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 (38)
군서면 월곡3구 호동마을(1)

마을 초입에 우뚝 서 있는 호랑이상. 삿된 기운이나 잡귀들이 얼씬도 못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마을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마을 초입에 우뚝 서 있는 호랑이상. 삿된 기운이나 잡귀들이 얼씬도 못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마을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오산마을에 들렀다가 내친김에 오산로를 따라 원마산, 신덕정, 도리촌, 장사리, 목화정, 신흥, 원해창까지 다녀왔다. 이제 다시 원래 목적지인 월출산 벚꽃 백 리 길로 돌아와 가던 길을 가기로 한다. 월곡리 4구인 주암마을에서 남쪽으로 통하는 조그마한 언덕길을 넘어가면 시리봉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이번에 답사할 호동마을이다. 주민들은 이 등성이를 범골잔등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이 등성이에 주막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 작은 길은 주암마을과 호동마을 주민들만 주로 사용하고 있다. 외지인들이 호동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영암에서 독천으로 통하는 4차선 벚꽃 가로수길을 따라가다가 과수원모텔 삼거리에서 왼쪽 2차선 도로로 접어들어야 한다.

여기에서부터 가장 운치 있는 벚나무 가로수길이 시작된다. 왼쪽 논 한가운데 시커먼 바위가 여러 개 눈에 들어온다. 딱 봐도 고인돌이다. 군서면사무소가 있는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옛 주유소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바로 좌회전하면 호동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표지석 맞은편에 우뚝 서서 포효하고 있는 호랑이상이다. 이 호랑이상만 봐도 이 마을이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범골, 즉 호동(虎洞)이다.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 8개나

올해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다. ‘국토지리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연지명 속에 포함된 호랑이 관련 지명은 389개다. 전국의 자연지명 10만 509개 중 호랑이 관련 지명은 0.4%인 389개로 그 중 전라남도가 74개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경상북도가 71개, 경상남도가 51개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산악지역에 호랑이가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태백산맥 등이 위치한 강원지역에 호랑이 관련 지명이 많을 것으로 얼핏 여겨지지만, 강원지역 호랑이 지명은 30개에 불과하다. 광주는 마을 이름 3개, 고개 1개 등 호랑이 관련 지명이 모두 4개로 조사됐다. 

전남 시·군별로는 영암군이 ‘산 모양이 호랑이처럼 생겼다’는 뜻인 ‘호등산’(虎嶝山)을 비롯해 8개로 가장 많다. 이어 여수 7개, 순천·나주·고흥·보성·신안 각 6개 등이다. 종류별로는 마을 이름이 50개(68%)로 가장 많고, 섬 16개(22%), 고개 2개(4%) 등의 순이었다. 호랑이 지명이 많은 이유는 선조들이 호랑이가 마을을 지키고 잡귀를 물리치는데 수문장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호암(虎岩), 호동(虎洞), 호덕(虎德), 호산(虎山) 등 호랑이의 형상을 인용한 지명이 많은 것으로 추측된다.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도 많아

영암의 호랑이 관련 지명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영암읍 역리 범바웃등, 삼호읍 산호리 호등마을, 삼호읍 용양리 호동마을, 신북면 이천리 호산골마을, 군서면 월곡리 호동마을, 학산면 묵동리 범실마을, 삼호읍 용당리와 삼포리의 경계에 있는 대아산과 소아산, 삼호읍 난전리 고마도 등이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이다. 삼호읍 용당리 대아산은 산 모양이 큰 암호랑이처럼 생겼다 해 ‘대아산’이라 불린다. 삼호읍 난전리 고마도는 호랑이의 모양을 띠고 있다고 해서 원래는 ‘호채섬’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산세가 험하고 숲이 많은 월출산 근처 마을보다 바닷가에 인접한 삼호에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다. 이 가운데서도 군서면 호동마을은 호랑이와 관련한 지명을 가진 영암의 여러 마을 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전설과 설화, 민담 및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옛적부터 마을 뒷산에 범이 살았다고 하며, 그래서 호랭이굴, 범굴로 불렀다고 한다. 마을 한복판에 전씨 종가댁이 있었는데 그곳에 범 바위와 개 바위가 있고 범 바위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마을 이름이 범 호(虎)자와 골 동(洞)자를 써서 호동이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범바우 전설에 이어 범시암 전설도 기억하고 있었다.

천석군 집에 있던 범바우 이야기

호동마을 회관에서 주민 서길순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우리 호동마을은 원래 범골이라고 했는데 옛날에는 호랭이굴이라고 했지라. 예날부터 우리동네 주민들하고 호랑이 하고는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어라. 그래서 범바우 전설이 전해온다요. 옛날에 우리 마을에 천석꾼이 살았다고 합디다. 그 천석꾼이 말 타고 곡수 치러(받으러) 다녔다고 해요. 그래서 호동마을이 외진 범골에 있어도 천석꾼이 사는 마을이라고 해서 바깥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솔찮이 알아주었제라. 어디가서 호동마을에서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와따 좋은 마을에서 사요이’ 하제라. 그런데 천석꾼 집터 마당에 큰 바위가 하나 있제라. 월출산 호랭이가 가끔 와서 놀다가곤 했다고 합디다. 또 하인들이 범샘골로 물을 길으러 갈 때는 범이 앞장서서 물을 길러왔다고 합디다. 그래서 그 바우를 범바우라고 한다요. 시방도 그 범바우가 남아 있제라. 원래 우리 동네가 경치가 좋고 인심이 좋아서 살기 좋은 마을인디 요새 외지사람들이 부쩍 많이 들어와서 살아요. 집 지슬 땅이 있냐고 물어본 사람들이 많은디 어디 땅이 있어야제라. 땅값도 솔찮히 올라부렀어라. 그란디 우리 마을에 먼 사업이 하나 들어와서 그 천석군 집터에 집을 짓는다고 범바우를 옮겼어라. 마을 한쪽에 잘 모셔놓았제라.”

호랑이가 물 먹으려 마을까지 내려와

“범시암은 사실 냇갈이어라. 산물이 내려오는 마을 뒤 냇갈인데 옴팍하게 폭 파진 웅덩이제라. 진짜 시암은 아니어라. 시암은 이녁이 직접 파야 시암이제. 그란디 그 당시에는 오염이 없응께 산물이라 깨끗하게 좋았제라. 마을에 공동시암이 없을 때는 그 범시암으로 물 질르러 가고 빨래하러 댕겼제라. 그란디 우리 동네 강곡아짐 말에 범시암에 물 질르러 가면 저그 산기슭에서 냇가 바우로 호랭이가 어슬렁어슬렁 으슥하게 내려오는 경우가 있었다고 그라요. 그랑께 그 범시암은 동네사람 공동시암도 되고 호랭이들 물 먹는 시암도 되지라. 옛날에 호랭이가 범바우에 놀러오고 물 질르러 다니는 일을 도와줬다고는 해도 여자들이 호랭이를 보면 간이 벌렁벌렁 해불지 않겄소? 강곡아짐이 그 호랭이를 보고 오메 걸음아 나살려라 함시롱 옹구동이(옹기 물동이)도 다 내버리고 내뺐다고 합디다. 인자는 빨래하러 가도 호랭이가 없어라. 다 옛날 얘기요. 그 뒤로 작두시암 파서 살다가 나중에 모터뽐뿌 설치해서 살았지라. 지금은 상수도가 집집마다 들어온께 시상 살기 좋제라.” 
 
<계속>
글/사진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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