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수령의 신덕정 소나무 / 대부분의 마을 당산나무가 느티나무나 팽나무임에 반하여 신덕정마을은 ‘곰솔나무’가 당산나무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소나무 아래 기록된 250년의 수령 표시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500년 수령의 신덕정 소나무 / 대부분의 마을 당산나무가 느티나무나 팽나무임에 반하여 신덕정마을은 ‘곰솔나무’가 당산나무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소나무 아래 기록된 250년의 수령 표시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마을의 수호신, 소나무

영암지역 대부분의 마을 당산나무가 느티나무나 팽나무임에 반하여 신덕정마을은 ‘곰솔나무’가 당산나무 역할을 하고 있다. 곰솔은 흑송(黑松)의 순 우리말이다. 해풍에 강하여 주로 해안가에 방풍림으로 심었다. 표피가 두껍고 검은색을 띤다. 적송이 여성스러운 반면에 곰솔은 남성적이다. 가지의 뻗침과 삐침이 힘차고 거리낌이 없다.

신덕정 소나무는 당당한 풍채와 기묘한 생김새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거대한 소나무 분재 같기도 하고 장삼자락 휘날리며 멋 떨어지게 한량무를 추는 선비 같기도 하다. 영암 고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수령과 품격을 갖춘 최고의 소나무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양장리 곰솔, 서호정 회사정과 간죽정 소나무, 모정리 원풍정 쌍송, 영암읍 영암공원 내 소나무 등 영암에서 내노라는 명품 소나무들이 꽤 있긴 하지만 신덕정 소나무처럼 가지의 변화가 심하고 수형이 멋들어지게 잡힌 소나무는 보기 힘들다. 이 신덕정 소나무를 구경시켜 주었을 때 놀라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수많은 화가들, 사진작가들이 이 소나무를 화폭과 카메라 렌즈에 담아갔다. 특히 이호신 화가가 그려서 과거 영암도기문화센터에서 전시했던 신덕정 소나무 그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벽 한쪽을 꽉 메울 정도의 대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50년 수령 표기는 수정돼야

신덕정마을 주민들의 소나무 사랑과 자부심은 말로 다하기가 힘들 정도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소나무는 적어도 500년 이상 동안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이다. 마을주민 김양호 씨와 서명진 씨는 현재 소나무 아래 기록된 250년이라는 수령 표시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리 마을에 하동 정씨가 입향한 지 500년이 넘었어요. 지금 17대 후손이 살고 있으니까 연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계산이 나오지 않습니까? 어른들 말씀 들어보면 하동 정씨가 처음 입향할 때 잔등에 이미 소나무가 심어져 있었다고 해요. 그 당시에는 작은 크기였겠지요. 아무튼 그때부터 자란 소나무가 현재의 저 모습이니 250년이라고 기록된 저 설명판은 고쳐야 됩니다. 군에다 몇 번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수정이 안 되고 있습니다.”

신덕정 소나무는 마을 잔등에 우뚝 서서 수백 년 동안 영산강 해창포구에 드나들던 배와 사람들을 묵묵히 바라보았으리라. 이제 바닷바람 대신에 들바람이 소나무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주민들은 소나무 주변을 정비하고 소박한 정자도 하나 세웠다. 그 정자에 ‘신덕정’이라는 현판이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한민족과 소나무

사실, 조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소나무만큼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주는 나무도 없을 것이다. 산업화 이전만 해도 “소나무 아래서 태어나 소나무와 함께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는 말이 당연시 될 만큼 사람들과의 관계가 밀접했다. 태어날 때 잡귀를 막기 위해 금줄에 솔가지를 끼워 놓았고, 혼례식의 초례상에도 꽃병에 소나무 가지를 꽂아 놓았다. 배고프면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먹었고 한가위 때는 솔잎 위에 떡을 쪄서 먹었다. 집도 소나무로 지었고, 관도 소나무로 짰다. 솔잎을 갈퀴로 긁어 모아서 군불을 지피는데 불쏘시개로 사용했고, 소나무 뿌리에 송진이 박힌 강솔을 캐다가 대보름날 깡통 돌리기를 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하루라도 소나무 동산에 가서 놀지 않은 때가 드물었다. 

