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 서호면 몽해리 / 전 목포시 교육장 /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이 기 홍  / 서호면 몽해리 / 전 목포시 교육장 /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온통 트로트다. 이리 틀어도 저리 눌러도 트로트다. 국악을 하던 이도 성악을 전공하던 이도 트로트로 전향하기 위해 온 몸을 불사르고 있다. 왜 그럴까? 근사한 말보다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트로트를 원하는 민초가 자기 소리를 내면서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돈과 인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기에 전국적으로 트로트 열기가 광풍이 되어 모든 음악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제 트로트는 전 국민의 애창곡으로 마침내 등극하고야 말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자체가 벌리는 지역의 축제도 한 몫을 했다. 전국적으로 축제가 경쟁적으로 열리다 보니 주최하는 측에서는 어떻게 하면 군중들을 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자연 인기 몰이하는 가수를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트로트 가수 전성시대를 열게 된 자양분이 됐다. 거기에 불을 댕긴 것은 모 방송사에서 트로트 경연을 수준 높게 하여 문화상품으로 잘 포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케이 팝과 아이돌에 물린 혹은 갈 곳 없는 정서가 활화산처럼 폭발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대학 다니던 50년 전 캠퍼스에서 이미자 노래를 부르는 것은 스스로를 격하시키는 자살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에도 나는 이미자 노래가 좋아 즐겨 불렀는데 그럴 때마다 난 바보가 되어있었다. 자칭 지식인들이 트로트를 애써 외면하던 그 시절, 트로트는 무학력자의 하소연이었고 소외계층의 애환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조는 오랫동안 유지됐다. 최근 케이 팝이라며 아이돌 그룹을 앞세워 우리 음악을 세계에 진출시킬 때도 트로트는 그 저변만큼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래 트로트 가수로 대성해 인기와 부를 거머쥔 가수마저 하는 수 없어 울면서 트로트로 전향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고 있지 않는가.

이제 더 이상 민중들은 그 위선에 놀아날 수 없게 됐다. 초등학교밖에 못나온 우리 어머니가 불렀던 ‘여자의 일생’은 더 이상 하소연이 아니다. 가난한 우리 아버지가 좋아했던 ‘황성 옛터’는 더 이상 신세타령이 아니다. 트로트는 최고의 음악이고, 다른 장르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최고의 예술이다. 팔순을 넘긴 이미자씨가 부른 ‘동백아가씨’는 온몸이 감동으로 멍이 들었다는 말 외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지난 트로트 인생 60년을 정리하는 이미자씨의 노래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은 우리 대중음악이 걸어왔던 가시밭길을 그대로 들려줬다.

이제 우리 모두 솔직해지고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하고 그것을 떳떳이 드러내는 시대를 만들어가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종류의 음악을 폄훼하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말자. 얼굴 없는 가수나 불렀던 트로트, 선술집에서 젓가락 장단에나 불렀던 트로트, 그것은 인고의 세월이자, 곰삭는 기간이었고, 절절함이 베어드는 시간이었다.

이제 트로트는 우리 모두에게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위대한 방편이 됐다. 트로트는 우리의 진솔한 하소연이고, 위대한 예술이고, 불멸의 혼이다. 더 이상 먹물을 자랑하려고 부른 성악보다 수준이 낮은 음악이 아니다. 더 이상 신문물을 뽐내려고 부른 팝송보다 뒤처진 음악이 아니다. 그 꺾기, 그 털기, 그 긁기, 그 누가 비웃을 수 있겠는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당당하게 부르고 국경일을 맞아 축하 무대에서 자랑스럽게 부르자. 

누군가는 말했다. 모든 지적통제를 중단하고 리듬에 몸을 맡기고 모든 것을 잠시 잊으면 쾌락의 파도가 물밀 듯이 밀려온다고. 트로트는 우리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가장 부응하는 리듬중의 하나이다. 단순해 뽕짝이라고 경멸받던 트로트가 대접받는 세태는 단순해 순둥이라고 업신여김 받던 우리네가 대접을 받는 것 같아 황홀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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