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봉 김오준 금정면 출생 광주시인협회 회원

우리 고장 언론을 선도하는 '영암신문'은 통일신라 후기 동북아 최대 거상이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 재벌이었던 '해상왕 궁복 장보고 장군'에 대한 특집을 의욕적으로 연재해, 뜻있는 군민들과 향우들의 관심 속에 큰 각광을 받고 있다.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선암마을'이 궁복의 출생지라는 의미 있는 주장과 제기에 만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그 주장에 동조하며 차제에 우리 영암문화의 창달과 후세교육을 위해서라도 영암군과 영암문화원, 언론계, 학계가 연계된 제도적인 향토사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사실상 지금까지는 '먹고 살기도 바쁘다'는 이유로 지방의 향토사가 형식적으로 관리되거나 무관심속에 방치된 채 발굴된 기존의 자료 또한 대부분 그 근거가 희박하고 검증 없이 소개되어 안타깝고 산업화의 흐름에 편승한 태양광발전의 무분별한 개발 여파로 귀중한 향토자료와 유적지가 소실될 우려도 크다.

그 한 예로 금정면의 경우만 해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 양방매' 열사와 1909년 일제의 '전라도 대토벌 작전'때 의병들의 크고 작은 전투가 금정면 일원에서 수차례 전개 되었다는데 그 위치와 참여자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국익을 위해서는 당쟁을 초월해야 된다.'고 제기한 소론계 학자 창계 임영 선비와 수군통제사 최원립 장군, 의병장 정기 장군에 대한 조사자료도 미흡한데다 금정면에는 3개의 산성이 존재해 왜구의 침입을 방어했는데 그 기록 또한 허술한데다 위치도 정확치 않다.

즉 '남궁성산'이라고도 불리는 '활성산성'은 영암 농덕리와 금정 연소리 경계에 있는 토성으로 길이 1500m, 높이 10m의 큰 규모의 산성이라고만 간단히 기록되어 있으며 '마봉산성'은 금정면 청용리 동산마을에서 1㎞ 북쪽지점 마봉에 위치, 둘레 300m, 높이 3m만 고증되고 있다. '궁성산성'은 석성으로 세류리 기동마을에 위치, 금정과 봉황의 경계인 궁성산 정상에 위치, 임진란 때 활쏘기 훈련장인 활터, 석성으로 규모가 둘레 700m, 우물터·사장터가 있었다고만 기록되어 최소한 정확한 위치와 유적지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야 된다.

또한 영원재-영운재-여운재로 변화되어 불리고 있는 영보역참의 위치와 영보역 부근의 보동이란 동네에 있었다는 '보현원'의 위치도 궁금하다. 영보역참과 보현원은 역원제에 의한 조선시대 국도 1호선인 장성-오림-영보-별진에 이르는 '청암도'에 대한 자세한 연구와 설명으로 기의 고장 영암은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작은 고을이 아닌,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의연히 일어선 '의향 영암'이었다는 역사적 고증과 함께 후세를 위한 감동자료가 개발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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