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홍 근 / 영암읍 교동리 출생 / 전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전 서울 월정초등학교 교장 / 한국초등학교 골프연맹 이사   및 심판위원
최 홍 근 / 영암읍 교동리 출생 / 전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전 서울 월정초등학교 교장 / 한국초등학교 골프연맹 이사   및 심판위원

11월 달력을 떼어냅니다. 아아, 마지막 잎새처럼 달력 한 장이 힘겹게 달랑 남아있습니다. 다사다난하다는 말로는 참으로 부족할 것 같은 2021년 신축년 ‘하얀 소의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답답하고, 불안하고, 뭔가 부족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은 아쉬운 한 해가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그래서 더욱 내년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 포효하는 호랑이의 기상으로 코로나를 극복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그런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보면서 마지막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며칠 전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친구야, 나는 지금 코로나에 확진되어 서울대학교 생활 치료센터에 들어왔네. 이번 수요일에 입소했어.” “아이구야!! 어디서 감염된 거야. 상태는 괜찮아?” “응, 여기서 하라는 데로 치료 잘 받고 있어.” “친구야, 힘내라. 참고 견뎌야 해. 열심히 기도할게. 파이팅이다.” 

10 여일쯤 지난 후 아침입니다. “친구야, 고마워. 오늘 11시경 퇴원하라네.”

정말 날아갈 것처럼 기뻤습니다. 죽었던 친구가 살아 돌아와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친구와 나눈 이야기들이 스물스물 기어나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앞에 놓인 친구는 그동안 꼭꼭 숨겨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습니다. 통화한 내용을 요약하면 ‘멋진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후회를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큰 아파트에서 살기 위해, 여유 있는 노후를 위해 아끼고 절약한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초라하고, 허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미나게 살고 싶었지만 돈을 모으려고 뭐든 절약하였답니다. 나처럼 ‘폼생폼사’로 살지 못한 것이 제일 후회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나처럼 넓직한 아파트에서, 좋은 차 타고, 해외여행 원 없이 다니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답니다. 지난 이야기고, 우스운 이야기지만 동료들 사이에서 내 별명이 ‘폼생폼사’였기 때문입니다. ‘폼생폼사’가 뭐냐 하면 ‘뭐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 이런 뜻입니다. 나는 산다는 것 자체가 매사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 않았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손에 넣었고, 여행하고 싶으면 여행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제아무리 멀어도 찾아가서 기어이 먹고 살자는 주의였으니까 이런 별명이 붙을 법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앞날이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세상이 되고 보니 이 나이 되어 뒤돌아보고, 앞을 미루어 내다봐도 내가 참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 아침, 네이버에 충격적인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지난 11월 18일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에서 발표한 결과입니다. 퓨리서치는 세계 성인을 대상으로 각국에서 1만7천명을 대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해 설문 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야에서 1등을 기록했습니다. ‘당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꼽았답니다. ‘물질적 풍요’ 즉 돈을 1순위로 꼽은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했답니다. 17개 국가 중 14개 국가의 국민이 ‘가족’을 1순위로 꼽았고, 2순위는 ‘건강’을 뽑았답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가치가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지닌 도덕‧윤리체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가족보다도 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니 우리의 보통 상식과 심각하게 배치되는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세계 가치관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속적이고 잇속을 따지며 생존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런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대선 주자는 자기 돈도 아니면서 돈을 뿌려 매표(買票)를 하려는 공약을 수시로 내뱉을 법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조사대로 ‘돈’이 절대적일까요. 우리가 사는 이유가 돈 때문일까요. 돈은 굶어 죽지 않을 정도면 족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젊었을 적부터 개인보험 들어두고, 연금보험 만들어 두고, 현금 자산으로 통장에 조금만 돈을 모아둔다면 노후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가난하건, 부자건, 권력이 있건 없건, 우리들은 누구나 늙고 아프고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늙고, 병 들고,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입니다. 병 들더라도 겁 먹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선각자들은 말합니다. 발버둥을 쳐도 죽는다는 사실, 이건 진리입니다. 그래서 남은 인생 건강 관리하면서 목숨은 하늘에 맡기고,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마음은 스스로 책임지면서 천천히 산책하듯 살라고 권합니다. 은행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세상을 살다 돌아가신 선배님들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아등바등 모아 둔 돈도 죽으면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돈을 쓸 때 그 돈이 바로 내 돈이라는 것입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갖고, 즐길 거리가 있으면 반드시 즐기며 살라는 충고입니다. 나이 들어 쓰는 돈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생의 후반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인생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더욱 내 자신을 위해 돈을 쓸 겁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아껴야 하는 것은 노년의 시간이고, 노년의 생각이고, 노년의 건강이라는 생각으로 다부지게 다시 심기일전해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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