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찬형 / 학산면 독천리 출생/연합뉴스TV 보도국장/전 연합뉴스 정치부장·국제뉴스2부장·통일외교부장/전 연합뉴스TV ‘맹찬형의 시사터치’ 앵커
맹찬형 / 학산면 독천리 출생/연합뉴스TV 보도국장/전 연합뉴스 정치부장·국제뉴스2부장·통일외교부장/전 연합뉴스TV ‘맹찬형의 시사터치’ 앵커

사람에게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 놀이터 삼아 헤집고 다니던 야트막한 산과 들, 논밭 사이로 난 좁다란 두렁, 아지랑이와 함께 피어오르던 봄 들판의 쑥 냄새, 무릎께에서 찰랑거리던 시냇물과 한가로이 헤엄쳐 다니던 피라미떼, 대나무숲을 스치던 바람 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그 중에서 고향 생각을 일깨우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가는 요소는 바로 음식이다. 한창 뜸이 들어가는 무쇠솥에서 피어오르던 김과 구수한 밥 냄새, 쿰쿰한 황석어젓과 토하젓, 호박과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된장찌개, 세발낙지의 쫄깃한 식감, 입안에서 톡톡 터지던 무화과의 달콤한 과육, 대봉감의 풍성한 단맛 같은 것들은 쉽게 잊혀질 수 없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도 한식집이 몰려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골목길을 걷다가 문득 고향 음식을 연상시키는 냄새를 맡게 되면 걸음을 멈추고 코를 킁킁거리게 된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후각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고향 음식에 대한 추억은 식감과 모양에 대한 기억보다는 냄새로 먼저 다가오는 것 같다.

영국 음식은 맛이 없기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영국 음식이라는 '피시 앤드 칩스'는 대구 살 튀김과 감자 칩을 함께 먹는 음식인데 동네 가게에서 포장할 때 싸주는 신문지 잉크 맛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영국인들이 위험한 항해를 마다하지 않고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으로 만든 배경에는 고향 음식에 대한 향수가 없어서 미련없이 세계를 누빌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내세울 만한 음식이 없는 영국과 달리, 전국에서 11번째로 경지면적이 넓고 논밭과 갯벌에서 나오는 식자재가 풍부한 영암 출신으로서 필자의 향수는 음식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무엇을 먹느냐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말해준다고 한다. 음식은 사람의 정체성과 맞닿아있고, 그런 이유로 고향, 영암의 음식은 나의 일부다.

그래서 고향 음식이 생각날 때마다 종로 경복궁역 근처에 있는 남도 한정식집 'ㅍ'을 찾아간다.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드는 여사장님은 해남이 고향이신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교동 사저에서 지낼 때 김치를 댔던 김치명인으로도 유명하다.

이 집에서는 보성에서 올라온 짱뚱어탕과 노지 갓김치, 벌교 참꼬막, 무안 뻘낙지, 신안 홍어 같은 것들을 맛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손에 꼽는 것은 바로 갓 지은 쌀밥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밥에 겉절이 김치로 식사를 마무리하면 보약 한 첩 챙겨 먹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충만하다. 

2017년 농식품부와 농협이 선정한 '쌀밥이 맛있는 집' 1호점이기도 한 이 음식점에서 쓰는 쌀이 바로 ‘영암 달마지쌀’이다. 반가운 마음에 사장님께 굳이 달마지쌀을 쓰는 이유를 여쭤봤더니 "가격이 다른 쌀보다 비싸기는 하지만, 다른 쌀로는 달마지쌀로 지은 밥맛을 낼 수 없다"고 잘라 말하셨다. 

당연히 고향 영암에 대한 자부심이 한껏 가슴을 채웠지만,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생겼다. 손맛 좋기로 유명한 한정식집 사장님이 제대로 가치를 알아보고 최고로 쳐주는 달마지쌀, 그곳을 단골로 삼는 유명인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달마지쌀이 왜 서울시민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표가 떠오른 거다. 

문제는 홍보 부족이다. 실제로 경기도, 강원도, 전라남북도의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에 비해 ‘영암 달마지쌀’의 인지도는 현저히 낮은 편이다. 특정 상품이 고급 브랜드로 정착하려면 홍보와 입소문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영암 달마지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더 열심히 만나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겠지만, 지자체와 농협, 쌀생산 농가가 함께 머리를 모아 달마지쌀의 찰진 밥맛을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서 몇몇 맛집 뿐만 아니라 서울의 평범한 가정의 식탁에서 '밥맛은 영암 달마지쌀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장면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갖게 됐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