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왕과 현대 대통령은 같은 통치자이지만 여러 가지로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왕조국가였다. 그렇다 보니 왕이 절대 권력자로 대대손손 이어져 왔다. 왕조국가의 특색 중 하나가 세습이었으며 왕의 말과 행동이 곧 법으로 어느 누구도 크게 반발하지 못했다. 그런 바탕에서 대부분 왕들이 주색을 일상으로 하고 신하들은 그 틈을 이용 우지좌지하며 부패에 만연돼 국민들의 삶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만 해도 건국 초기부터 왕실 내 부패가 하늘을 찌르듯 했다. 왕자들 간 세자자리를 놓고 피비린내를 풍기고
‘읍성길’을 걷는다. 우수 지나 어느 새 경칩이다. 살갗을 스치는 봄바람이 정겹다. 낯익은 읍내 풍광들이 성곽 주변을 포근히 감싸준다. 이 포근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척 서남리 오거리 ‘장독천’이 손짓한다. 장독기(장군기)를 땅에 꽂으니 샘물이 솟았다 하여 ‘장독천’이란다. 영암에 터 잡은 이래 무심코 지나쳤을 뿐, 이 스토리를 마음의 텃밭에 심은 지는 부끄럽게도 최근의 일이다. ‘장독천’ 스토리에는 ‘양달사’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40년 짧은 삶의 이정표마다 그의 길이 새겨져 있었다. 7촌 당숙 스승삼아 처음 떠나는 화
아직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립니다. 고향에서도 코로나가 번지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려옵니다. 집에 콕 쳐박혀 활동을 멈추는 것을 ‘집콕’이라 한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집콕을 해도 최소한의 사회 활동은 해야 합니다. 며칠 전 골프연맹 이사회의도 줌(zoom)이라는 앱을 이용해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이런 불편한 생활은 이 바이러스에 대한 사회적 면역력이 생겨나고 치료제가 만들어져야 어느 정도 끝나겠지요. 생각이 많아집니다. 우울하고 걱정스럽고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이런 우울한 현상을 ‘코로나 블루’라고 한답니다.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온통 트로트다. 이리 틀어도 저리 눌러도 트로트다. 국악을 하던 이도 성악을 전공하던 이도 트로트로 전향하기 위해 온 몸을 불사르고 있다. 왜 그럴까? 근사한 말보다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트로트를 원하는 민초가 자기 소리를 내면서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돈과 인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기에 전국적으로 트로트 열기가 광풍이 되어 모든 음악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제 트로트는 전 국민의 애창곡으로 마침내 등극하고야 말았다.이렇게 된 데에는 지자체가 벌리는 지역의 축제도 한 몫을 했다. 전국적으로 축제가 경쟁적으로 열리다 보니 주최하는
고향산천이 생각이 난다. 부모가 나를 낳아 키우기 위해 갖은 고생하시던 그 모습이 생각이 난다. 감기라도 걸려 콜록이면 밤잠을 설치며 다독이면서 걱정하시던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풀피리 불며 뛰놀던 까까머리 친구들이 생각이 난다. 멀리 높은 하늘에 깜박이는 별들이 생각이 난다. 봄이면 남쪽 멀리 태평양에서 비릿한 냄새를 품고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이 생각이 난다. 여름이면 용두교 아래 용두천에서 알몸 들어내고 친구들과 목욕하며 장대들고 고기를 쫓던 때가 생각이 난다. 꼴망태 메고 풀 베던 그 때가 생각이 난다. 정월 대보름이면 이웃마
경주지방 백성들이 수령들의 가혹한 환곡 횡령에 대해 상소를 올렸다. 수령들이 아전이나 향리와 짜고서 환곡을 다양한 방식으로 횡령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수령이나 서리가 환곡을 일부 횡령한 뒤에 이를 채우기 위해 시가로 농민들에게 나누어준 후, 가을에 몇 배 높은 가격으로 받아 챙기는 방법, 쌀값이 비싼 지역에다 환곡미를 팔아 일부를 횡령한 뒤, 나머지 돈으로 쌀값이 싼 지역에서 사서 채워놓는 방법, 애초부터 백성들에게 환곡을 나누어주지도 않은 채 가을에 환곡을 걷는 방법 등이다. 조정에서 이에 대한 강
새해 아침이면 철들고 나서 난 두 가지 일을 하곤 한다. 그 첫째는 새 달력에 올 한 해 일어날 일들을 정리해서 기록하는 일이다. 제사, 결혼기념일, 집사람, 아들들과 며느리들, 손주들의 생일, 아파트 골프 동호회와 퇴직 교장단, 연맹임원 골프 라운드 날짜, 그리고 골프연맹의 학생골프대회 일정들을 기록하는 일이다. 깨끗한 새 달력에 빨강 동그라미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으면 어느새 내 일 년의 삶이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 다이나믹하게 펼쳐져 보여 좋다. 두 번째로는 심심풀이로 토정비결을 본다. 그런데 올 한 해 토정비결은 여태껏
