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억새밭에서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어찌 억새꽃 뿐이랴.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막 흔들리더라.흔들리지 않으면중심을 잡을 수 없다.세상 모든 물상들은 흔들리며 중심을 잡나니그대, 마음껏 흔들려라.지나가는 산들바람에도거대한 태풍에도작은 한숨에도일단 흔들려라흔들려야 사는 것이다흔들려야 중심이 잡히고손님처럼, 가을처럼고요가 온다도선국사비문에 적혀있는 내용을 세 차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했다. 월출산과 도갑사뿐만 아니라 우리 영암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인물 중 도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구림마을은 도선
최근 ‘마한의 심장, 영암’과 관련하여 반가운 뉴스가 있었다. 이미 보도된 바 있듯이 시종면 옥야리 고분군 가운데 17호분 발굴조사 결과 대표적인 영산강식 토기인 유공광구소호를 비롯하여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고, 특히 이번 17호분에서도 인골이 출토되어 앞서 나온 19호분의 인골과 유전자 비교를 통해 고분 간의 친족 관계를 유추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고분 발굴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렇듯 시종을 중심으로 한 영암 일대는 고대 마한 유적의 보물 창고이다. 이들 유적·유물이 지닌 가치를 제대로 정리한다면 ‘마한의 심장,
도선의 마을 구림(鳩林)도선국사비는 1636년(인조 14년) 4월에 시작하여, 1653년(효종 4년) 4월에 완공했다. 무려 17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기계 장비 하나 없이 오직 수공으로만 제작했으니 옛사람들의 수고로움과 정성이 어떠했을지 상상하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런데 비문 끝에는 다음과 같은 특이한 내용이 적혀 있다.“청음(淸陰)과 신독재(愼獨齋) 양(兩) 선생의 성(姓)과 휘(諱)는 언젠가 무도한 자가 깎아 없앴다. 무진년(숙종 14, 1688) 10월 김기창(金箕昶)이 고쳐 새긴다.”청음은 김상헌의 호이고 신독재는 김집
최근 영암군은 ‘외국인 주민 군정 모니터링단’을 출범하고 발대식을 가졌다고 한다. 1년 이상 영암에 거주하고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외국인 주민 가운데 12명을 선발, 운영할 계획이다. 이들의 국적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네팔,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 8개 국적의 외국인 근로자, 통·번역사, 결혼 이민자 등 다양한 계층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노동력의 부족 및 국제결혼 등으로 인해 한국에 이주하거나 귀화하여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문화인들이 10여 년 전에 100만 명을 훨씬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영암은 대
매년 새해 아침이면 연하장을 보내주시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전국귀농운동본부를 창설하여 초대 본부장님을 맡아 귀농귀촌운동을 선도하셨던 여류 이병철 선생님이 그분이시다. 2023년 한 해 동안 마음에 새겨둘 글자로 ‘성(省)’이라는 글자를 택하셨다고 한다. 손수 쓰신 글씨와 함께 시 한 편을 보내주셨다. 도갑사 도선국사비 만나러 가기 전에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 지면에 싣는다.2023년, 새해를 품고 갈 한 글자를 생각하다가 ‘성(省)’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습니다.‘성(省)’의 자전적 의미는 ‘살피다. 깨닫다. 명심하다.
