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 규 / 금정면 용흥리 출생 전 환경부 공무원 퇴직  (부이사관) 전 한맥문학가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한 정 규 / 금정면 용흥리 출생 전 환경부 공무원 퇴직  (부이사관) 전 한맥문학가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전근대 왕과 현대 대통령은 같은 통치자이지만 여러 가지로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왕조국가였다. 그렇다 보니 왕이 절대 권력자로 대대손손 이어져 왔다. 

왕조국가의 특색 중 하나가 세습이었으며 왕의 말과 행동이 곧 법으로 어느 누구도 크게 반발하지 못했다. 그런 바탕에서 대부분 왕들이 주색을 일상으로 하고 신하들은 그 틈을 이용 우지좌지하며 부패에 만연돼 국민들의 삶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만 해도 건국 초기부터 왕실 내 부패가 하늘을 찌르듯 했다. 왕자들 간 세자자리를 놓고 피비린내를 풍기고 파벌싸움이 이어지고, 왕과 왕비, 상왕과 왕, 대비와 왕비 또는 왕, 왕비의 친정 친인척 간 갖가지 행태로 다툼이 끊이지를 않았다. 한마디로 무질서가 질서로 힘에 의해 지배됐다. 

가장 큰 문제는 왕에게 왕비 이외 적지 않은 빈(첩)을 두었다. 그 처첩들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들을 둘러싼 세자 책봉을 두고 벌리는 파벌 다툼이었다.

조선시대 스물일곱 명의 왕들 중에 태종은 원경왕후 민씨와 후궁 열한 명 등 처첩이 스무 명이었으며 원경왕후에게서 7남 4녀를 포함, 아들 열다섯 명과 딸 열여덟 명 모두 서른세 명의 자손을 두었다. 성종은 공혜왕후 한 씨와 폐비 윤 씨, 장현 왕후 등 두 명 그리고 후궁 아홉 명을 포함 총 열두 명의 부인을 두었다. 중종은 열 명, 정종 선조 철종은 각각 여덟 명, 고종은 일곱 명, 세종 숙종 영조는 각각 여섯 명, 그리고 후궁을 중전으로 한 문종 예종 성종 중종 숙종이 있었다. 그렇게 왕들이 여자, 궁궐의 안방 여인을 두고 탕아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갔다. 

조선 시대 역대 왕 중 왕비 이외 빈 등 첩을 두지 않은 왕으로는 헌종 경종 순종 단 세 명뿐이다. 또 세자 책봉을 두고 파벌싸움에 휘둘려 영조는 왕자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겨 죽게 하기도, 그 이외 대비의 섭정으로 허수아비 왕 등 백태였다.

문제는 왕이 무능하거나, 처첩 치마폭 속에 묻혀 살거나, 술독에 빠져 살다 보니 간신들 세상이 되어 곳곳에서 세도가들의 횡포가 횡횡하고 민심이 흉흉했다. 그러자 인접국 러시아가, 청나라가, 일제가, 조선 땅을 드나들며 조선 땅에서 전쟁을 일삼았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이, 프랑스가,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로, 영국이 군대를 이끌고 거문도를 점거 2여 년 동안 800여 명의 군대를 주둔시키는 등 세계열강들의 전쟁터 또는 놀이터가 됐다. 결국, 1895년 야밤에 일본인 자객이 경복궁을 침입해 민비를 살해 불태우고 고종을 겁박해 1910년 8월 29일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군대를 해산, 한일합방 국권을 빼앗아 가 1945년 8월 15일까지 36년간 식민지통치를 했다.

조선 시대 주색에 빠진 부패한 왕들 때문에 민족이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슬픈 역사가 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의 국가관이 해이된 것 같아 안타깝다. 

게다가 20세기 후반 이후 21세기가 시작된 작금, 한국 주변국들의 행태가 심상치 않다. 특히 북한에선 핵무기와 중장거리 미사일을 만들어 실험을 빙자해 우리를 위협하고, 국내정치는 지역 간, 좌우 이념 간, 계층 간, 갖가지 형태로 분열의 도를 넘는 갈등 속으로 빠져들고, 정치권에서는 당파 간 싸움에 함몰돼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한마디로 꼴이 가관이다. 이런 때, 정치 지도자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가 조선 시대 말 고종 때와 다르리라 장담할 수 없다. 조선 시대 왕 주변에 여자와 간신이 있었다면 지금엔 대통령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는 사람들이 사리사욕에 매몰돼 득실거린다. 그 대표적이었던 것이 박근혜 정부였다. 그런 일이 또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노심초사하는 일이 없도록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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