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94) 마한의 심장, 영암을 답사하다(下)

지난 12월 1~7일 ‘마한길’ 답사에 나선 영암지역 고등학생들이 시종 내동리 쌍고분과 남해신사 등 마한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지난 12월 1~7일 ‘마한길’ 답사에 나선 영암지역 고등학생들이 시종 내동리 쌍고분과 남해신사 등 마한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역사는 인문학적 상상력 길러줘

필자는 강의할 때나 대중 강연할 때 역사가 중요한 이유를 두 가지 꼭 이야기하고 본론에 들어간다. 하나는 과거의 사실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대표적 편년체 역사서로 유명한 중국의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이 당시 황제가 “지난 일을 거울삼아 치도(治道)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라는 의미에서 책 이름이 나온 것은 유명한 예이다.
 

어느 도로 구간에서 사고가 자주 난다고 하자. 그것은 우리가 그곳이 사고 다발 구간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고,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왜 그곳에서 자주 일어나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그곳이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난 곳이고, 그 빈발 이유를 알고 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사실을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다음으로 역사를 공부하면 4차 산업사회에 필요한 인문학적 사고, 즉 종합력, 분석력, 상상력이 길러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가 과거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말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기록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기록하는 이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고,  발굴 조사되고 있는 유물도 수많은 유물 조각의 하나일 따름이다. 각각의 기록이나 별개의 유물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다. 이들 각각의 무의미한 기록이나 유물을 역사가가 엮어 스토리로 만들 때 비로소 역사적 사실이 되어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각각의 조각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연결이 안 될 때는 상상력이 동원된다. 이러한 작업을 자주 하다 보면 바로 4차 산업사회에 필요한 ‘초(超) 연결성’, ‘초(超) 지능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 그 가운데에서도 역사학을 중요시하는 까닭이다.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은 신입생이 800명도 채 되지 않은 작은 대학이지만, 작지만 강한 대학이라는 ‘강소 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학생 수는 인접한 다른 학교에 작지만, 교양 교과가 200과목을 넘는다. 역사 과목만 하더라도 4과목, 10반이나 된다. 그만큼 인문교육 역량강화에 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같은 역사학자라 하더라도 필자처럼 고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여느 시대 전공자보다 훨씬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를 엮어내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길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말 의병, 3·1운동, 일제 강점기, 5·18 등 현대사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여러 권의 저술서를 냈다. 필자의 은사이신 김두진 전 역사학회장께서는 고대사를 공부한 사람은 사료를 꼼꼼히 분석한 능력이 있어 현대사를 할 수 있지만, 자료가 풍부한 현대사를 공부한 사람은 자료가 넉넉하지 못한 고대사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일리 있는 이야기라 하겠다.
 
영암에는 ‘텃세’가 없다 ‘왜’

지난 호에도 언급됐지만, 12월 1~7일 영암지역 고등학교 가운데 희망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마한길’ 답사를 하였다. 예산의 한계 때문에 신청 학교를 다 소화하지 못하였다. 답사를 진행하면서 필자의 첫 번째 관심은 학생들의 출신지였다. 영암이 뿌리인 학생과 최근에 이주해온 학생들 간에 영암을 보는 인식은 다를 것이다. 삼호고등학교는 대불산단이라는 특이성 때문에 외지인의 비율이 높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지만, 낭주고등학교도 뜻밖에 외지인의 비율이 높았다.

필자는 두 학교의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학생들에게 영암에 ‘텃세’가 있는지를 물었다. 바로 “전혀 없다”는 대답이 나왔다. 필자는 이들에게 이렇듯 영암에 ‘텃세’가 없는 까닭은 ‘마한의 심장, 영암’의 전통이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하였다. 즉 영산 지중해 입구에 있는 영암은 일찍부터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대표적 국제항구인 상대포나 남해포를 중심으로 문화 접촉이 활발하였다. 외래문화에 대한 배타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토착문화가 약해버리면 외래문화에 쉽게 흡수되거나 동화되기 쉽다. 이 지역의 문화가 수백 년 넘게 정체성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곳의 문화가 이미 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서호리 지석묘 등은 일찍이 역사가 형성된 곳임을 말해준다. 경북이나 충청에서 온 이주민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지역의 전통문화에 자연스럽게 용해되면서 새로운 영암인으로서 긍지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암지역의 마한 역사라고 얘기를 하니 학생들이 수긍하였다.