스물여섯이던 그 해, 그녀는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5년 동안이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둬야 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취미로 했지만 점점 심혈을 기울여 마침내 1천37쪽이나 되는 소설을 완성했다. 그녀는 두툼한 원고 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무명작가의 소설을 선뜻 받아줄 출판사는 없었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흘러가자 그녀의 원고는 너덜너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지방 신문에 뉴욕에서 제일 큰 출판사 사장이 애틀랜타에 왔다가 기차로 올라간다는 짤막한 기사가 났다. 그녀는 그
영암여중고 입구 도로에 ‘문화 배움길’이 조성됐으나 주차 및 차량통행 등의 교통질서가 지켜지지 않아 오히려 학생들의 안전한 통학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당초 영암여중고 입구 도로는 국도와 연결된 도로로 최근에는 광주-강진간 고속도로 등의 공사 차량과 인근 5일시장 차량들이 빈번하게 출입하면서 영암여중고생과 인근 주민들이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생활에 큰 불편을 겪어왔던 곳이다.영암군은 이에 따라 주민들과 학교 측의 의견을 수렴해 영암읍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에 ‘문화 배움길’을 조성키로 하고 지난해 말 안전한 도로를
2021년 영암신문 낭주골 필진으로 참여하게 된 영광을 안고 고향 선후배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보다 유익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을 해봅니다. 우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필자가 금정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광주로 중학교를 가면서 고향을 떠나긴 했으나 1971년 7월 이후 1973년 2월까지 영암교육지원청(당시 영암군교육청)에서 근무했었던 바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를 비롯한 적지 않은 조상이 편히 쉬고 계시는 곳으로 영암 금정은 필자의 육체적 뿌리이자 정신적 고향으로 영원불변한 곳입니다. 날짐승도 죽을 때 머리를
영암군이 지방자치단체로는 보기 드물게 민간기업이 추진하는 초대형 태양광발전사업을 반대하는 입장을 공식 천명하고 나섰다. 특히 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도 향후 민간기업의 대응도 주목된다.지난해 12월 군의회의 반대성명에 이어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영암군은 대기업 SK E&S에서 태양광발전사업을 추진하려는 삼호·미암 일원의 영산강 4지구 3-1공구 간척지는 영암방조제가 1996년 11월 준공돼 삼호읍에서 해남 화원까지 4.3㎞의 바다를 막는 국가사업으로 전국 최고를
‘21세기 영암의 미래를 여는 신문’을 기치로 올해로 20년 전통을 이어가는 영암의 대표 정론지, 영암신문의 칼럼 ‘낭주골’ 필진이 새해 인사드립니다.올 한해도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명사들의 칼럼이 독자 여러분들의 갈증을 해소하고 지역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입니다. 올 한해 ‘낭주골’ 칼럼을 집필하실 인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해를 바삐 지내다 보면 가끔은 소원해진 친구도 생기고 멀리 사는 친척이나 가족들에게 전화 안부도 뜸해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주변과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12월은 참 감사한 달이라 생각된다. 집안의 옷장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마당과 뒤뜰 대청소도 하고, 한 해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곤 한다. 한 해 동안 내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와 남을 위한 배려와 봉사는 어땠는지, 나를 낮추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 왔는지 등 여러 가지로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무척이나 낯설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는데 어느덧 한
K형은 거금을 UNICEF(유엔아동기금)에 쾌척했다. 광주 J초등학교에 같이 근무하던 30대 시절 내가 천주교로 인도한 형이다. 은퇴 후에는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고향 섬마을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람되게 보내고 있다. 섬마을을 돌아가며 독거노인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기도 한다니, 요즈음은 자기 부모도 늙으면 모시지 않고 요양원으로 보내는 판인데, 참 심성 고운 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고희가 넘은 나이에 벅찰 텐데도 500여 평이 넘는 밭에 마늘과 녹두를 재배해 어렵사리 생긴 수익금 전부를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기부했다는
