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홍 근 / 영암읍 교동리 출생 / 전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전 서울 월정초등학교 교장 / 한국초등학교 골프연맹 이사   및 심판위원
최 홍 근 / 영암읍 교동리 출생 / 전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전 서울 월정초등학교 교장 / 한국초등학교 골프연맹 이사   및 심판위원

완연한 가을입니다. 살갗에 부딪는 공기의 질이 다르고, 설악산에서 시작한 단풍이 어느새 우리 아파트, 우리 집 앞 떡갈나무 숲에도 찾아와서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사이사이 아기단풍 나무의 귀여운 이파리가 발갛게 색깔도 참 예쁩니다. 말 그대로 만산홍엽(滿山紅葉) 천고마비, 빨간 산과 파랗고 깊은 가을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깝습니다. 한강 습지 생태공원에는 이미 하늘을 덮듯 수 많은 청둥오리들이 날아와서 끼룩거리고, 낟알을 뿌려둔 들판에는 왜가리, 재두루미들의 비상과 활강이 숨 가쁘게 아름답습니다.

주위의 풍광과는 다르게 시름과 생각이 깊어집니다. 평생을 화두로 삼은 아름다움이란 뭘까, 행복은 뭘까, 사람답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상식과 공정, 정의는 뭘까?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가? 정신 줄을 놓고, 맘 편하게 아주 단순하게 백수 생활로만 만족해하며 살고 싶지만, 방송과 신문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암울하고, 참담한 일만 전해 옵니다.

어젯밤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새까만 천공(天空)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명멸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영월 별마로 천문대에 올라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 때, ‘지구도 우주에 떠있는 별이로구나’라는 깨달음과 옛날 사람들은 저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별을 찾으려 했다는 사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었습니다. 임금님의 별이 있는가 하면 미천한 자신의 별도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마음을 지금 시각으로 해석해 보면 황당하지만, 어떤 측면으로는 애잔하고 눈물겨운 그들의 감성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찡했었지요. 

큰 곰과 작은 곰 자리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눈길을 돌리면 동쪽 하늘, 페가수스자리도 보입니다. 천마 페가수스는 벨레로폰이라는 영웅의 말(馬)이 됩니다. 벨레로폰은 괴물 키메라를 무찌르고 공주와 결혼하고 왕국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오만에 빠져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고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로 오르려다 제우스가 보낸 말파리의 화살 때문에 땅에 떨어져 장님에다 절름발이가 되어 최후를 마쳤습니다. 편견과 오만, 잘 났다고 설치면 끝없이 추락하고 만다는 서양인들의 지혜를 떠올립니다. 안드로메다좌(座) 곁으로 몇 가닥 별똥별이 떨어집니다. 옛 사람들은 별똥별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는데, 어느 곳에선가 사람들이 이승을 하직하나 봅니다. 개똥밭에도 굴러도 이승이 좋다던데, 허무합니다. 그 중에는 삶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이도 있을 것이고, 천수(天壽)를 누리고 후회 없이 떠나는 이도 있을 건데, 원통한 한(恨)을 가지고 떠나는 이들은 얼마나 억울할지 가늠이 안 됩니다. 가끔 청와대 국민청원 싸이트를 들락거리는데, 코로나19 백신 예방 접종을 하고 부작용으로 삶을 마친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연도, 사례도 다양합니다. 그 중 한 가족의 삶을 책임지던 가장들의 죽음은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졸지에 사랑하던 남편과 아빠를 잃은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눈 먼 구렁이 갈밭에 든다’라는 옛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눈먼 구렁이가 낫으로 베어내어 뾰쪽뾰족 드러난 갈대밭을 빠져나오기까지 얼마나 아프고 쓰라리겠습니까. 속담은 졸지에 부모를 잃은 어린 자식들을 보면서 동네 사람들이 중얼거리듯 하던 말이랍니다. 가장과 부모를 잃은 어린 자식들의 정황을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표현들은 우리의 심장으로 뜨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소위 잡초라고 말하는 민초(民草)들이 아니고는 이런 표현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정말 삶의 슬픔과 애환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민초들이 아니고는 이런 표현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긴긴 날을 땅 속에서 알을 지키다가 유충이 나오면 자신의 몸을 유충에게 먹히는 벌레들이 있습니다. 이런 하찮은 미물들도 자기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몸뚱이를 희생합니다. 이게 생명 본래의 마음이고, 부모가 자식들에게 베푸는 사랑이지요. 생명은 존귀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것입니다. 생명은 있는 사람들의 것이건, 없는 사람들의 것이건 마찬가지로 귀하고 존귀합니다. 그러나 이런 속담들은 고명한 학자나 훌륭한 정치인들은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정치인들에게는 명예욕과 탐욕은 있을지언정 국민을 어루만지고, 헤아리려는 심성과 감성이 부족합니다.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로 오르려는 욕망만이 그들을 지배합니다. 정치인들은 뜨거운 가슴이 있는 국가 지도자라면 그들의 한과 비명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정말 나약하고 하찮은 국민들에게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예방접종으로 인해 느닷없이 정말 졸지에 삶을 마친 이들에게 정부는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합니다. 코로나19 펜데믹을 끝내기 위해 예방 접종을 서두르고, 반드시 맞아야 한다고 홍보하던 그 열정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인과성이 없다는 모호한 설명으로 한 가정을 박살내고, 팔팔한 삶을 스러지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몰인정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도 수없이 많은 불확실성에 둘러 쌓여있습니다. 확실한 것을 모른 채 앞으로 앞으로 떠밀려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맙시다. 아직 우리들은 맑은 감성, 올곧은 지성을 가지고 있고, 편견과 고정 관념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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