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마을은 벚나무 가로수 길에서 월출산 방향으로 쑥 들어가 있어서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을 표지석을 지나 200여 m 정도 안길로 들어가면 보물처럼 숨겨진 마을이 그 전모를 드러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마을 한복판에 자리한 우람한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 숲 왼편에는 정자가 한 채 서 있고, 오른편에는 솟을대문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솟을대문 앞에 안내판이 한 개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호동마을 천안전씨 문각인 위인재기(爲仁齋記)를 한글로 풀어 음각해 놓은 해설판이다. 호동마을 이장 전의성 씨에 의하면 엄길마을이
나주에서 발견된 전방후원형 고분지난해 12월 3일 공사 중인 ‘광주–강진’ 간 고속도로 제5공구 건설 현장인 나주 봉황면 유곡리 일대에서 전방후원형 고분(일명 장고분)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광주-강진 간 고속도로는 총연장 88.61㎞로 오는 2024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나주시를 통과하는 18㎞ 구간 중 봉황면이 가장 많은 11㎞(60%)를 차지한다. 필자도 현장을 아직 가보지 않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보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농경지 한 가운데 솟아 있으며, 평범한 작은 동산처럼 보인다. 규모는 정
오산마을에 들렀다가 내친김에 오산로를 따라 원마산, 신덕정, 도리촌, 장사리, 목화정, 신흥, 원해창까지 다녀왔다. 이제 다시 원래 목적지인 월출산 벚꽃 백 리 길로 돌아와 가던 길을 가기로 한다. 월곡리 4구인 주암마을에서 남쪽으로 통하는 조그마한 언덕길을 넘어가면 시리봉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이번에 답사할 호동마을이다. 주민들은 이 등성이를 범골잔등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이 등성이에 주막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 작은 길은 주암마을과 호동마을 주민들만 주로 사용하고 있다. 외지인들이 호동마을을 가기 위
신흥마을에서 나와 서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월출산온천관광호텔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면 곧바로 한국농어촌공사 군서양수장이 보인다. 군서양수장은 영산호 물을 농업용수로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양수장을 지나면 원해창 삼거리가 나온다. 남쪽으로 가면 신덕정이 나오고 북쪽으로 가면 해창교를 지나 도포로 이어진다. 이 삼거리를 중심으로 30여호의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기가 바로 해창리 2구인 원해창마을이다. 원래 영암군 서시면(西始面)의 지역이었으며, 조세 창고가 있는 관계로 창말, 창촌, 해창이라 불렸다. 19
▣ 모든 군민에게 위로와 희망을영암군은 대망의 임인년 새해를 맞아 사상 유례없는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힘든 한 해를 보내고 경기침체와 50년 만의 한파와 폭설, 폭염, 저온 피해 등 어느 해보다 큰 고통과 시름을 겪어 오신 군민들께 신년사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또한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올 설 명절에도 비대면 명절을 맞이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임을 감안할 때 군은 고향과 친지들을 찾지 못하는 16만 향우를 대신해 어르신들과 취약계층의 안부를 직접 살피고 다양한 복지 시책들을 통해 이번 설 명절에 소외받는 군민이 없도록 각
4세기 후반 마한이 백제에 복속되었다는 통설을 반박하는 연구 성과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나주 반남 고분군과 복암리 고분군, 영암 시종 고분군 등에서 금동관, 금동신발, 환두대도, 대형 옹관 등 백제와 무관한 독자적 연맹체를 입증하는 유물들이 많다. 특히 6세기 초 백제 사신의 행차를 글과 그림으로 수록한 양직공도에서 마한의 왕국들이 전남 여러 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영산강 유역의 마한 정치체들이 축적한 여러 유산을 통해 마한 사회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김영미 교수는 마한의 3대 정신으로 ‘평화·분권·개방’을 들었다. 김 교
목화정마을에서 북쪽으로 조그마한 재를 하나 넘으면 언덕을 등지고 수십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해창리 4구 신흥마을이다. 아침부터 눈이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져서 그런지 동네 골목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마을 한복판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회관이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마을회관 바로 앞에는 신흥마을의 지명유래가 간략하게 새겨진 준공기념비가 세워져 있다.“1900년대에 이루어진 작은 동리(洞里)로 원래는 바다에 기어 다니는 게의 형상이라 하여 게등(嶝)(일명 기등)이라 하다가 마을 이름을 새로 번창
