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후반 마한이 백제에 복속되었다는 통설을 반박하는 연구 성과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나주 반남 고분군과 복암리 고분군, 영암 시종 고분군 등에서 금동관, 금동신발, 환두대도, 대형 옹관 등 백제와 무관한 독자적 연맹체를 입증하는 유물들이 많다. 특히 6세기 초 백제 사신의 행차를 글과 그림으로 수록한 양직공도에서 마한의 왕국들이 전남 여러 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산강 유역의 마한 정치체들이 축적한 여러 유산을 통해 마한 사회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김영미 교수는 마한의 3대 정신으로 ‘평화·분권·개방’을 들었다. 김 교수는 구체적으로 다음의 예를 들었다. 

우선, 마한의 정치체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인근 지역을 무력으로 복속시킨 중앙집권적 정복국가와는 거리가 먼 소국이었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무기류가 상대적으로 드물게 나온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마한 연맹체는 평화공존형 소국 연맹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영산강 유역 마한 소국들은 700년 가까이 이웃과 연맹체를 결성해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던 지방자치의 원류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산강 뱃길과 서남해 바닷길을 이용해 백제, 가야, 왜, 중국과 활발히 교류하고 협력을 하였기 때문에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사회였다.

마한의 정체성은 ‘평화·분권·개방’이다 

김영미 교수는 마한의 정체성을 현대적인 의미로 ‘평화·분권·개방’으로 개념을 정리한 것은 탁견이다. 김 교수가 말한 이러한 개념은 필자가 이미 마한 사회의 특질로 설명한 바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에 마한의 특성이 나와 있는데, ‘정치지도자가 백성들과 섞어 살고 있다’는 표현을 마한 정치체의 대·소 차이가 변한·진한보다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얘기와 연결지어 보면 마한 정치세력은 항상 상대를 배려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한 연맹체는 상호 간 큰 전쟁 없이 800년 가까이 유지해 왔다고 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형성된 공동체 정신은 상대에 대한 배려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대·소의 차이가 적고, 민간 속에 지도자가 섞여 살았다는 것은 권력의 분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철저히 세력 균형을 꾀하는 것이었다. 

영산강 유역의 마한은 남해만을 중심으로 대륙과 왜·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왕국의 모습을 보였다. 시종, 반남, 복암리 등 내륙의 풍요로운 농업적 기반과 비단과 같은 특산물, 바닷가에서 생산되는 해산물 등을 매개로 대외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곳 영산 지중해 일대가 마한의 교역 중심지가 되어 외래문화가 주체적으로 수용되어 기존문화의 정체성이 더욱 새롭게 발전하였다. 원형과 방사형의 특질을 조화하여 새로운 옥야리 형식으로 발전시킨 옥야리 방대형 고분의 축조기술은 가야나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이렇게 보면 마한 사회는 개방적인 요소들 많이 보인다고 하겠다. 특히 남해만 입구에 있는 영암은 같은 영산강 내해에 속한 반남이나 복암리보다 문화의 유입이 상대적으로 빨랐다고 하겠다.

이렇게 마한의 정체성을 현재적 의미로 해석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역사는 결국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김영미 교수는 마한 문화권보다 한발 앞서가는 가야 문화권을 살피고, 이어 마한 문화권에서 앞으로 해결할 방안은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경상남도 내 지자체와 정치권은 지난 2000년부터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복원사업 추진을 역대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왔다. 그들은 이미 2010년 무렵 가야 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가야사 복원정비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설 때 100대 국정과제에 선정되어 타당성 조사를 거쳐 10년간 총사업비 1조2천억을 투자하는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뤘다. 특히 가야 유산의 세계유산등재는 이미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2022년 본 심사를 앞두고 있다. 다만 전북 남원시를 ‘기문 가야’로 표기함으로써 임나일본부를 인정하는 식민사관에 입각한 것이라는 일부 재야 사학계와 남원시민의 반발에 직면해 있는 것은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하여 방해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20년 동안, 좀 더 정확히 10년 전부터 가야 지역에서 가야 유산을 세계유산에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마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전남·북 지역의 시민사회, 학계, 정치계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마한이 한국 고대사의 뿌리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369년에 백제가 마한을 군사적으로 복속하였다는 주장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도 못하고 잇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개편 때마다 오히려 내용이 축소되고 있다. 그것도 이병도가 인용한 일본서기 기록에 근거한 것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세계유산등재 추진단 발족 서둘러야 

