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 규  /금정면 용흥리 출생/ 전 환경부 공무원 퇴직(부이사관)/ 전 한맥문학가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한 정 규  /금정면 용흥리 출생/ 전 환경부 공무원 퇴직(부이사관)/ 전 한맥문학가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시내 소공원 정자에 7·80대 노인 네다섯 명이 모여 앉아 하는 이야기가 젊었을 땐 그러지 않았는데 나이가 70세가 넘자 신체의 모든 기능이 떨어지는 것 순간순간 느껴진다고 넋두리다. 

그 중 한 노인이 한 말이다. 70대가 된 어느 날부턴가 정력도 욕구도 감소하고 일에 점점 의욕을 잃게 되더라. 그는 10여 년 전만 해도 탐나던 것들이 많았었는데 이제 그저 그렇다. 문제는 감각이 둔해지고, 건망증이 심해지고, 상상력이 현저하게 사라지고, 환상은 퇴색하고, 강렬하게 느껴졌던 인상도, 찾아볼 수 없이 됐다고 했다. 지난날의 모습들을 생각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난감하다라며 울먹였다. 옆자리 또 다른 사람이 난감하기 그지없다며 젊었을 때 그 때 힘들고 어렵게 살았지만 그래도 그 때가 좋았었던 것 같이 새삼 느껴진다고 했다.

그들 이야기를 듣다 무심코 서산 위에 걸쳐있던 해를 바라다보니 해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서산 넘으러 사라져 버렸다. 해는 왜? 왜? 그리 빨리 지는지? 짓궂은 달이 회초리라도 들고 해를 뒤쫓는 건지 그리도 빨리 도망을 쳤다. 

또 다른 이가 지나간 날들, 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한 편의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며 이제 가슴에 남은 것은 절망과 외로움과 희한 뿐이다며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 생각하니 앞으로 살날들이 난감하다고 했다. 노인들이 모여앉아 지난 날 살아왔던 세월의 무상함을 넋두리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또 다른 노인이 당신들은 그나마 병들지 않고 건강해서 이런저런 또 다른 욕심도 있고 늙은 것이 아쉽겠지만 자기처럼 병들어 보라며 병든 인생 바동거리며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목이라도 매 죽어버려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땐 정말 난감하더라 했다.

그런 내 처지 당신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그리고 무엇인가 떠오르는지 지그시 눈을 감더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는데 그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닌 곧 자신의 머지않은 미래 모습 같아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더는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그 자리를 피해 들판 논두렁길을 따라 한동안 헤맸다. 들판 논두렁길이 그가 말한 살아온 인생길 같았다. 봄이면 파릇파릇 돋아 난 풀들이 어렸을 때 자신의 모습 같고 여름을 맞아 논두렁을 파랗게 뒤덮는다. 가을이면 누렇게 색이 변하고 비실비실 말라 빌빌 꼬이고 그러다 눈 오는 차가운 겨울이 되면 눈 속에 묻혀 썩어 문드러져 이 세상을 떠날 것 아닌가? 그걸 생각하며 인간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겼다. 

그런 걸 떠 올리면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해야보다 보람 있는 삶을 이어갈까 생각 또 생각을 해 보지만 정직하게 그리고 근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빼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난감하다. 생명을 가진 동물이나 식물 어느 것 하나도 세월 앞에 자유스럽지 못하다. 나무도 늙으면 탄소동화작용을 원활하게 하지 못해 산소만 내놓지 못하고 산소도 이산화탄소도 대기 중으로 내놓는다. 그러니 어찌하겠냐? 기억력 쇠퇴하고, 정열 욕구 감소하고, 의욕 떨어진 것, 건망증 심해지고, 감각 둔해지고, 상상력 감소한 것, 그 모두 난감해 할 것 없다. 순리를 거스를 순 없다.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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