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보았다. 꽃피는 산골, 내가 다녔던 분교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준 ‘폐교’라는 이름의 공간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교문 어귀 옅어진 시냇물 소리가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를 지탱한 채 친구들의 이름을 호명해주고 있었다. 운동장 좌측 ‘반공관’(反共館)이었던 일제식 교사(校舍)가 철거된 자리에는 키 작은 족구장이 잡초들을 이불 삼아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족구장을 돌아 옛 관사 자리에 들어서니 사금파리와 옹기 조각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그 시절 살림살이를 추억시켜 준다. 햇살 좋은 날 앙증맞은
월급쟁이들에게 ‘수당을 받는다’라는 의미를 물으면 흔히 가족수당, 명절휴가수당, 초과근무수당.... 등을 떠올린다. 수당은 공무원의 경우 근무연수에 따라 지급되는 정근수당, 부양가족이 있으면 가족수당, 자녀 학비 보조수당, 육아 휴직한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육아휴직수당, 특수한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특수업무수당, 위험한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위험근무수당 등등 다양하다. 이러한 수당은 개인이 직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기본급여 외에 따로 받는 보수이고 당연하게 받아야 하는 임금으로 월급에 포함된다. 우
사람에게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 놀이터 삼아 헤집고 다니던 야트막한 산과 들, 논밭 사이로 난 좁다란 두렁, 아지랑이와 함께 피어오르던 봄 들판의 쑥 냄새, 무릎께에서 찰랑거리던 시냇물과 한가로이 헤엄쳐 다니던 피라미떼, 대나무숲을 스치던 바람 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그 중에서 고향 생각을 일깨우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가는 요소는 바로 음식이다. 한창 뜸이 들어가는 무쇠솥에서 피어오르던 김과 구수한 밥 냄새, 쿰쿰한 황석어젓과 토하젓, 호박과 두부를 숭덩숭덩 썰
내가 어린 시절 동지섣달이 되면 힘들었던 농사일을 끝마치고 온마을이 월동기에 접어든다. 부녀자들은 안방에서 길쌈(베틀에서 베 짜고 옷감 만드는 일)을 하고 남정네들은 사랑방에서 일손 모아 새끼꼬며 가마니를 짰다. 자급자족을 위해 모두들 열심히 살아가신 어른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노처녀 노총각들은 한 해가 저무는 섣달그믐을 넘기지 않으려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수소문해서 중매쟁이를 찾는다. 중매쟁이를 통해 가문, 인품, 궁합 등 정보를 주고받아 남녀 양가에서 혼담이 이루어지면 양가 부모님들이 신랑 신부의 선을 본다. 당사자들은
“책 속에 길이 있다.” 어릴 적 큰 형 자취방 책상머리에서 처음 접했던 말이다. 그 이후 줄곧 책 속 삽화나 행간에서 ‘길’을 찾고자 했다. 저학년 때는 그림이나 사진 속 신작로나 오솔길을 찾다가, 고학년이 되자 추리소설의 사건 실마리나 문학 작품 속 주제나 교훈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책 냄새와 친해졌다. 새 책 종이가 갓 볶아 낸 모카 향기라면, 누렇게 빛바랜 헌책들은 해묵은 된장처럼 구수했다. 책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 학교 도서실은 정원보다 향기로웠다. 행간의 의미나 교훈을 머리로 인지하고 이해하기보다
유시(有始)이면 유종(有終)이라 했던가. 금년 시작이 바로 어제만 같은데 캘린더 12월이 마지막 잎새처럼 남아있다. 원불교 대종사께서는 한 생각 일어날 때가 유시이고 한 생각 마칠 때를 유종이라 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해가 저문다. 금년의 끝자락을 붙들고 1년을 마무리해보자.다사다난이란 말을 금년에도 또 되뇔 수밖에 없다. 코로나 광풍 속에서도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로 정치가 소용돌이치고, 토지주택 공사와 대장동 의혹으로 부동산 민심에 불을 질렀으며, 반도체와 요소수 공급 대란으로 경제가 위협받기도 했다. 그런 속에서도 윤여정과