한국 고대사의 뿌리 찾기 6년2017년 7월 본지에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라는 제하에 글을 연재한 지 햇수로 벌써 6년, 200호가 되었다. 마한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를 살펴야 한다는 관점과 교류·융합을 통해 새로운 마한 르네상스를 형성한 영산 지중해의 중심지가 영암임을 실증하려 하였다. 본지에 연재된 글은 2021년 ‘박해현의 새로 쓰는 마한사’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되어 여러분의 사랑을 받았다. 이제 ‘영암의 마한사’를 다룬 단행본을 마무리하면 마한사에 대한 1차 작업은 마무리되리라 믿는다.신문에 장장 6년째 글이 연
함양 숲마루재에서 온 새해맞이 편지매년 새해 아침이 밝아오면 천리길 떨어진 먼 곳에서 반가운 편지 한 통이 온다. 일찍이 25년 전부터 농업과 생태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 전국귀농운동본부를 창설하여 귀농·귀촌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왔던 여류 이병철 선생이 경남 함안에 귀촌하신 후부터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와 태도를 밝히는 편지를 보내오신다. 매년 새해맞이 화두로 한 마디 문자를 선정하여 그 의미를 시로 밝힌다. 검은 호랑이의 해인 임인년 새해에는 ‘깨어날 성(醒)’자를 선정하여 반성과 성찰을 독려하는 편지를 보내오셨다. 선생의
2022년 무인년이 밝았다. 이른바 ‘마한 특별법’이 시행된 지 햇수로 2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대로 된 원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영암은 물론이지만, 나주는 말할 것 없고 함평도 마한 예산이 대폭 늘어나 바야흐로 지자체별로 마한을 연구하는 붐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영암은 현재 우리나라 남해를 지키는 제3함대 사령부가 있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마한 이래 이 지역이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호에 남해신사가 마한 시대부터 있었을 가능성을 거듭 확인하였다. 오늘은 지정학
장사리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당산나무인 감나무를 지나 경사가 제법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좁은 농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니 구릉의 끝머리에 다다랐다. 마침 밭에 나와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셔서 주민들이 이 지점을 어떻게 부르느냐고 여쭤보았다.마을주민들은 이곳을 ‘사머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뱀처럼 길게 늘어진 형국의 장사리 반도(半島)의 끝 지점이다. 사머리에 잠시 멈춰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동쪽으로 월출산이 우뚝 솟았고, 서쪽으로 은적산이 병풍처럼 길게 늘어섰다. 성양리·동호리를 지나
지역에서 일고 있는 마한 붐마한을 사랑하는 많은 영암군민의 도움으로 영암지역의 마한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세미나가 두 차례에 걸쳐 끝났다. 세계유산 등재는 우리에게 ‘꿈 같은 소리’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다. 하지만 꿈을 갖게 되면 꿈은 이루어진다. 물론 꿈을 이루기 위한 절박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절박’이라는 단어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다. 가령, 내년 대선에 어느 후보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는지를 필자는 본다. 나주 한전공대 유치가 더 중요할까, 장성 국립심혈관센터 건립이 더 중요할까. 국립심혈관센터
도리촌에서 나와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마을 입구에 장사리 마을이라고 표시된 입석이 보인다. 입석 하단에 마을 유래에 관한 글이 아래와 같이 새겨져 있다.장사리(長沙里)마을 유래“도장리 반도의 끝부분에 뱀 형국이어서 원래는 길 장(長)자와 뱀 사(蛇)자를 쓴 장사(長蛇)라는 지명이었으나 중간에 끝자가 모래 사(沙)로 바뀐 것 같으며, 마을 반도의 맨 끝이 가락 끝이라 하여 포구(浦口)였는데 그곳에 1500년대에 정씨가 들어와 살았다 하고, 그 후 밀양박씨와 고흥고씨가 도리촌에서 들어와 마을이 형성된 것 같다. 마을 앞에 400년 된
