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중 / 전남교육연구소 이사장/ 전남에너지고 교사
김기중 / 전남교육연구소 이사장/ 전남에너지고 교사

차가운 새벽 공기에 코끝이 시리다. 수능이 코앞이다. 학교에서는 9월에 이미 학생부가 마감되고 대학 수시 모집이 시작되지만, 사람들은 수능과 함께 비로소 대학 입시철이 왔음을 실감한다. 어제부터 전국 모든 고등학교가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고 수능 대비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학생부 교과·종합 전형이나 논술, 실기 등 수능 외에도 대학가는 길은 열려있지만, 수능은 여전히 학벌사회 진입의 가장 강력한 기제로 작동한다. 더욱이 정시 모집 비율이 40% 이상으로 확대되고 수능 최저 등급이 살아있는 한, 수도권 주요 대학을 목표로 한 중상위권 수능 쟁탈전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소위 ‘등급’이라는 이름의 상대평가 제도가 존속되는 현실에서는, 상위 등급은 어차피 소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또다시 로또 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수능에 올인 할 수밖에 없다.

40대 중반 이하 대다수 대한민국 성인들에게 수능은 시린 추억으로 다가온다. 한창 꿈 많고 철없었던 시절, 소위 ‘아이돌’의 춤과 노래에 취하고, 이성에 눈을 뜨고, 운동을 즐겨야 할 시기, 모든 것을 대입 이후로 저당잡힌 채 밤늦도록 교실을 지켜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맞게 되는 수능시험, 단 하루 만에 최소한 중·고등학교 6년 세월을 반납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허허롭기만 했다. ‘수고했다’는 부모님의 위로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강물이 되어 가슴을 적셔야 했다. 단 한 번 오지선다 시험으로 인생의 등급이 매겨진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실감하며 아쉬움과 자괴감을 주체할 길 없었다. 비비꼬인 문제들이 머릿속을 헤엄쳐 다니지만, 엎질러진 물처럼 다시 담을 수 없음에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방법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었다. 아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수능으로 대변되는, 유·초·고 교육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서열화된 대입 제도의 당사자인 대학들의 현실은 어떤가? 대학들이 현재의 입학 정원을 유지할 경우 3년 후인 2024년이 되면 무려 10만 명 이상의 정원 부족 현상이 발생한다. 올해 입학 정원이 47만5천 명이었던 것이 2024년에는 37만3천 명으로 줄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 일정한 답보 상태를 보이다가 2031년부터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학령 인구가 급격히 감소되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올해 대학 충원율은 91.4%에 불과했으며, 4만586명이 미충원되었다. 특히 지방대의 정원 부족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이제 정부의 차별적 재정지원 등을 통한 자발적 구조조정 유도만으로는 대학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지난 8월 교육부가 ‘대학기본역량진단’ 발표이후 일반재정지원에서 제외된 52개 대학들의 조직적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 것만 봐도 현행 정부 정책이 대학의 어려운 현실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기후 위기와 위드 코로나로 대변되는 대전환의 시기에 초·중등교육의 블랙홀로 작동하는 서열화된 대입 경쟁시스템과 대학 정원 급감이라는 모순된 교육 현실을 타개할 방안은 무엇일까? 수시와 정시 비율을 어떻게 정하고, 소위 부실 대학을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하는 등의 대증요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존중하고 폭넓은 진로를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내년부터 도입을 강행하고 있는 ‘고교학점제’ 또한 현행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이 두 가지 모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교육 체제와 제도의 대수술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 길을 바로 ‘대학 무상화·평준화’에서 찾아야 한다. 이 길은 우리가 처음 가보는 길이 아니다. 이미 20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에 잉태되어 해를 거듭해오면서 교육 문제의 근본적 담론으로 자리 잡아 왔다. 이제 독일의 ‘아비투어’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같은 다른 나라의 입시제도가 더 이상 생소한 용어가 아니다. 

최근 고등교육의 재정 위기와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법안들이 의원들의 발의로 제출되고 있다는 소식은 환영할 일이다. 이들의 다듬어진 법안이 최소한 내년 상반기 안으로 통과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법안을 근거로 2023년에는 모든 대학의 반값 등록금제가 전면 실시되고, 다른 OECD 국가들처럼 고등교육 재정 GDP 대비 1%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2025년 GDP를 1천831조 원으로 추산해 보았을 때 그 0.6%만 계산해봐도 무려 10조400억 정도에 달하며, 이는 대학 무상교육을 정착시키기에 충분한 액수인 것이다. 

이렇듯 대학의 무상화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재정 위기 극복과 정부 책임형 사립대 전환, 인근 대학 간 통합 유도 등을 통해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 성격이 강하다면, 대학의 평준화는 우선 국립대학 간 통합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공동선발-공동학점-공동학위’라는 실천 활동으로부터 그 지평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수능을 맞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풀이 교육은 청소년기 고등정신기능 발달과 올바른 세계관, 가치관의 정초에 역행한다. 대학 무상화·평준화에 발맞추어 대학입학시험도 이제는 논·서술형으로 바꾸어내야 한다. 상대평가 방식의 순위 경쟁이 아닌 자신만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의 도입,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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