지구 한쪽 모퉁이에서 고개를 살며시 내밀고 톡톡 노크를 한다. 노크소리에 “누구세요?”하고 반응을 보였다. “나야 나 월출산 큰 바위 얼굴” “뭐 큰 바위 얼굴이라고” 그래 생각이 난다. “반갑구나? 그런데 어떻게 왔지?” “내가 온 건 다름이 아니라 며칠 뒷면 새해잖아. 그래서 새해를 맞아 군민에게 행복을 선물하려고 왔단다” “그래, 고맙구나”새해 월출산 큰 바위 얼굴이 “영암인 모두에게 행복이라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답니다. 그 행복을 전해드리려 찾아왔으니 한 분도 빠짐없이 기꺼이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2022년 임인년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늘 설렘을 동반한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스러운 설렘이다. 새해라서 설렘 반, 코로나와 기후 위기, 한반도 정세로 근심 반이니 말이다. 일단 근심을 벗어놓고 기다림의 미학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62년 임인년, 무엇보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었다. 이 사건의 두 주인공은 ‘케네디’와 ‘흐루시초프’다. 흐루시초프는 미국 핵미사일에 대한 대응으로 쿠바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 설치를 단행하고, 이 사실은 미국 U-2 정찰기를 통해 포착된다. 강경파들의 여론이 들끓었지만 케네디 정부는 일단 ‘카리브
11월 달력을 떼어냅니다. 아아, 마지막 잎새처럼 달력 한 장이 힘겹게 달랑 남아있습니다. 다사다난하다는 말로는 참으로 부족할 것 같은 2021년 신축년 ‘하얀 소의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답답하고, 불안하고, 뭔가 부족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은 아쉬운 한 해가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그래서 더욱 내년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 포효하는 호랑이의 기상으로 코로나를 극복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그런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보면서 마지막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며칠 전 친구에게서 카톡
일장기를 태워 일본을 이길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 일장기에 불을 지르자. 일본을 욕해 우리가 평안할 수만 있다면 오천만이 떼창으로 날이면 날마다 일본을 욕하자.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일본에 대해 정도 이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다른 나라라면 간과할 일도 지나치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냉정한 사람에게는 친일파니 매국노이니 하는 광기를 부려왔다. 일본은 우리가 그렇게 함부로 대하고 그렇게 과소평가해도 아무렇지 않는 국가가 아니다. 경제력이나 기술 수준,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위상을 생각하면 우리가 너무 무모함을 알아야 한다. 오
시내 소공원 정자에 7·80대 노인 네다섯 명이 모여 앉아 하는 이야기가 젊었을 땐 그러지 않았는데 나이가 70세가 넘자 신체의 모든 기능이 떨어지는 것 순간순간 느껴진다고 넋두리다. 그 중 한 노인이 한 말이다. 70대가 된 어느 날부턴가 정력도 욕구도 감소하고 일에 점점 의욕을 잃게 되더라. 그는 10여 년 전만 해도 탐나던 것들이 많았었는데 이제 그저 그렇다. 문제는 감각이 둔해지고, 건망증이 심해지고, 상상력이 현저하게 사라지고, 환상은 퇴색하고, 강렬하게 느껴졌던 인상도, 찾아볼 수 없이 됐다고 했다. 지난날의 모습들을 생
차가운 새벽 공기에 코끝이 시리다. 수능이 코앞이다. 학교에서는 9월에 이미 학생부가 마감되고 대학 수시 모집이 시작되지만, 사람들은 수능과 함께 비로소 대학 입시철이 왔음을 실감한다. 어제부터 전국 모든 고등학교가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고 수능 대비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학생부 교과·종합 전형이나 논술, 실기 등 수능 외에도 대학가는 길은 열려있지만, 수능은 여전히 학벌사회 진입의 가장 강력한 기제로 작동한다. 더욱이 정시 모집 비율이 40% 이상으로 확대되고 수능 최저 등급이 살아있는 한, 수도권 주요 대학을 목표로 한 중상위
완연한 가을입니다. 살갗에 부딪는 공기의 질이 다르고, 설악산에서 시작한 단풍이 어느새 우리 아파트, 우리 집 앞 떡갈나무 숲에도 찾아와서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사이사이 아기단풍 나무의 귀여운 이파리가 발갛게 색깔도 참 예쁩니다. 말 그대로 만산홍엽(滿山紅葉) 천고마비, 빨간 산과 파랗고 깊은 가을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깝습니다. 한강 습지 생태공원에는 이미 하늘을 덮듯 수 많은 청둥오리들이 날아와서 끼룩거리고, 낟알을 뿌려둔 들판에는 왜가리, 재두루미들의 비상과 활강이 숨 가쁘게 아름답습니다.주위의 풍광과는 다르게 시름과 생각이