소나무는 또한 정신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은연중에 우리 한민족의 의식 속에 절개와 지조, 장수와 풍류를 심어 놓았다. 세한송백(歲寒松柏:날씨가 추워진 뒤에라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이니, 세한삼우(歲寒三友:소나무, 대나무, 매화)니, 십장생(十長生)이니, 하는 말들도 모두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표현한 것들이다.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의 복귀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죽임을 당할 때 읊었던 성삼문의 시조는 소나무를 충절과 절개로 은유한 표현으로 유명하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소나무 위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학 그림(송학도), 노송(老松) 아래 앉아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잠겨있는 도인 그림(송하도인도) 등 소나무는 문인화의 좋은 소재이기도 했다. 현대라고 다르지 않다. 소나무가 품고 있는 이러한 씩씩한 기상은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가사로 애국가에도 등장한다.

한편, 우리 민족에게는 예부터 ‘솔바람 태교(胎敎)’가 전해 온다. 임신부가 소나무 아래에 단정하게 앉아 솔잎 사이를 지나가는 시원하고 장엄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미움, 시기, 질투, 증오, 원한 등과 같은 모든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장 편안한 마음을 유지한 채로 태아에게 청아한 솔바람 소리를 들려준다. 이것은 대자연의 청정한 기운을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온전하게 전달해주고자 애쓰는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정성이자 노력이다. 그 매개물로 소나무를 택한 것이다.

소나무와 성주풀이

우리 민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성주풀이’라는 민요가 있다. 최근에는 진도 출신 가수 송가인이 불러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노래 속에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 솔씨 받아’라는 내용이 나온다. 필자는 노래를 들으면서 도대체 저게 무슨 뜻인지 몹시 궁금했다. 나중에 문헌을 찾아보니 성줏굿 무가에 나오는 성주신 신화에서 유래한 내용이었다. 성주는 가신(家神) 중에서 집을 관장하는 최고의 신인데, 대들보에 좌정하므로 상량신(上梁神)이라고도 한다. 성줏굿 무가(巫歌)에서 성주신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성주는 본시 천상의 천궁에 있었는데, 하늘에서 죄를 지어 땅으로 정배된다. 강남에서 오던 제비를 따라 제비원에 들어가 숙소를 정하고는 집짓기를 원하여 제비원에서 솔씨(소나무 씨앗)를 받아 산천에 뿌린다. 그 솔(소나무)이 점점 자라 재목감이 되자, 성주는 그 중에서 자손 번창과 부귀공명을 누리게 해 줄 성주목을 고른다. 성주목은 ‘산신님이 불끄러 오고, 용왕님이 물을 주어 키운’ 나무이므로 함부로 베지 못하고 날을 받아 갖은 제물로 산신제를 올린 후에 베어 내어 다듬어서 집을 짓는다.” 

굽은 솔이 선산을 지킨다

나는 소나무와 관련된 표현 중에서 특히 “굽은 솔이 선산 지킨다” “못생긴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속담을 제일 좋아한다. 잘 생기고 쭉쭉 뻗은 소나무는 대들보나 기둥감으로 다 팔려 나가고 굽고 못생긴 소나무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선산 구석에서 홀로 쓸쓸하게 클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부터 고향마을에 내려와 선산을 지키며 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꼭 못생긴 소나무를 닮은 것 같아서다. 그런데 요즘은 시대가 변했다. 지금은 신덕정 소나무처럼 굽고 휘고 낭창하게 늘어진 소나무가 값이 나간다.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제 제대로 평가받고 인정받는 시대가 되길 희망한다.                  

 <계속>
글/사진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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