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138]
■ 구림마을(47)

구림마을 회사정의 가을 – 수묵담채, 140cm × 300cm /원문 백승돈 작/2001
구림마을 회사정의 가을 – 수묵담채, 140cm × 300cm /원문 백승돈 작/2001

조행립과 임호, 그리고 구림
임구령의 장남인 남호처사 구암 임호(1522~1592)가 1565년에 지었던 회사정은 정유재란(1597) 때 병화를 입어 소실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후, 태호 조행립(1580~1663)이 앞장서서 1640년에 회사정을 중건하여 다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분서(汾西) 박미(朴瀰 1592~1645)가 쓴 회사정기를 살펴보면 조행립이 과거 사람들이 건립한 것보다 더 화려하게 정자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조행립이 박미에게 일 년에 대여섯 통의 편지를 보내 기문을 지어달라고 부탁했으며, 1642년에 서울로 돌아온 후에는 손수 회사정의 본말을 기록해 기어이 회사정기를 쓰게 했다는 대목에서 조행립의 박미에 대한 존경심 뿐만 아니라 구림마을에 대한 애향심도 엿볼 수 있다. 고향마을에 대한 애착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아무튼, 태호 조행립은 본래의 터에 회사정을 다시 중건함으로써 구암 임호가 앞서서 이룩해놓았던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조행립의 회사정 시 몇 수
조행립은 국사암 곁에 있는 집에 살면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회사정을 수시로 찾아가 많은 시를 지었다. 마을 주민들과의 교류도, 지인들과의 만남도 대부분 회사정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회사정을 찾아와 시문을 남겼고, 회사정은 구림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조행립이 지은 회사정 관련 시 몇 편을 소개한다. 그의 시에는 당시의 구림과 주변 풍경을 상세히 묘사한 대목들이 많아 조선 중기 영암의 모습을 그려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회사정에서 읊다 
하늘이 경치 좋은 구림지역을 만들어
두 마을 가운데 물이 졸졸 흐흐는 시내가 있네
복숭아꽃 양쪽 언덕에 비단처럼 붉고
계수나무 돛대 강을 가로질러 감이 한가한 듯해
은적암은 천만 길이나 높고
금강사는 아득산 사이에 있네
어진이들 모두 모여 날 듯한 정자에서 취했는데
지는 해는 어느덧 반쯤 산에 걸려 있네

흥취를 풀면서 읊다(7수) 
쓸쓸한 바위 옆 서재에서 낮잠으로 혼미할째
회사정 남쪽 이랑엔 풀 향기 솔솔나네
서호에 내리는 비는 주룡강의 비와 닿아있고
동악의 구름은 가학산의 구름과 이어졌네
양쪽 언덕의 복숭아꽃은 조각조각 날리고
한 개울의 흐르는 물은 빠르게 달려가네
인생 칠십 세에 봄지 장차 저물려고 하니
돋장 맑은 술 대하여 또 반쯤 취해보세

이 정자에 둘러 있는 봉우리 과연 몇이더냐
해가 빗기니 외로운 따오기 저문 강바람 맞으며 나네
뛰어난 흥취는 안개 빛 밖에서 요동치는데
맑은 술잔을 꽃 그림자 가운데서 넘치도다
자라 등의 삼산은 아득히 멀기만 하고
난간머리의 척안은 몽롱한 데로 들어가네
아, 공자께서 어찌 나를 속이시랴
오직 거룻배가 만 리를 통한다네

각건을 쓰고 오래도록 올라가 볼 수 없었는데
오늘 높은 정자에서 뛰어난 흥취가 생기네
창이 모인 듯한 기이한 봉우리에 개인 빛이 열리고
금이 용솟음치는 바다가 바로 호수의 명성일세
흰 갈매기는 어지러이 모래 언덕을 날고
붉은 꽃받침으로 높고 낮게 옥술잔을 마주하네
취한 뒤에 한번 노래하고 한번 휘파람 부니
긴 바람 갑자기 일어나 심정이 상쾌하네

향을 묻었다는 비석이 있는 곳 바로 서호인데
그 앞에 흰 돌이고 푸는 버들이 짝을 하네
초나라 키와 오나라 돛대 잇달아 정박해 있고
모래톱에 갈매기와 물가 바위의 백로가 오가며 부르네
연기와 안개 낀 외로운 섬에서는 고깃그물 거두고
소나무 대나무가 무성한 큰 마을 술 팔기를 일삼네
벼슬을 사직하고 돌아와 이곳에 의지하니
담담한 신세 즐기기에 충분하네

평생토록 대장부라고 자부했었는데
모든 일은 비틀어도 관계하지 않음을 알겠네
곧장 시 짓는 곳으로 향하여 우주를 궁리하고
돌아와 상쾌한 마음으로 호수와 산을 내려다 보네
흰옥을 세 차례 바쳤지만 끝내 향해지기 어려웠고
황금을 백 년 동안 혼자 마음대로 보겠도다
늙어서 외진 시골에 묻혀 있음이 참으로 운명이니
단지 동이의 술 마시며 봄추위를 전송하리

만년의 계획 깊은 산중에서 이 인생 마치려는데
전원의 앞과 뒤에는 흰 구름이 평평하네
자신이 신선과 학 같아 한가하니 더욱 편안하고
마음은 서리와 대나무와 같아 지조는 더욱 곧다오
그윽한 숲의 새가 책상에 가까이 오니 참으로 즐겁고
세속의 사람이 길을 아니 이것이 놀랄만하네
흥겹게 취하여 창문 아래 누웠으니
바위 아래 찬 샘물 떨어지는 소리 밤새 들리네

<출처: 태호집/ 태호선생기념사업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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