최근 필자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백제계 도래인 정체성에 대한 일 고찰’이라는 논문(선사와 고대 70, 2022)을 학회지에 게재하였다. 도래인(渡來人)은 한반도에서 왜(일본)에 건너간 이주민을 지칭하는 말이다. 도래인 대부분이 마한·백제계 출신이어서 ‘도래인’ 그러면 마한·백제계를 생각한다, 하지만, 백제와 통합 이전인 6세기까지는 도래인을 구성하는 대부분은 마한계라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영산강식 토기’라 명명하는 토기들이 일본에서 대량 확인되고 있는 데서 이러한 추측을 할 수 있다. 박사 왕인도
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비명과 서문(비석 앞면)금산(金山)에 사찰을 건립함으로써 숭두타(崇頭陀)라는 이름을 길이 남겼으며, 강물에 떠내려온 오이는 도리어 대사의 이름을 널리 전하게 되었다. 진리의 문을 열고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서 천지의 조화를 무시하고 그의 신비함을 나타냈다. 도갑사를 창건하여 수도 도량을 개설하여 팔부신장(八部神將)의 옹호를 받아 모든 불자들이 복을 닦게 되었다. 이와 같이 위대한 대사의 업적은 마땅히 비석에 새겨서 길이 후대에 전해야 하므로 감히 기존에 있던 마멸된 비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 국사의 휘(諱)는
‘서기’ ‘국사’ ‘신집 5권’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독자들이 초중고 시절 귀가 아프게 외웠던 삼국의 역사서이다. 백제, 신라, 고구려 역사서이다. 근초고왕, 진흥왕, 영양왕 때 저술된 책들이다. 이 역사서는 모두 삼국의 국력이 왕성할 때 편찬되었다고 배웠다. 우리가 출세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과거의 나를 그럴듯하게 세탁한다.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그의 선대 이야기를 신화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대표적 예이다. 일연도 삼국유사 서문에서 한 나라를 건국한 인물은 보통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출생과 관련된 얘
필자는 요즘 들어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부쩍 강조한다. 정체성은 자존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상대를 존중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기 열등감이 강하여 늘 욕구 불만에 가득하고 남에 대한 배려도 약하다. 논어에서 말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은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말이다. 곧 주체성을 지니되 상대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하고 있다. 글로벌 사회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공자님 말씀을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이 상호 유기적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화이부동’의 단어 하나로 확인할 수 있다. 영암
도갑사와 조선 시대 선비들구림마을에 살았던 향촌 선비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월출산을 유람하러 온 시인 묵객들이 남긴 시문을 읽으면서 새삼 새롭게 느낀 것은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되고 있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사찰의 스님들과 생각보다 많은 교류와 소통을 했었다는 사실이다. 셀 수없이 많은 시문이 있지만 여기 대표적인 글 몇 편을 소개한다. 구암(龜岩) 임호의 유고(遺稿)구암공 임호는 1540년 진남제를 축조하여 간척지를 조성한 월당 임구령의 장남으로 회사정을 짓고 구림 동계를 중수하여 구림 사회의 기틀을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던 사람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에 의해 정착우리나라의 문수신앙은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에 의해서 정착되었다. 『화엄경』에 의하면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가 중국의 청량산이라고 한다. 자장이 청량산의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보살 석상 앞에서 7일 동안 기도하여 보살로부터 범어로 된 사구게(四句偈)를 받았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범어로 된 내용이어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때 한 노승으로부터 꿈(범어 게송)에 대한 해석을 듣고 부처님의 가사(袈裟)와 발우를 받았다. 노승은 신라의 왕이 여성이라 위엄이 없기 때문에 이웃 나라들이 얕보는 것이
‘혁신으로 도약하는 더 큰 영암’의 군정 목표 아래, 우승희 군수가 10개 분야, 120개 공약을 확정하고,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혁신 시책 발굴과 군민소통 창구를 만드는 의미 있는 한 해를 마무리했다.큰 위기 속에서 변화와 혁신으로 미래성장기반을 구축하며 군민과 함께하는 새로운 혁신 영암군의 2022년 한 해를 결산해 본다.▣ 위기 속에서 속도감 있는 행정올해 영암군은 제3회 정리 추경 기준 7천998억원으로 8천억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대폭적인 재정 확장 속에서도 영암군은 채무 제로를 유지하고 있다. 복지, 문화관광, 스
