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 규  /금정면 용흥리 출생/ 전 환경부 공무원 퇴직(부이사관)/ 전 한맥문학가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한 정 규  /금정면 용흥리 출생/ 전 환경부 공무원 퇴직(부이사관)/ 전 한맥문학가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내게는 세 곳의 고향이 있다. 하나는 태어난 고향 영암, 배우고 성장한 고향 광주, 또 다른 고향으로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삶의 초석이 된 고향 강진이 있다. 강진에서 생활은 불과 3년으로 짧았지만 세상에 태어나 경제적 자립의 첫발을 떼는 공무원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특별하다. 

그 때가 20대 중반으로 직장에서 나이도 제일 어리기도 했지만 공무원 채용시험을 거쳐 발령을 받은 몇 안 되는 직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 때 직원 대부분이 1945년 8월 15일 전 일제식민지 통치 때부터 했거나 건국 후 1960년 이전 자유당 정부시절 근무했던 직원들이었다. 그런 직원들 틈새에 끼어 근무하기란 보통 힘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공무원으로서 지켜야 할 정의, 공정, 청렴, 봉사 같은 것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반면 관료로서 권위적 태도가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그런 가운데 미담도 없지 않았다. 그 미담 중 일제 말기 군수이야기가 마음에 와 닫았다. 강원도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일제가 시행하는 고시에 합격, 24세 나이에 강진군수로 부임한 고 윤길중에 대한 이야기였다. 스물네 살의 나이어린 군수가 그것도 일본에서 유학한 젊은이가 군수로 왔다는 소문에 군민들은 적지 않은 걱정을 했다 한다. 

윤길중 군수가 부임을 하고 가을을 맞아 추수를 했다. 추수가 끝나고 농지세 추곡수납이 시작됐다. 전남도로부터 할당량이 하달됐다. 일제가 군량미 확보를 위해 많은 량의 추곡을 착취해 갔다. 그 해에도 외예 없이 농지세 등이 할당되어 하달됐다. 군수가 농지세 수납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데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보고 일본인 경찰서장이 독려를 협조하겠다고 했다.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추곡 수납이 끝날 날이 임박했는데도 수납실적이 지나치게 저조하자 일본인 도지사가 군수를 호출했다. 군수가 도지사 명을 받고 도 출장을 가려면서 담당과장더러 도지사에게 선물할 꿀 반병을 구해 오라했다. 과장이 한 병을 준비해 가져가자 다시 반병만 가져오라 했다. 그 땐 꿀이 최고의 선물이었다. 

도지사를 뵙고 인사를 하면서 빈 손으로 올수가 없어 부모님께 드리려고 제 집에서 기른 벌통에서 직접 채취해 온 꿀이라며 꿀 병을 싼 보자기를 펼쳐 보여줬다. 그리고 지난여름 날씨가 좋지 못해 벌통에 꿀이 얼마 없어 반병 밖에 준비를 못했습니다. 벌통 속 꿀을 모두 채취하면 한 병은 채울 수가 있었는데 벌통 속 꿀을 몽땅 채취해 버리면 꽃이 없는 추운 겨울에 벌이 굶어 죽을 것 같아 벌도 월동을 하면서 굶어 죽지 않도록 꿀을 조금 남겨 놓다 보니 한 병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겨울에 벌이 죽지 않고 살아야 내년에 또 다시 꿀을 채취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남겨놓다 보니 겨우 반병밖에 준비를 못 했습니다. 이해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듣던 도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윤 군수 등을 다독이며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수곡수납 실적에 대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어서 조심하여 가라 했다. 

그 해, 강진군민이 납부해야 할 농지세는 자발적으로 납부한 것을 제외하고 독려 징수한 것이 없었다. 그 때부터 강진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졌다. 어려운 시기에 강진 군민에게는 축복이었다.

어느 때나 관료라면 자신이 맡은 일과 관련, 국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국가를 위하는 일이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고 국가가 있어야 대통령도 관료도 있다. 위정자와 관료 모두가 자신만의 이기주의만으론 안 된다.

지금 국민들은 코로나19와 불황, 게다가 지역패권을 두고 주변국들이 보이는 정황에 불안해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럴 땐 위정자 관료들이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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