신덕정 5거리에서 서쪽으로 직진했다가 곧이어 왼쪽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오붓하게 자리잡고 있는 도리촌 마을이 나온다. 사방이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늑한 느낌을 준다. 도리촌(道里村)은 군서면 도장리(道長里) 1구이다. 원래 영암군 서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리촌, 장사리, 가내말을 병합하여 도리촌의 도(道)자와 장사리의 장(長)자를 따서 도장리라 했고 군서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도장리를 1구로, 장사리를 2구로 운영하고 있으며, 북동쪽은 해창리와 접하고 동남쪽은 마산리와 접경하고 있다. 반도 지
필자가 본보 연재 글을 쓰고 있을 때 전남의 마한 유산을 총괄하고 있는 전라남도 전남문화재연구소에서 ‘뿌리 깊은 마한’(2021) 책자를 보내왔다. 전남문화재연구소(소장 이범기)는 영암 시종 내동리 쌍무덤 발굴 조사기관으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 책은 전남문화재연구소에서 2021년 마한역사문화 교육총서 시리즈로 펴낸 것으로, 2021년 1년 동안 6회에 걸쳐 실시되었던 ‘마한역사문화교육 전문가 초청강연’을 통해 도민들에게 영산강 유역의 독특한 마한문화를 소개하고 발굴현장에서 일어난 다양한 이야기들과 지역 문화유산의 활용 방향에
마을의 수호신, 소나무영암지역 대부분의 마을 당산나무가 느티나무나 팽나무임에 반하여 신덕정마을은 ‘곰솔나무’가 당산나무 역할을 하고 있다. 곰솔은 흑송(黑松)의 순 우리말이다. 해풍에 강하여 주로 해안가에 방풍림으로 심었다. 표피가 두껍고 검은색을 띤다. 적송이 여성스러운 반면에 곰솔은 남성적이다. 가지의 뻗침과 삐침이 힘차고 거리낌이 없다.신덕정 소나무는 당당한 풍채와 기묘한 생김새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거대한 소나무 분재 같기도 하고 장삼자락 휘날리며 멋 떨어지게 한량무를 추는 선비 같기도 하다. 영암 고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
지난 12월 10일 오후 영암군, 전라남도관광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 마한역사문화연구회가 공동 주최하고 마한역사문화연구회가 주관한 ‘2021 마한문화권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학술세미나’가 월출산기찬랜트 트로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당초에는 오전과 오후에 걸쳐 종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가 확산되고, 변종 코로나까지 등장하는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여 12월 10일, 12월 29일 오후 양일에 걸쳐 하기로 변경하였다. 이번 세미나는 ‘영암지역 마한 유산과 세계유산 등재’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린 학술세미나였다. 12월 10일 세
소쿠리 명당에 자리 잡아오산로를 따라가다가 독립유공자 김재홍 선생의 공적비를 지나면 오거리가 나온다. 주민들은 이곳을 잿등이라고 부른다. 왼쪽으로 가면 낙안마을이 나오고 곧바로 가면 도리촌과 장사리가 나온다. 오른쪽 길은 목화정 마을로 통하는데, 지대가 제법 높아서 주변 풍광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이 구릉 한 가운데 신덕정의 명물인 500년이 넘는 수령의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있다.신덕정은 해창리에 속한다. 본래 영암군 서시면 지역으로 바닷가에 창고가 있어 창말, 창촌, 해창(海
역사는 인문학적 상상력 길러줘필자는 강의할 때나 대중 강연할 때 역사가 중요한 이유를 두 가지 꼭 이야기하고 본론에 들어간다. 하나는 과거의 사실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대표적 편년체 역사서로 유명한 중국의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이 당시 황제가 “지난 일을 거울삼아 치도(治道)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라는 의미에서 책 이름이 나온 것은 유명한 예이다. 어느 도로 구간에서 사고가 자주 난다고 하자. 그것은 우리가 그곳이 사고 다발 구간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고,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왜 그곳에서 자주 일어나지를 알
신덕정 가는 길원마산을 지나 해창리 1구인 신덕정마을까지 가는 길은 가삼봉에서 길게 뻗은 산줄기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신작로길이다. 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곳곳에 전설과 설화가 숨어 있다. 신덕정 못미처 길가에는 독립유공자 김재홍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오산로를 걷을 때 놓쳐서는 안 되는 흥미롭고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가삼봉의 소나무 전설원마산 마을 주민 오병길씨는 가삼봉 소나무에 대한 전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우리마을 앞 산을 주위 사람들은 가삼봉이라고 하는데 생긴 형태가 어른들이 시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