 지배하는 명분이 될 수 있는 것인가?


2년 전쯤에 정년 퇴직하신 박선생님의 교직생활 중에 있었던 일화를 듣게 되었다.

“소풍날이었다. 늦은 오후에 학생들을 인솔해서 오는 중에 학생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 학생은 산 속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옷을 입은 채 실례를 하고 만 것이다. 개울로 데리고 가서 깨끗이 씻기고 다른 학생들에게 놀림감이 되지 않도록 몰래 그 학생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말씀이었다. 어린 학생이지만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선생님의 고매한 인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 선생님의 이런 행동은 학생들에게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창시절 학우들 앞에서 모욕과 창피를 주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던 못된 선생님도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자신들의 사회적인 힘을 이용해서 약자를 지배하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동물과 같은 수준에서 행동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러한 갈등을 풀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강자는 약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화의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대화는 일정한 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합리적이고 일관된 원칙 등을 벗어나서 기준을 각자 제멋대로 정하면 진정한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셋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다. 자신의 견해와 다르게 결정되었다고 불복하면 결국 갈등은 해결될 수 없다.


나주 방면에서 영암읍에 들어서면 “서해안시대의 새로운 주역 氣의 고장 영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보인다. “영암은 신령한 월출산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 정기를 받아서 생기가 넘치는 영암사람들이 살고 있는 고장”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본다.


어떤 일이 하도 어이가 없을 때 우리는 ‘기가 막혀 말을 못하겠다’는 표현을 한다. 월출산의 정기를 받은 우리 영암사람들은 대화를 함으로써 막힌 기(氣)가 잘 통해서 인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고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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