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중 / 전 호남교육신문 기자 / 전 전교조 영암지회장 / 전 전교조 전남지부장 / 현 구림공업고등학교 영어교사
김 기 중 / 전 호남교육신문 기자 / 전 전교조 영암지회장 / 전 전교조 전남지부장 / 현 구림공업고등학교 영어교사

경주지방 백성들이 수령들의 가혹한 환곡 횡령에 대해 상소를 올렸다. 수령들이 아전이나 향리와 짜고서 환곡을 다양한 방식으로 횡령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수령이나 서리가 환곡을 일부 횡령한 뒤에 이를 채우기 위해 시가로 농민들에게 나누어준 후, 가을에 몇 배 높은 가격으로 받아 챙기는 방법, 쌀값이 비싼 지역에다 환곡미를 팔아 일부를 횡령한 뒤, 나머지 돈으로 쌀값이 싼 지역에서 사서 채워놓는 방법, 애초부터 백성들에게 환곡을 나누어주지도 않은 채 가을에 환곡을 걷는 방법 등이다. 조정에서 이에 대한 강력한 대처방안이 없는 한 이러한 일들은 더욱 노골화될 터이니 이를 시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상소는 세도정치의 위세 속에서 오로지 입신양명과 자리싸움에만 눈멀어버린 정치문화에 가려 가볍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바로 1841 신축년 때의 일이다. 

1841 신축년은 순조의 비 순원왕후 김씨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15세가 된 헌종의 친정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친정 초기에는 내시들의 작폐를 금하고 나름 군대를 개혁하려는 결기가 엿보였다. 만약, 헌종이 23세에 요절하지만 않았다면, 아직 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지 않은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을 이때부터라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면 어땠을까.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면서 안동김씨 세력이 위축되는 것을 발판 삼아, 세도정치와 부정부패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8년 후, 정권은 다시 안동김씨 수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으니, 2021 신축년에 되돌아보는 속절없는 상상일 뿐이다.

1841 신축년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유년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어 친부모는 그를 양자로 보냈다. 그는 11세 무렵부터 동네 서당에서 글을 익혔고, 14세에 무사들이 하는 일 중 잡역을 맡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 스승을 만나 그의 학당에서 수학하게 되고 동문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무시당하지 않는 세상, 모두가 평등한 교육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더 큰 세상에 눈을 돌려 청나라와의 아편전쟁 승리로 주가가 한층 높아진 영국을 찾아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학문과 기술로 무장하고 돌아와 정계에 입문, 마침내 여러 나라의 운명을 바꿔놓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일본 ‘제국헌법’을 제정하여 ‘메이지 유신’을 완성시킨 장본인이자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이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지만 만약,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만주 하얼빈 역에서의 그 순간이 없었다면, 지금 한일·남북·한중일· 한미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2021 신축년 벽두부터 국내외 정세가 어수선하다. 정권교체기 미국은 선거 결과를 놓고 여전히 싸우고 있는 중이다. 아베의 바통을 물려받은 일본 스가 내각 역시 코로나 확산과 경기 침체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2인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주권 면제를 들먹이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180년 전에 태어난 한 사람이 주축이 되어 저질러진 만행을 상기해보라. 한 밤중에 불한당들이 조선의 왕비를 무참히 살해하고, 종이 한 장 들이대며 서명을 강요했던 을사늑약도 과연 국제법에 의한 것이었나. 제국주의자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악용되는 국제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산성대에 올라 180년 전 환곡의 문란을 떠올리며 영암 들녘을 바라본다. 일제의 토지수탈에 맞서 삶의 터전을 지키려 했던 소작인들의 피눈물이, 부족한 농지를 확보하고자 정들었던 갯벌을 눈물로 포기해야 했던 물막이 작업의 피땀이 서려 있다. ‘2050년 탄소 제로화’와 신재생에너지 도입은 우리 모두가 함께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이 또한 거대자본에 의한 확대재생산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높은 산을 깎아 골짜기를 메우듯 상생의 문화를 꽃피우며 가야 할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마한의 숨결이 서려 있는 소중한 농지를 지키고 물려주어야 한다. 어느 누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 했던가. 세 갑자 180년 세월의 강에 다리를 놓고 함께 건너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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