자존감이 강한 역사성을 지닌 영암

필자는 마한 얘기를 마한시대로 끝내지 않고 이후의 영암역사로 확장을 한다. 마한은 그 정체성이 강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중국에서조차 이들을 용맹하다고 기록하였고, 그 용맹함을 상징하는 매(응준 鷹隼)가 마한의 상징물로 나타났다고 설명하였다. 시종·반남과 함께 대표적인 영산강 유역 마한 세력권인 나주 다시들 복암리 고분에서 ‘응준’ 명문이 있는 녹유탁잔이 출토된 것은 그냥 우연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마한인들은 외세의 압박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다. 최초의 의병장 양달사로 대표되는 영암의 의병 전통은, 한말 심남일이 이끄는 최대의 의병부대 호남의소를 구성하여 일본군 정규군 14연대와 물러서지 않는 전쟁을 치렀다. 3·1운동 때 구림 회사정 위에 올라 독립선언문을 읽으며 만세 시위를 이끌다 고문으로 옥중 순국한 박규상(현 서울대 약대 전신인 경성 약학전문학교 출신으로 대구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죽음 일보직전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서호강에 이르렀을 때 숨을 거둠), 그리고 영보 농민운동의 불굴의 항전은 강건한 마한인의 전통을 이은 영암인의 숭고한 기록이다. 

영암여고는 앞서 두 학교와 달리 마한의 심장인 시종에 더 가까운 탓인지 마한의 역사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 특히 시종 출신인 한 학생은 자기 고장의 얘기가 나오자 어려서 놀았던 곳이라 하며 눈빛이 빛났다. 마한문화공원 월지관 강당의 수용인원의 한계로 1, 2조로 나뉘어 특강을 하였다. 마침 서울에서 내려온 유인학 마한역사문화연구회장은 학생들에게 마한의 중요한 역사성과 마한사 연구가 왜 영암에 필요한가에 대해 열강을 했다. 

마한답사 프로그램 확대해야 

필자는 학생들에게 내동리 쌍무덤을 답사하면서 신촌리 9호분 금동관과 동일한 영락(瓔珞, 구슬)과 날개가 출토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그 유물이 신촌리와 내동리 두 정치세력이 동일한 세력임을 확인해준다고 설명하고, 그것을 다시 파워포인트로 정리해주니 훨씬 설득력 있게 받아들였다. 이어 그 유물을 인근 국립나주박물관으로 이동하여 확인하니 더욱 실감 있게 받아들였다. 즉 학생들은 유물이 출토된 발굴 현장에서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고분의 성격을 설명 듣고, 강당에서 관련 내용을 상세히 파악한 후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을 답사하므로 이른바 기-승-전-결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이처럼 마한 역사와 영암의 상관성을 알게 되면, 영암에서 거주하든, 외지로 나가 취업을 하든 마한 전도사는 아니어도 마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답사의 성과는 적지 않았다. 특히 학생들이 마한의 현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그것을 기념하고, 어떤 학생들은 마한 답사기를 쓰겠다고 한다. 특히 답사에 함께 참여한 세 학교 12명의 교사들께 마한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고 설명할 수 있었던 기회는 또 다른 성과다. 이 같은 답사의 기회를 마련해준 영암군과 군의회에 감사한 마음을 지면을 통해 전한다. ‘마한길’ 답사 프로그램은 내년에 더욱 알차게 꾸며 마한의 역사를 복원하고 궁극적으로 마한 문화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주춧돌이 되고자 한다.

지난 12월 5일, 광주–강진 고속도로 5공구 나주 봉황면 현장에서 광주 명화동 고분과 비슷한 5세기 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되는 전방후원형 고분이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지표조사로 확인된 발굴현장은 앞으로 추가 정밀조사가 이뤄진다면 고분의 성격이 더 분명해질 것이다. 이처럼 영산강 유역의 마한 영역은 이곳이 마한의 심장부였기 때문에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마한유적이 많음은 당연하다.
                       
<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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