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 서호면 몽해리 아천 출생/전 목포석현초등학교 교장 등/전 전라남도교육청 정보화과장/전 목포교육지원청 교육장
이 기 홍 - 서호면 몽해리 아천 출생/전 목포석현초등학교 교장 등/전 전라남도교육청 정보화과장/전 목포교육지원청 교육장

스물여섯이던 그 해, 그녀는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5년 동안이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둬야 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취미로 했지만 점점 심혈을 기울여 마침내 1천37쪽이나 되는 소설을 완성했다. 그녀는 두툼한 원고 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무명작가의 소설을 선뜻 받아줄 출판사는 없었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흘러가자 그녀의 원고는 너덜너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지방 신문에 뉴욕에서 제일 큰 출판사 사장이 애틀랜타에 왔다가 기차로 올라간다는 짤막한 기사가 났다. 그녀는 그 기사를 보자마자 원고를 들고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역에 도착했을 때, 멕밀란 출판사의 레이슨 사장은 막 기차에 오르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큰 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다. 

“사장님, 제가 쓴 소설입니다. 꼭 한 번만 읽어주세요.” 

그는 마지못해 원고 뭉치를 들고 기차에 올랐다. 그러나 원고 뭉치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재빨리 기차역을 빠져 나와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얼마 후 기차 차장이 레이슨 사장에게 전보 한 통을 내밀었다. 그 전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 번만 읽어주세요.”

그러나 그는 원고 뭉치를 흘깃 쳐다볼 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얼마 후 똑같은 내용의 전보가 또 배달됐다. 그래도 그는 관심이 없었다. 다시 세 번째 전보가 배달됐다. 그 때서야 그녀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르며 그 원고 뭉치를 집어 들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 승객들이 짐을 챙기는 동안에도 그는 원고지에 푹 빠져 있었다. 그렇게 해서 출판된 소설이 27개 국어로 번역되어 1천 6백만 부가 팔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The gone with the wind)이다. 1936년도 일이다. 그녀는 마가렛 미첼이고, 10년간 조사하고 집필했다. 남북전쟁과 패전, 재건시대의 조지아주를 배경으로 아름답고 강인한 스칼렛 오하라의 인생과 파란만장한 사랑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린 소설이다. 빅터플레밍 감독, 클라크케이블, 비비안리 주연으로 영화화되었고, 상영 시간만 222분이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타의에서였다. 회고사를 비롯하여 각종 대회사, 권두언, 심지어 조사에 이르기까지 교직생활의 대소사 한가운데서 나는 쓰고 또 써야만 했다. 푸르던 시절 전남도교육청 장학사로 들어가 소위 축고사 쓰는 일이 내 업무로 배당되어 글을 엄청 썼다. 교육감을 비롯하여 교육간부 명의의 공적인 글을 오랫동안 썼다. 그러나 그 글이 말 그대로 공문(公文)이기에 결재과정을 거쳐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난도질을 당하기가 일쑤였으며, 당연한 줄 알면서도 오장이 뒤집히고 부아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반작용으로 자투리 시간만 나면 나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내 방식의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어느 사이 40여 년이 흘렀다. 신문 잡지를 비롯하여 각종 문단 발표물에 글을 올리며 난 항상 1936년 마가렛미첼이 외쳤던 그 말 “한 번만 읽어주세요”를 마음속으로 갈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도, 누구도 읽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글이 되지 못함을 항시 안타까워할 뿐이다. 지난날의 내 글쓰기가 만 사람이 한 번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면, 칠순이 다 된 지금의 내 글쓰기는 단 한 사람일지라도 만 번을 읽어주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내 고향 아시내는 이런 나를 품어주고 월출산은 이런 나를 보듬는다.

오늘도 난 서호강 몽해들 둥지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긴다. 머지않아 나 역시 내 주변 사람들이 그랬듯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쓴 글만은 인터넷 어느 구석에서 임을 기다리듯 누군가를 기다리며 수줍어할 것이다. 우연일 테지만 “한 번만 읽어주세요”가 탄생시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상영시간이 222분인데 내 생일은 음력으로 2월 2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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