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홍 근 / 영암읍 교동리 출생 / 전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전 서울 월정초등학교 교장 / 한국초등학교 골프연맹 이사   및 심판위원
최 홍 근 / 영암읍 교동리 출생 / 전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전 서울 월정초등학교 교장 / 한국초등학교 골프연맹 이사   및 심판위원

아직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립니다. 고향에서도 코로나가 번지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려옵니다. 집에 콕 쳐박혀 활동을 멈추는 것을 ‘집콕’이라 한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집콕을 해도 최소한의 사회 활동은 해야 합니다. 며칠 전 골프연맹 이사회의도 줌(zoom)이라는 앱을 이용해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이런 불편한 생활은 이 바이러스에 대한 사회적 면역력이 생겨나고 치료제가 만들어져야 어느 정도 끝나겠지요. 생각이 많아집니다. 

우울하고 걱정스럽고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이런 우울한 현상을 ‘코로나 블루’라고 한답니다.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느낌, 인식, 감성이라는 이런 말들이 ‘생각’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는데 모두 정신 영역에 속한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들은 신비롭고 베일에 싸여 있어서 실체에 닿기란 어렵습니다. 느낌이란 희노애락과 같은 생각 이전의 감각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됩니다. 인식은 사물간의 연관에 대하여 판별을 내리는 이성입니다. 감성은 일종의 오성(悟性)인데 다른 말로 하자면 ‘심성’이라고도 합니다. 이 감성은 상당히 선천적이지 않나 싶지만 후천적으로 계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성이 풍부하다’, ‘감성이 메말라 있다’라고 말 합니다. 또는 ‘심성이 곱다’, ‘사악하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용모가 서로 다르듯, 변하듯 감성도 변합니다. 아무리 좋은 심성을 가지고 태어나더라도 거듭되는 불행 때문에 찌들어 메마를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다 보면 추악하게 때가 묻을 수도 있습니다. 젊은 날 그렇게 발랄하고 투명하며 아름답고 공명정대하던 사람들이 자기모순과 자기기만, 탐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추락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늙어가는 육신을 슬퍼하기 보다는 맑은 샘 같았던 심성이 오염되어 판단에 편견과 오만이 생겨남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치를 너무 따지면 모가 나고, 정에 치우치면 정파에 휩쓸리기 쉽고, 고집을 많이 피우면 옹색해지는 현상을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의 행태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오만과 잘못된 신념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망가지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밥만 먹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님을 압니다. 뭔가 해보려고, 스스로 존엄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온 것이라 자위해 봅니다. 이 나이되어 되돌아보니 나 죽고 나면 돈도 명예도 고가의 아파트도 명품 브랜드도 덧없음을 먼저 가신 분들이 증명해 주고 있음을 압니다.  

우울에서 벗어나려 생각을 확장시킵니다.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내 작은 감성의 봉창 끝에 매달려 있는 몇 개의 발라드와 리듬 앤 블루스와 집사람, 가까웠던 분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웠던 날들을 생각합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문득 폭풍의 언덕을 닮은 스코틀랜드 평원의 세찬 바람, 말레이시아의 따가운 햇살과 구마모토 아소산 그린 위로 뻗어가던 골프공의 하얀 괘적들이 뇌리를 스치웁니다. 누군가가 대파 알갱이 같은 눈발을 펑펑 뿌려대던 어느 겨울 북해도, 히가시가와초 설산(雪山)의 폭설, 귀로는 말러를 들으며 눈으로는 크림트를 쫒던 빈에서의 어느 날, 몸서리쳤던 아우슈비츠 막사 곁에 무심하게 피어있던 노란 민들레꽃, 물안개 피어오르던 새벽의 콜로라도 강을 건너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그랜드캐년의 대협곡 위를 날아오르던 흰머리 독수리들, 토론토를 지나 호수의 도시 오타와 강변의 빨간 단풍과 파란 호수, 그 곁으로 떠오르듯 나타난 말 탄 근위병들과의 악수, 뜨거운 여름날 청량음료 광고처럼 하늘하늘한 파란 원피스에 하얀 챙 모자를 쓰고 공주처럼 걷던 산토리니의 금발 여자들, 마을 깊숙이까지 차가운 시냇물이 흐르던 운남(雲南)의 리장 고성(古城)과 옥룡설산에서 불어오던 칼칼한 바람들, 카프리 섬을 지나 물의 도시 베니스에 들어가던 날, 우연히 정말 좋아하던 싸이먼 앤과 가펀클의 공연이 산마르코 광장에서 열렸더랬는데 그날 그때 내 영혼을 흔들던 하모니와 함성들, sound of silence, scarborough fair..... 톨스토이가 부활을,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썼던 집들을 챙겨 보려 발품을 팔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송내와 게이랑에르의 피오르드, 수백 미터 절벽에서 하얀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 같이 수 십 줄기로 쏟아지던 폭포와 흩날리던 비말들, 북쪽으로 가는 길, 노르웨이. 비틀즈와 하루키가 악보와 활자로 남긴 동명의 노래와 소설 노르웨이의 숲. 하얀 자작나무들이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던 노르웨이에서 필란드로, 그리고 모스크바로 이어지던 여정. 퀸스타운에서 밀퍼드사운드까지 마주했던 청량한 공기와 코발트빛 바다와 울창한 숲과 호수. 맛집 퍼그 버거의 햄버거는 잊을 수 없는 내 기억의 한 자락입니다.

행복은, 삶이란 뭘까요? 이런 것들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매일매일 고맙고, 즐겁고, 행복하다고 자위하며, 행복했던 옛일들을 회상하며 이 엄혹한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파이팅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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