이러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영산강 유역 마한을 역사의 변방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적으로 마한이 한강 이남의 한국 고대사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경기, 충청, 전라도를 관할하는 넓은 구역임에도 전라남도와 광주시, 전라북도의 마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각기 달랐다. ‘마한특별법’이 발효되고 그것을 지역의 발전동력으로 삼으려는 전라남도의 정책 방향에 대해 다른 두 광역자치단체는 소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되면 마한사를 교과서에 포함하고 세계유산에 등재함으로써 지역의 정체성을 밝히고 지역발전의 수단으로 삼으려 한 전라남도의 방향성에 혼선을 초래하게 된다. 

이 같은 혼란은 광역단체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영산강 유역 마한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영암, 나주, 함평을 비롯하여 여러 해당 지자체들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가야 유산을 세계유산에 포함하기 위해 경남·북의 광역자치단체와 기초단체가 공동으로 힘을 합하여 활동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하루빨리 전라남도가 중심이 되어 세계유산등재 추진단을 결성하여 광역 및 기초단체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필자는 지난 1월 25일 모 방송국에서 마한특집 방송 해설자로 나서기 위해 방송 기획사와 인터뷰를 영암 시종 쌍고분 발굴 현장에서 했다. 필자는 담당 PD에게 영산강 유역의 마한이 마한사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마한의 관점에서 기획해달라고 당부했다. 담당 PD는 마한과 관련된 설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다고 했다. 백제의 마한이니, 마한의 백제니 하는 논쟁은 고전적이고, 장고분의 피장자의 성격을 둘러싼 학설, 임나일본부설과 맞닿아 있는 한·일 고대사의 논쟁점 등 학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마한 유산을 활용할 전략 수립해야

영산강 유역의 마한은 역사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조건이 넉넉하다. 지난 호에 언급하였지만, 2021년에 이어 2022년은 코로나 19로 인해 해외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하여 국내 여행을 할 수밖에 없다. 이때 김영미 교수는 마한역사 문화관광 추진전략 수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 교수는 광주·전남 주민을 대상으로 생활 관광지로 자리매김(마이크로 투어리즘)하게 하고, 가족단위 방문객에게 주말 가치관광의 기회 제공(배움+쉼) 및 안전하고 질 높은 교육기회를 제공하여 전국 수학 여행객을 유치하고, 마한 역사문화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체류형 관광을 유도(에듀투어리즘 레지던시)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역사는 원형 그대로 둔 채 홍보마케팅은 최신 트랜드를 접목(ICT융복합콘텐츠 거버넌스 구축)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마한 유물박물관 건립도 서둘러야  

이를 위해서는 마한 유물박물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암의 마한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많으나 현재 영암에는 이를 전시할 공간이 없다. 이는 영암에 마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마한유물을 보관·전시할 유물관이 없기 때문이다. 마한 유물박물관(전시관)이 속히 건립돼야 하는 이유다. 이번 대선 공약에 지자체의 역량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박물관을 건립할 때 고분을 고분답게,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방문객들의 감성(호기심, 스릴, 경외감)을 자극하도록 설계단계에서 컨셉을 도출하여 핵심 전시 컨텐츠를 발굴하여 연출, 디자인 등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이를테면 아동, 청소년, 수학 여행객, 일반인 대상 맞춤형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시종의 마한역사문화공원을 일본의 요시노가리 공원처럼 조성하는 방안을 영암군은 참고해야 한다. 

필자는 현재 발굴 중인 시종의 쌍고분의 내부를 경주의 천마총처럼 만들고,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한다면 마한의 살아있는 역사를 그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