늙어가는 것을 불평해서는 안 된다. 가엾어 보인다. 몇 번 들어주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항변해 보자. 또한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제껏 일궈온 것을 다 넘겨주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 것이다.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왕처럼, 춥고 배고픈 노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과거를 자랑하면 안 된다. 옛날 이야기 밖에 할 말이 없을 때, 처량해진다. 한 때 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고, 소시절에 지역사회를 주름잡았다고, 그런 말이 똬
내게는 세 곳의 고향이 있다. 하나는 태어난 고향 영암, 배우고 성장한 고향 광주, 또 다른 고향으로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삶의 초석이 된 고향 강진이 있다. 강진에서 생활은 불과 3년으로 짧았지만 세상에 태어나 경제적 자립의 첫발을 떼는 공무원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특별하다. 그 때가 20대 중반으로 직장에서 나이도 제일 어리기도 했지만 공무원 채용시험을 거쳐 발령을 받은 몇 안 되는 직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 때 직원 대부분이 1945년 8월 15일 전 일제식민지 통치 때부터 했거나 건국 후 1960년 이전 자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도 중요하지만 3개월 후 치러지는 지방자치 선거 또한 중요하다. 이에 더하여 지자체 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교육자치 선거, 다시 말해 전국의 시·도교육감을 뽑는 선거 또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요구된다. 원래 교육자치는 교육위원회라는 독립된 기구가 교육행정 행위와 그 행정행위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이라고 하는 두 개의 축으로 운영되어왔다. 그러다가 교육의회를 구성해왔던 교육위원 선출이 일반의회로 편입되면서부터 교육행정의 대표인 교육감만 선출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합의한 결과물로서 말하
역시 이번에도 코로나가 화두입니다. 백신 주사 1차 접종 완료자가 70%를 넘어서고, 2차 접종 완료자는 40여%를 넘어서는데도 오늘 아침 확진자 숫자를 보니 2천434명입니다. 추석 모임 여파인 것 같습니다. 정말 미치고 팔딱 뛸 지경입니다. 정말 어디 맘 놓고 돌아다닐 형편이 못 되고, 흩어져 있던 가족도 맘 놓고 모이지 못하는데 이게 사는 것입니까. 워낙 매사 조심하는 성격이라 이번 추석에도 얘들을 오지 못하게 하고, 집사람과 둘이서 전 부치고 생선 굽고 나물 무치고 해서 차례상도 화상으로 모셨습니다. 신난 건 며느리들이고,
홀로 남겨진 산정댁이 하늘로 떠난 영암 아시내 고택 된장 항아리에는 아직도 전설의 된장이 남아있다. 비록 말라져 밭둑길 쇠똥처럼 딱딱하지만 오래전 일을 추억하기엔 충분한 상태로 존재한다.산정댁 바깥어른 산정양반은 어린 나이 16살에 두 살 위인 전주최씨 가문의 규수에게 사모관대를 하고 장가들었다. 그 옛날인지라 집안의 어른끼리 사주단자를 교환하고 길일을 택해 영보의 최씨 처자 집에서 문중의 많은 어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혼례를 치룬 것이다. 그런데 부부의 정도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반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영암 금정이다. 금정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전라남도 도청소재지 광주로 중학교를 갔다. 고향에서 광주까지는 48㎞ 떨어진 거리였다. 광주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1959년 중학교를 졸업한 2월 25일 무렵이었다. 언젠가 광주에서 고향 금정까지 걸어서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오던 차였다. 마침, 중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고등학교는 입학을 하지 않았던 때다.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닌가 생각이 되어 당장 다음날 출발하기로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때만 해도 시계가 흔하지 않아 시청이나 군청에서 낮 12시
코로나19 기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확진자 수가 지난 8월 말에 이어 다시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변이 바이러스들의 발호를 목도하자니 그저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18일 영국에서 보고된 알파 변이를 시작으로 베타(남아공), 감마(브라질), 델타(인도), 엡실론(미국), 제타(브라질), 람다(페루), 뮤(콜롬비아) 변이에 이르기까지 그 기간이 9개월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WHO(세계보건기구)는 그리스 알파벳 순으로 이름 짓기에도 바쁠 지경이다. 그러니 개별 변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