한 해도 저물어가는 어느 날 우리를 아주 슬프게 하는 소식이 또 전해진다. 빚에 시달린 40대 가장이 초·중학생을 죽이고 자살을 시도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필자에게는 유사 사건으로 과거 추운 겨울에 아버지가 차디차고 시퍼런 한강에 어린 두 자녀를 던져버린 사건이 연상된다.필자가 어려서 아버지는 하늘과도 같은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존재였고 돈 걱정하는 엄니를 보면 잠시 머리가 띵하다가도 고민은 자연히 잊고 천진난만하게 그 품안에서 살아왔건만, 한순간 포근하고 평온한 방안에서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는 아버지 손에 세상을 하직하다니...돈에
연말연시, 다시 찾아온 팬데믹 공포! 올해 벽두부터 시작된 해외 발 코로나 위기는 신천지 발 1차 위기,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발 2차 위기 이후, 지금 전국 확산이라는 3차 위기를 맞고 있다. 이전의 위기가 일정 지역, 특정 세력에 밀착형 위기였다면, 이번 3차 위기는 수도권 중심으로 다양한 계층과 집단에서 전파됨으로써 더 심각하다. 정부는 이미 국지적 차원을 넘은 전국적 유행의 시작으로 보고 코로나 거리두기 방역을 2.5단계로 높이고 3단계까지 대비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이어서 더욱 적극적 대처가
4차산업 혁명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의 일상화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노동이란 것을 중요시하게 되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감정노동이란 근로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회사나 조직의 입장에 따라 말투나 표정 등을 연기하며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콜센터 상담원, 텔레마케터, 항공사 승무원, 은행 창구직원, 식당 종사자 등 740여 만 명의 감정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손님은 왕이다’라는 고전적인 고
국화 향기가 가득하고, 산자락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인해 가을 정취가 완연한데 마음은 겨울이다.국화 향기를 여유롭게 맡을 수도 없고, 아름다운 단풍길을 거닐면서 호젓하게 가을을 느낄 수도 없다.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상황들을 겪고 있다. 즐겁게 모여서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도, 맘껏 웃을 수도 없다. 오랜만에 멀리서 만나 반가움에 서로를 껴안고 어깨동무도 할 수 없으며 또한 한창 뛰어놀 아이들은 운동장을 맘껏 내달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관계에 불편하고 어려
2020년 만추에 낙엽이 우수수 지고 가을바람도 소슬한 시기에 그 좋았던 시절을 뒤로하고 17년 고난의 감옥살이를 하러가는 MB관련 기사가 눈에 띈다. “경제인으로 남았다면 말년 신세가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는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린다.공직자 뇌물범죄는 가혹하다 필자가 작년 7월 감사관을 퇴직하고 사업을 하면서 ‘돈을 받아도 될까? 사무실 운영은 해야 되는데’ 한동안 머릿속에 개념이 잡히지 않았는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특가법 등 공직자 범죄를 다스리는 가혹한 법규가 내게 해당되지 않음을 알게 되어 자유로운 사
노동 청년 전태일 50주년어머니! 전태일의 죽음을 아시나요? 지금부터 딱 50년 전.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가진 전태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며 근로기준법을 태운 그 불에 자신을 불태우며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어 준 22살의 노동청년 전태일! 어머니! 기억나시죠?60~70년대 경제성장의 시기, 농촌의 자식들은 도시로, 공장으로 ‘산업역군’으로 차출되었지요. 이때 우리 농촌의 부모들은 저곡가 정책을, 도시의 자식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지요. 아무리 일해도 가난하고, 배울 수도 없고,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병에 시달렸어요. 당시 전태일은 어린 시다와 미싱사들의 노동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