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139]
■ 구림마을(48)
간재(艮齋) 최규서(崔奎瑞)
회사정에는 간재(艮齋) 최규서(崔奎瑞)의 ‘서호십경’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번 호는 간재의 서호십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규서는 해주인으로 전라도관찰사와 이조판서, 좌의정, 영의정을 지낸 조선 후기 문신이다. 효종 원년(1650) 서울에서 태어나 영조 11년(1735) 86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연보에 의하면 45세 때 전라감사로 재직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 시기에 영암 구림마을 회사정에 들러 시를 남겼지 않나 싶다. 그보다 앞서 백헌 이경석(1595~1671)이 쓴 서호십경이 남아 있어서 이것을 참고로 했으리라 짐작된다. 간재집(艮齋集)을 남기기는 했으나 최규서는 본래 저술을 많이 하지 않았으며, 자손들에게 문집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계를 남기기까지 했다. 그는 “근래 문집(文集)이 외람되이 많은 것은 실로 폐단이 되어 좋지 못하고 단지 졸렬함만 들어낼 뿐이니 조상을 빛내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는 저술이 없어 이럴 근심은 없지만, 너희들도 마땅히 이런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조선왕조실록)
간재 최규서의 서호십경(西湖十景)
1. 孤山雪梅(고산설매)
처사는 서호에 학을 두고 회은(回隱)하여 지내는데
고산의 수많은 나무들 눈이 쌓여 허옇구나
깊은 숲 밤사이 눈에 덮여 기뻐할 뿐인데
어떻게 보내왔는고 암향마저 그윽하여라
處士西湖放鶴回 孤山千樹白皚皚
只說深林埋夜雪 如何還遺暗香來
2. 斷橋煙柳(단교연유)
무수히 날리는 실버들 모래사장에 가득
청송과 흰 돌에는 지는 해 비껴있네
앞마을 여자 친구들 서로 불러대어
할미바위에 올라 친숙함이 어떠한고
無數輕紗雪滿沙 靑松白石夕陽斜
前村女伴相呼去 却把姑巖比若耶
3. 岬寺晩鍾(갑사만종)
선가는 저 멀리 푸른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해 저무는 하늘엔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로다
다시 센바람이 불어 휩쓸어 가고
어둠에 내리는 성긴 비 숲속 연기를 내쫓네.
禪家遙住翠微巓 隱隱鍾聲日暮天
更有長風吹引去 暝和疎雨出林煙
4. 竹嶼遠颿(죽서원범)
밤중에 이는 쓸쓸한 바람 대숲에 불어대는데
창파는 몇 자나 되는고 예와 같이 깊기만 하네
고요히 듣건대 전해오는 수궁의 은밀한 소리
노룡이 노래 그치니 바다는 잠잠하구나
半夜蕭蕭打竹林 蒼波幾尺比前深
靜聽水宮傳密響 老龍吟罷海沈沈
5. 月峯朝嵐(월봉조람)
월출산 아래서 새달을 기다리니
하늘 넓고 산이 높아 달뜨기 어렵구나
밤들어 비친 달빛 우물 속이 냉랭한데
벽봉의 가을 물이라 폭포마저 차갑구나
月山之下候新月 天闊山高月上難
入夜蟾光井底冷 碧峯秋水玉龍寒
6. 龍津暮潮(용진모조)
넓고 너른 모래사장 점점이 섬들인데
긴 하늘 넓은 바다 묘연하게 트였구나
묻건대 외로운 배 어느 곳에 머물렀는고
대숲엔 바람 일고 저녁 조수 돌아오네
漠漠晴沙點點島 長天闊海杳然開
借問孤舟何處泊 竹林風起暮潮回
7. 平湖秋月(평호추월)
창문 열고 아름다운 연꽃 바로 대하니
흐릿한 이내 옮겨와서 푸르기는 몇 겹인고
오래도록 바라보나 산의 원근을 알 수 없어
신선의 길 찾고자 하나 묘연하여 자취도 없네
開窓正對玉芙蓉 嵐氣移來碧幾重
望久不知山遠近 欲尋仙逕杳無蹤
8. 圓峰落照(원봉낙조)
멀리서 원봉을 바라보니 낙조가 비껴있고
청산은 끊기는 듯 잇는 듯 비단구름 날리네
서호는 밤을 맞아 새 흥을 더하여서
남은 광채 찾고 보니 물밑까지 밝구나
遙望圓峰落照橫 靑山斷續綵雲輕
西湖向晩添新興 看取餘光水底明
9. 仙巖聞鶴(선암문학)
청산은 높직하여 푸름 속에 싸였는데
구름 그림자 떠돌며 학과 함께 한가롭구나
변명에는 관심 없이 편벽된 뜻을 두어
아침마다 떠나보내고 고개 머리에서 돌아서네
靑山高入翠微間 雲影徘徊鶴共閑
解說無心偏有意 朝朝長送嶺頭還
10. 香浦觀魚(향포관어)
복을 빌고자 향 묻은 포구 옛 모습 기이한데
이제 와선 다시 낚시터가 되었구나
서리 내리는 해문 가을빛이 완연한데
물가에 가득한 고기잡이 불 밤이 깊어 돌아가네
浦口埋香舊跡奇 至今還作釣魚磯
霜落海門秋色早 滿汀漁火夜深歸
청나라 강희제의 항주 서호십경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재위 기간 1661~1722)는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제왕 중 하나로 꼽힌다. 61년 동안 권좌에 있으면서 내치와 외교 모두 탁월한 업적을 쌓아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과 피지배 민족인 한족의 동화를 이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강희제는 6차례 남방을 순시했다. 명 왕조의 기반이었던 강남은 민족의식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으므로 강희제는 6차례의 순행을 통해 강남의 반청 의식을 잠재우려고 했다. 그 가운데 5차례 항주에 들러 곳곳에 각종 흔적을 남긴 것이 지금까지 유적으로 남아 있다. 서호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서호십경도 그가 지은 것이다. 명·청 양대에 10경의 의미를 새기는 일이 많았고 각각의 특색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도 유행했다.
중국 항주는 저장성(浙江省)의 성도로 상하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180km 정도 떨어져 있다. 관광지로도 명성이 높으며 특히 도시 중심에 위치한 서호(西湖)는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강희제는 항주에서 어제·어시·어비정을 남겼다. 이후 서호십경은 황제의 흠정(欽定)이 되어 본격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서호십경은 소제춘만(蘇堤春晩), 유랑문앵(柳浪聞鶯), 화항관어(花港觀魚), 쌍봉삽운(雙峰揷雲), 삼담인월(三潭印月), 곡원풍하(曲院風荷), 평호추월(平湖秋月), 남병만종(南屛晩鐘), 뇌봉석조(雷峰夕照), 단교잔설(斷橋殘雪)이다.
구림의 서호는 중국 항주의 서호와 늘 비교되곤 했다. 회사정의 서호십경도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시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