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237) 월출산 해양환경과 관음신앙(하)

김홍도의 남해관음도 /  신라말 고려초 영암-흑산도-명주 사단항로(황해남부 사단항로)는 고려와 송이 가장 활발하게 활용했던 해상교통로였는데, 고려로 향하는 사신선과 무역선들은 출항하기 전 중국 보타산에서 항해 안전기원 의례를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18세기 말 단원 김홍도가 그린 남해관음도(좌)와 중국 영파산의 남해관음상(우).
김홍도의 남해관음도 /  신라말 고려초 영암-흑산도-명주 사단항로(황해남부 사단항로)는 고려와 송이 가장 활발하게 활용했던 해상교통로였는데, 고려로 향하는 사신선과 무역선들은 출항하기 전 중국 보타산에서 항해 안전기원 의례를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18세기 말 단원 김홍도가 그린 남해관음도(좌)와 중국 영파산의 남해관음상(우).

필자는 1년이면 외부 특강 기회가 수십 차례 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성인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을 상대로 고대 마한부터 현대에 이르는 전남의 지역성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역사를 알려는 까닭은 자아 형성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한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영암은 한민족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순신 장군이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표현을 영암인과의 편지글에서 하였고, 서울 숭실대 박물관에 보관된 독자적인 문화의 특질을 드러낸 거푸집이 영암에서 출토된 사실들은 이 지역의 역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정체성이 한말 의병전쟁의 중심에 ‘영암 의병’이 있게 하였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성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게 하였다.

마한의 심장부인 영암은 영산 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발한 문화교류와 해상무역을 통해 이룩한 마한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이러한 지리적·역사적 환경 때문에 영암인들은 수백 년 이어온 마한의 전통 때문에 ‘텃세’를 배격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포용성을 지녔다.

엊그제 특강한 외지인의 비중이 큰 삼호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이러한 영암의 역사적 특질을 설명함으로써 ‘새로운 영암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영암고등학교를 찾아서는 학생들과 함께 ‘영암, 마한’을 외쳤다. 영암군과 영암교육지원청이 해당 학교와 연계한 체계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월출산의 지정학적 특징

지난 호에 월출산에 관음신앙이 형성되어 있음을 송화섭 교수의 이야기를 빌어 설명하였다. 비록, 관음신앙의 구체적 모습이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지는 않으나 월출산의 지정학적 특징과 전하는 설화 및 인근 사찰 등에 존재한 관음불을 통해 이곳에 관음신앙이 광범하게 유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해본다. 

“보타낙가산의 관음성지는 해변굴을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부안 죽막동과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에는 해변굴(海邊窟)이 조성되어 있다. 부안 죽막동의 해변굴은 개양할머니의 상주처로서 관음굴로 볼 수 있으며, ‘삼국유사’ 낙산 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에는 해변굴에 관음진신이 상주한다고 밝혀놓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암군 산천조에 관음굴(觀音窟)이 등장한다. 월출산 관음굴은 문헌 기록에만 등장할 뿐 아직까지 어디에 위치하는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관음굴은 남해관음의 정통성을 상징하고 있는데, 월출산에서 관음굴이 발견된다면 월출산을 관음성지로 구체화시킬 수 있다.”     

한편, 필자는 남해신사는 일찍부터 영산 지중해를 오가는 수많은 선박의 무사 항해를 해신에게 기원하는 신당의 모습을 후대에까지 확인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곧 남해신사에서 모시는 해신의 모습은 월출산에 나타나는 관음불과 같다고 추측할 수 있다. 관음신앙 최고 전문가인 송화섭 교수는 필자의 추론에 힘을 실어주는 발표를 이번 세미나에서 하였다. 특히 필자와 함께 찾은 남해신사를 보며 해신 사당으로서의 본래의 기능이 드러나게 복원함으로써 역사관광자원의 토대로 삼아야 함을 강조했다. 

송 교수는 나주의 회진포·영산포와 영암 덕진포·상대포에서 중국이나 일본 등으로 출항하기 이전에 남해포의 해신당에서 항해안전 기원의례를 거행하였다고 살폈다. 통일신라 시대에 나주 회진과 영암 상대포에서 선박이 출항하면 흑산도를 경유하여 항주만 명주(영파) 정해현으로 직통하는 황해남부 사단항로가 개설되어 있었다. 이 황해남부 사단항로는 고려 전기에 송과 고려가 거란을 견제할 목적에서 조공무역과 문물교류를 더욱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송은 고려가 대거란 항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고려와 유착관계를 강화하기 위하여 등주에 고려 사신을 맞이할 영빈관(迎賓館)을 조성하고, 명주에는 고려관(高麗館)을 짓고 고려 사신을 맞이하였다. 특히 고려 현종은 1014년(현종5)에 송에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1022년(현종13)까지 거의 해마다 송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현종은 북방의 국경에 군사를 집결시켜 거란 침공에 대비하였고, 남방의 해상항로, 즉 황해남부 사단항로를 이용하여 송과 외교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였다. 고려전기 송과 고려의 해상교류에서 가장 해상왕래가 빈번하였던 곳이 영암 상대포와 남해포였을 것이다. 무안반도 영암은 중간 기항지로서 기능을 하였고, 남해포의 남해당은 항주만의 명주항을 향하여 출항하기 전에 항해안전 기도를 드렸던 곳으로 보아야 한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중국의 관계

