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석현초 교장
이 기 홍 /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석현초 교장

홀로 남겨진 산정댁이 하늘로 떠난 영암 아시내 고택 된장 항아리에는 아직도 전설의 된장이 남아있다. 비록 말라져 밭둑길 쇠똥처럼 딱딱하지만 오래전 일을 추억하기엔 충분한 상태로 존재한다.

산정댁 바깥어른 산정양반은 어린 나이 16살에 두 살 위인 전주최씨 가문의 규수에게 사모관대를 하고 장가들었다. 그 옛날인지라 집안의 어른끼리 사주단자를 교환하고 길일을 택해 영보의 최씨 처자 집에서 문중의 많은 어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혼례를 치룬 것이다. 그런데 부부의 정도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반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너무 젊은 나이에 죽은 지라 선산에 가지도 못하고 선산 입구 야산에 묻혔다. 

산정양반은 몇 년이 지난 20세에 다시 장가를 들었다. 광암의 현씨 가문 처자에게 장가를 든 것이다. 택호 산정도 현씨 가문으로 장가를 든 관계로 얻게 됐다. 5남매를 생산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던 차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 지역의 청년 단장을 하던 때라 자연 인민군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토착 반란군에게 연일 쫓겨 다녔다. 인천 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자 인민군들은 반란군을 앞세워 산정양반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남편 있는 곳을 말하지 않는다고 성산 현씨 산정댁을 잡아다 죽이는 일을 벌이고 말았다. 휘영청 보름달 빛이 아직도 남은 음력으로 1950년 팔월 열아흐렛날 일이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 무렵 산정양반은 다시 새 장가를 들었다. 같은 면내인 엄길의 천안 전씨 처자에게 사주단자를 보내고 길일을 택하여 정식으로 사모관대를 하고 세 번째 혼인을 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산정양반은 근동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모를 세 번이나 쓰고, 관대를 세 번이나 두르게 됐다. 그리고 그런 산정양반 사연은 은밀하게 널리 퍼져 있었다. 

한 번은 아시내에서 점집을 하는 보살의 첫째 딸 남편이 바람이 났다. 사모관대를 세 번이나 한 산정양반댁 된장을 몰래 퍼다 국을 끓여 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해서 하루는 보살 며느리가 일을 꾸몄다. 새마을사업이 한창 벌어지던 날, 된장 훔치기를 모의했고, 모의에 참가한 아시내 아낙네들이 택호를 물려받은 천안 전씨 산정댁을 에워쌌다. 동작 빠른 용댕이댁은 산정댁 장독대에 가서 된장을 훔쳐 보살 며느리에게 줬다. 며느리는 인편으로 그 된장을 큰 시누이 집에다 줄 요량으로 보냈는데, 배달사고로 둘째 시누이가 받게 됐다. 된장에 얽힌 사연을 전해들은 둘째 시누이가 요즘 들어 부쩍 낌새가 수상쩍은 자기 남편의 바람기를 잡고자 훔쳐온 된장으로 국을 끓여 먹였는데, 큰 효험을 보게 됐다.

또 아시내에는 한 동안 부산에서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살았는데, 남편이 읍내 다방 아가씨와 바람이 나 잠자리를 하다가도 전화만 오면 달려 나가는 서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부산 새댁이 이웃에게 푸념삼아 신랑에 대한 넋두리를 했는데, 그 소리를 건네 듣고 정 많은 이웃집 해남댁이 순전히 봉사 차원에서 별빛만 쏟아지는 밤에 산정댁 장독대에 가 낮에 봐둔 된장 항아리에서 된장을 훔쳐 부산 새댁에게 전해줬다. 새댁은 정성을 들여 바람난 신랑에게 먹였으나 바람이 너무 심하게 났던지 효험을 보지 못했다. 그러자 그 새댁은 딸을 데리고 부산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런 저런 일로 된장이 줄어들게 되자, 산정댁은 이를 수상쩍게 생각했고, 이런 저런 일로 나중에야 그런 사정을 알게 됐다. 그런 후 산정댁은 된장이 줄어들 때마다 또 누가 남편 때문에 속을 썩이고 있구나 하면서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래 산정댁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된장을 넉넉하게 담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동네 바람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급기야 산정댁은 줄어드는 된장 항아리를 어루만지며 동네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바람이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죄책감까지 느끼게 됐다. 산정댁이 고인이 된 후에도 아시내 여인들은 산정댁이 어쩌면 지금 하늘나라에서 ‘된장이라도 많이 담가놓고 올 것을…’ 하며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동안 생각했다. 아무튼 산정댁마저 떠난 아시내 장독대에는 아직도 그 전설의 된장이 옛날을 추억하며 월출산 천황봉 위로 떠오르는 달빛을 말없이 받고 있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