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철            ​​한국문인협회 영암지부장  한국사진학회 회원​​​​​​  한국미술협회 회원​  ​​​​​​영암예술원 대표
박 철  ​​한국문인협회 영암지부장  한국사진학회 회원​​​​​​  한국미술협회 회원​  ​​​​​​영암예술원 대표

지난 11월 16일 아침에 빗자루를 준비하여 왕인박사유적지 앞에 있는 평화공원으로 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용서와 화해의 위령탑’이 마음에 떠올라 이곳을 청소한 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서둘러 간 것이다. 

이곳을 찾게 된 것은 위령탑이 세워진 역사와 그 과정을 알고 나서부터다. 너무나 감동했고 소중하게 여겨져서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암을 알고자 하는 특별한 분들이 오면 이곳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때로는 참배하는 자리가 방치되어 있어서 틈나는 대로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잇길에 차를 세워놓고 위로 올라갔다. 위령탑 주위에 가을 낙엽이 뒹굴고 어수선할 줄 알았는데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솔잎만 조금씩 흩어져 있었다. 

나는 평화의 고을, 영암의 가슴을 만지는 마음으로 탑과 제단, 마당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세상 사람 모두가 이 영암정신을 품고 자유로워지기를 기원했다. 그런데, 아뿔싸… 뒤늦게 입구에 걸려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합동 위령제’라는 현수막을 발견하고 나서야 다음 날이 위령제를 올리는 날임을 깜빡 잊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11월 17일,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운데 위령제에 참여했다. 유족들이 위령탑 아래에 새겨져 있는 가족과 친족의 이름을 가리키며 당시의 아픔을 얘기하는 모습과 유족들이 제관이 되어 엄숙히 제사를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난과 시련, 갈등과 상처를 서로 품고 치유해 가는 영암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려야겠다고 되새겼다.

바야흐로, 21세기의 영성시대(靈性時代)가 열리고 있다. 고전물리학이 양자물리학으로 발전되면서 파동이 입자가 되고 입자가 파동이 되는 물질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극히 일부분이고, 결국 물질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과 투쟁 속에서 상대를 꺾고 승리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온 인류에게 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자아의 근본을 터득함으로써 나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삶에서 벗어나 상호 소통하며 서로서로 품고 더불어 삶을 펼쳐가는 홍익인간을 꿈꾸게 한다. 

우리 영암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온몸을 드러내고 있는 월출산을 배경으로 영산강과 천(川), 정겨운 야산과 황토와 기름진 들판, 바다처럼 넓은 영암호 사이에 펼쳐진 마을과 전통과 문화로 구성된 영암의 모습은 섬세하고 다양하고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람의 성품은 보고 듣고 배우는 것으로 성장해 간다. 그 중에 직관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동안 카메라를 들고 영암을 기록하며 반세기 동안 살아왔지만 이제야 영암이 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영암은 사람과 세상을 살리는 영성(靈性)의 고장이다. 

영암은 자신이 품은 역사·문화·자연을 화음으로 만들어 생명의 본질인 영성과 그 문화인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삶을 꾸리신 분들께서 이곳의 지명을 왜 ‘신령스러운 바위(靈巖)’라 했는지, 그리고 영암을 상징하는 새를 평화의 메신저인 ‘산비둘기’로 정하고, 영암군의 뿌리마을을 ‘비둘기 숲(鳩林)’으로 명명했는지를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영암의 지명 유래지인 월출산 구정봉에 홀연히 나타난 큰바위얼굴에 대해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연구하는 분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큰바위얼굴에 대해서는 영암인들보다는 외지 사람들이 더 관심이 많은데, 어떤 연구자는 인류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BC와 AD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세상의 영성사(靈性史)가 월출산 큰바위얼굴의 탄생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 진위를 떠나서 이 혼란한 시대를 극복하고자 하는 구도자들이 왜 큰바위얼굴을 진지하게 주목하고 있는지 우리도 한 번쯤 그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큰바위얼굴 크기는 101m이고 구정봉의 높이는 711m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머리만 산봉우리로 나와 있고 그 거인의 몸은 월출산이다. 그리고 구정봉이 월출산의 중심에 있으므로 월출산 전체가 큰바위얼굴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이 큰바위얼굴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조각품이 아니다. 하늘이 빚어놓은 하늘의 메시지, 세상의 꿈과 희망이다. 이곳이 영암이다. 

조심스럽지만, 영암과 월출산의 미래를 위해서도 장군바위와 큰바위얼굴로 혼란을 주고 있는 구정봉의 별칭에 대해서도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지명은 그 곳의 정체성이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정신이 들어있다. 

영암군에서는 1988년부터 2024년까지 36년간 세 차례의 지명유래 책자(영암의 땅이름)를 펴냈다. 

이 지명의 조사와 정리에는 영암군민 연구자 202명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구정봉을 장군바위라고 한 기록이 없다. 큰바위얼굴도 작년에서야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영암의 땅이름에 수록되었다. 

부디,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서로 이해하고 소통했으면 한다.

바야흐로, 한류의 세계화가 거세게 일고 있다. 영암의 영성과 평화정신은 한류의 옷을 입고 힘차게 나래를 펴야 한다.

비록, 그 시작점에 있지만 영암을 영암되게 하는 것, 영암을 찾아내어 영암을 영암답게 가꾸면 그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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