나말려초에 영암-흑산도-명주 사단항로(황해남부 사단항로)는 고려와 송이 가장 활발하게 활용한 해상교통로였다. 명주(영파) 정해현 매잠섬은 북송의 서긍사신단이 출발한 지역인데, 이 ‘매잠도(梅岑島)’가 오늘날 보타산이다. 매잠섬이 출항지로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관음성지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보타산에는 신라 상인과 관련하는 신라초(新羅礁), 신라서(新羅嶼)가 있지만, 고려도두(高麗道頭)도 있다. 명주의 고려관과 보타산의 고려도두는 고려전기에 고려 사신들의 왕래가 빈번하였음을 말해준다. 황해남부 사단항로는 황해중부 횡단항로보다는 항해의 위험이 높다. 

그래서 고려로 향하는 사신선과 무역선들은 출항하기 전 보타산에서 항해 안전기원 의례를 거행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남해안을 오고가는 여러나라의 선박들이 보타산을 중간 기항지로 활용하면서 보타낙가산이 관음성지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라비아 상인들과 이슬람 상인들이 남인도의 남해를 경유하고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여 태평양으로 진출하면서 남인도의 포탈락카(potalaka)와 닮은 중국 남해의 매잠도를 포탈락가로 부르게 된 것이다. 매잠도가 관음성지화 하면서 보타산과 낙가산이 결합하여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의 지명이 탄생하게 되었다. 남인도에서 남해항로를 타고 올라온 관음보살은 자연스럽게 남해관음(南海觀音)이 되었다. 이 남해관음이 바닷길 따라 영암만의 남해포까지 올라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중국 보타낙가산에서 남해관음이 남해항로(황해남부 사단항로)를 영암만의 남해포에 이르렀고 남해당에 남해관음을 봉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해항로를 오고가는 상선과 무역선들은 남해포의 남해당에 들러 항해안전 기원의례를 거행하고 출항한 것으로 보인다. 곧 남해신은 항해 보호신이어야 한다. 바다에서 항해 보호신은 관음보살이며, 남해의 관음보살은 남해관음이다. 나주 남해당의 남해관음은 중국 주산군도 보타낙가산 남해관음과 동일한 관음보살로 보아야 한다. 동아시아 남해문화권에서 남해관음은 백의관음보살로 출현하고 있다. 백의관음보살은 중국에서 태동하여 동아시아 남해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남해관음과 백의관음이 함께 등장하는 곳이 주산군도 보타낙가산이다.  

고려 현종이 꿈에 현몽하였다는 백발수신은 남해당의 해신일 수 있다. 백발수신의 정체는 무위사 극락전 후불벽리에 그려진 백의관음도와 닮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무위사 백의관음도는 다른 수월관음도와 달리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얀 가운을 몸에 감싸고 있다. 나주 남해당의 해신은 남해관음이며 항해 보호신으로 보아야 한다. 무위사의 관음보살도는 바다 위에 연꽃잎을 딛고 항해하는 모습이다. 무위사 백의관음보살과 남해당의 백발수신은 항해 보호신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18세기 말 단원 김홍도는 남해관음을 그렸다. 단원의 남해관음은 조선 후기까지 남해관음의 신앙과 전통이 내려왔음을 의미한다. 바다에 우뚝하니 선 모습이 무위사의 백의관음도와 흡사하다. 그렇다면 나주 남해당에 봉안된 항해 보호신의 당신도 역시 백의관음보살로 묘사되는게 타당하다. 그러나 현재 남해당의 당신도(堂神圖)는 양양 동해묘의 당신도를 모사하였기에 남해당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다. 동해묘의 당신도는 중국 계통의 용왕을 그린 것으로 보이나, 백의관음보살도에는 선재동자와 용왕이 함께 백의관음보살의 호위신(護衛神)으로 등장하고 있다. 남해당의 당신도는 남해당의 정체성이므로 이 문제는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송 교수는 이야기 한다.            

<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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