필자는 1년이면 외부 특강 기회가 수십 차례 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성인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을 상대로 고대 마한부터 현대에 이르는 전남의 지역성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역사를 알려는 까닭은 자아 형성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한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영암은 한민족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이순신 장군이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표현을 영암인과의 편지글에서 하였고, 서울 숭실대 박물관에 보관된 독자적인 문화의 특질을 드러낸 거푸집이 영암에서 출토된 사실들은 이 지역의 역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문수신앙의 발상지, 도갑사도갑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문수신앙의 발상지, 산문에 문수·보현동자가 모셔져 있는 도갑사 해탈문”이라는 도갑사 소개 글이 나온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화신으로 일컬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문수신앙을 대표하는 사찰은 오대산 상원사와 월출산 도갑사로 알려져 있다. 홈페이지에도 소개되어 있듯이 도갑사에서는 문수신앙과 관련한 특별한 유물과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해탈문에 봉안된 문수동자상이다. 사자를 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기사문수동자상’이라 부른다. 이는 지혜를 상징함과 함께 위엄과 용맹을 표현한
메이지 시대, 토요도미 히데요시필자는 최근 광복회 전남도지부의 ‘국외 항일유적지 탐방단’의 해설 강사로 일본을 다녀왔다. 우리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오사카 지역은 마하 시기에 도래인들이 이주하여 개발한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일본에 건너간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집단촌을 형성하며 지낸 곳이 오사카 지역이다. 오사카, 나라에는 고대 마한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번 답사에서 필자가 새롭게 확인한 역사적 사실이 있어 잠깐 소개한다. 오사카성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
도갑사에는 도갑사의 역사와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비가 두 개 있다. 도선국사비와 수미왕사비가 그것이다. 도선국사는 신라 말에 도갑사를 창건한 승려이고, 수미왕사는 조선 초에 도갑사를 중창한 승려다. 도갑사 경내를 둘러보다 보면 먼저 수미왕사비를 만나게 된다. 대웅보전 뒤 국사전 곁에 자리하고 있다. 우선 수미왕사비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도갑사 수미왕사비는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자취를 기록한 비이다. 경내 국사전 곁 다소 외진 곳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이 비는 돌거북인 귀부와 비의 몸체, 그리고 용을 아
사찰 내 불전(佛殿)과 전각의 의미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도입된 때는 삼국시대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는 372년 소수림왕 때 전진의 '순도'가 불경과 불상을 가져왔다고 알려져 있고, 신라는 눌지왕 때 고구려 승려 '아도'가 전래했는데 이른바 '이차돈의 순교'로 527년 법흥왕 때 공인되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인도 간다라국에서 온 마라난타라고 하는 고승이 384년 침류왕 원년에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했다고 한다. 이 연대로 추정해본다면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가 1600년이 넘었다. 이 기간 동안 불교가
지난 12월 1일 기찬랜드 내 트로트가요센터에서 (사)마한역사문화연구회가 영암군의 지원을 받아 ‘해양제사 유적과 월출산’이라는 주제로 마한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번 세미나는 월출산과 남해만을 중심으로 형성된 해양제사의 특징을 찾아보려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해상강국 마한의 중심지로서 영암의 역사적 위치를 밝혀 세계유산 등재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세미나 주제를 정하였다. 국립마한센터 유치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마한의 심장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영암에서 열린 이번 세미나가 영암의 역사문화자원을 새롭
사찰의 삼문사찰의 문은 부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은 불전(佛殿) 앞에 세 개의 문을 세워놓고 있다.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해탈문) - 이 세 개의 문을 일컬어 삼문(三門)이라고 한다. 사찰에 세 개의 문을 두어 부처를 모신 불전에 들어서는 길을 길게 유도하는 방식은 고려 말부터 유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갑사에는 사천왕문은 없고 일주문과 해탈문, 두 개의 문만 있다. 일주문(一柱門)은 사찰 삼문 중에서 가장 앞에 있는 문이다. 일주문은 기둥이 일렬로 서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기둥을 일직선으로 세운
12월 1일(목) 영암군의 지원으로 (사)마한역사문화연구회가 주관한 ‘2022 마한 학술세미나’가 월출산 기찬랜드 내 한국트로트가요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세미나는 ‘해양제사 유적과 월출산’이라는 주제로, 월출산과 남해만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대 마한 시대부터 형성되어 있는 제사유적을 살핀다. 이를 통해 이 지역 제사유적의 특징이 해양문화와 관련이 있음이 드러나리라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고대 해상왕국 마한의 정체성을 이 지역이 대변하고 있음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를 기대한다. 이번 세미나와 관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