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75)
■ 도갑리1구 죽정마을(19)

월출산 억새밭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어찌 억새꽃 뿐이
랴.
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막 흔들리더라.

흔들리지 않으면
중심을 잡을 수 없다.

세상 모든 물상들은 
흔들리며 중심을 잡나니
그대, 마음껏 흔들려라.


지나가는 산들바람에도
거대한 태풍에도
작은 한숨에도
일단 흔들려라

흔들려야 사는 것이다

흔들려야 중심이 잡히고
손님처럼, 가을처럼
고요가 온다


도선국사비문에 적혀있는 내용을 세 차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했다. 월출산과 도갑사뿐만 아니라 우리 영암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인물 중 도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구림마을은 도선국사의 발자취가 돋보이는 곳이다. 도선국사 탄생설화에서 구림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고 마을 곳곳에 도선과 관련된 전설과 설화를 담고 있는 유적이 넘쳐난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도갑사를 나온 후에 구림마을을 답사하면서 다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볼 계획이다. 

미륵전 - 석조여래좌상

한편, 도선국사비를 감상한 후 그냥 하산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주변 풍광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도 볼만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도선국사비에서 용수폭포 방향으로 100보 정도 걷다가 용화교 앞에서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용화문이 나오고 이 문을 지나면 석불을 봉안한 미륵전이 있다. 미륵전 편액 글씨는 학정 이돈흥(1947~2020) 선생의 작품이다. 그는 일명 ‘학정체’라고 하는 글씨체를 개발하여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호남을 대표한 서예가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미륵전에 봉안된 이 석불이 미륵불이 아닌 석조여래좌상이라는 점이다. 보물 89호로 지정된 이 석불은 원래대로라면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어야 한다. 도갑사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가운데 석조여래좌상을 모셨던 전각이 불에 타 없어지고 석불만 남아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을 현재 자리로 옮겨와 전각을 짓고 미륵전이라 이름을 붙였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갈수록 불교가 쇠퇴하고 전란과 화재가 잦았던 관계로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던 것 같다. 벼랑에 마애불을 조성한 기법으로 큰 화강암 덩어리를 가져다가 석조여래좌상을 만들었는데 아주 세밀하고 정교한 조각물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설명해 놓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영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은 머리 모양이 작고 둥글며,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 뼈가 솟아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있고 나발(螺髮)[부처의 머리카락]은 빈틈이 없다. 눈두덩의 깎여진 각도, 높은 코, 두툼한 입술 등에서 인도 굽타 양식의 영향을 보여 준다. 귓바퀴를 강조한 두툼한 귀는 목까지 내려오지 않고 짧은 편이다. 법의는 편단우견(偏斷右肩)[불교에서 상대편에게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법의 하나.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냄]으로 입었으며, 왼손은 선정인(禪定印)[석가가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취한 손의 모습을 말하며, 결가부좌한 자세에서 발 위에 손등을 얹고, 단전 앞에 하늘로 향한 왼쪽 손바닥 위에 오른손 손바닥을 놓고 양쪽 엄지손가락을 맞대어 손가락 부분을 겹쳐 놓는 모습], 오른손은 촉지인(觸地印)[왼손은 주먹을 쥐어 배꼽 부분에 대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펴고 손바닥을 안으로 하여 땅으로 드리우는 결인(結印)]이다. 목과 허리를 의도적으로 곧게 펴고 있으며 한 돌로 연결되어 수직으로 뻗은 광배가 불상의 간결한 이미지를 지지하고 있다. 광배에서 세 화불(化佛)[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는 부처]이 구름과 불꽃무늬 사이로 드러나 있다. 석조 불은 특별한 조식(彫飾)이 가해지지 않은 사각 대좌에 앉아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원래 미륵불은 도솔천에서 미륵보살의 몸으로 있다가 56억 7천만 년 뒤 성불하면 지상에 내려와 세 차례의 설법을 통해 석가가 미처 구하지 못하고 남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그 세 차례 설법을 용화삼회라고 하는데 이것은 매향의식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서호면 엄길리 매향암각명에도 용화초회 때 향을 공양한 공덕으로 구제받기를 소원하는 글귀가 보인다. 

도갑사 미륵전은 다른 무엇보다도 고즈넉하고 소담스런 분위기가 압권이다. 도갑사에 오면 대웅전 뒤에 있는 용수폭포와 벽간정을 구경한 후 다시 용화교를 건너 미륵전의 소탈한 석조여래좌상을 친견하고 가기를 추천한다. 물론 도선국사비 답사 또한 필수 코스이다.

자연학습탐방로와 미왕재 억새밭

이것들과 더불어 자연 습지와 대나무숲이 압권인 자연학습탐방로 산책을 권하고 싶다. 한 바퀴 돌아서 원점으로 오는 탐방로인데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월출산에서 보기 드문 왕대숲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고 대나무 아래 야생 차나무가 자라고 있는 숨은 산책로이다.

좀 더 시간이 허락된다면 해발 540m에 자리한 억새밭에 다녀오기를 권하고 싶다. 예전에 비해 억새가 풍성하진 않지만 그래도 운치는 여전하다.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억새꽃이 바람에 휘날리는 가을에 미왕재에서 맛보는 정취는 직접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