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를 켜는 자자일촌의 ‘건강장수마을’
전직 공무원들까지 나서 마을발전에 합심
#건강장수마을 ‘망호정’

영암군 수도사업소에서 600m쯤 가서 오른쪽으로 후정, 배날리마을(망호리 2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고, 왼쪽 백용동 잔등길로 1km를 가면 역리 영신아파트 뒷길과 이어진다. 월출로를 조금 더 가서 길 양쪽이 망호정인데, 왼쪽편에 65가구가 살고 있다. 오른쪽은 망호천이 흐르고 푸른 벼 잎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들판이 펼쳐져 있다. 우회도로를 300m쯤 달리다 보면 좌측에 망호정마을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서 100여m를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마을회관이 있고 좌측에 영호사(靈湖祠)가 자리 잡고 있다. 망호정은 병조참판을 지낸 이주남이 후진교육을 했던 곳으로,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없어지고, 뒤에 있는 영호사(靈糊祠)는 고려말의 학자 이제현과 그 후손 이인걸(李仁傑)을 모신 사당이 남아있다.
이 마을에 사는 할머니는 “이곳은 경주이씨 집성촌이요. 이씨들이 자자일촌으로 살아요. 장수마을이기도 해라”라고 말한다. 이 마을 입향조는 경주이씨 25대손인 이치신(李致信)이다. 무과출신으로 명종때 선전관을 지냈으나, 1547년 정미사화로 벼슬을 버리고 경기도 고양군에서 이곳에 와 터를 잡고 살았다.
마을 뒤쪽 언덕에는 서당터가 있는데, 이곳에 지난 4월 30일 농촌체험관 월암제(月巖齊)가 세워졌다. 이상숙(75)씨는 “이곳은 1950년대까지 서당이었소. 저 앞에 보이는 산 아래에는 우물도 있소. 옛날에는 회문리 사람들도 물을 뜨러 다녔다요. 지난 7월에는 공직에서 퇴직한 이 마을 이상업 선생이 어린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기도 했지요. 군에서 많은 신경을 써 농촌체험관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주위의 도로를 정비해 준다고 합디다.”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 농촌체험관은 농협중앙회가 선정하는 ‘1사1촌 시범마을’로 마을개선자금의 지원을 받아 세워졌다고 한다.
#연꽃이 활짝 핀 꽃동네
망호정마을 앞도로의 양쪽 길가에는 백련과 홍련이 화사하게 피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마을 건너편 연꽃방죽 옆의 나무아래에 2006년 말에 세워진 호월정(湖月亭)은 마을주민들의 쉼터로 애용되고 있으며, 옆에는 게이트볼 경기장도 갖추어져 있다. 나무그늘은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고 시원한 들바람은 더위를 싹 가시게 한다. 활짝 핀 연꽃은 더없이 정겹게 느껴진다.
배날리에 사는 서부현 선생님은 교직에서 퇴직한 이후 영암이 낳은 악성 김창조선생이 만든 가야금산조의 우수성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으신 분이다. 텃밭에서 손수 가꾼 토마토와 매실차 대접을 받고 함께 이곳 호월정에 들렀다. 퇴직한 농협조합장, 우체국장, 교사 등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의 앞일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다. 서 선생님은 김창조의 가야금산조가 수록된 CD를 튼다. 들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정자에 불어오는 시원한 들바람은 옷깃을 파고든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피어있는 연꽃과 피서객들의 싱그러운 모습 속으로 산조음악의 애절한 곡조가 가야금 줄을 타고 흘러 퍼진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마을에 생기가 돕니다”라고 하니 길가에서 풀을 매는 유씨 할머니는 “모두가 이장님 덕분이지라. 그분이 마을을 위해 눈코뜰새 없이 열심히 하고 있다요.”라고 말한다. 이 마을에는 나이를 잊고 마을을 가꾸고 또 새롭게 엮어가는 젊은 청춘이 있다. 전직 농협장, 전직 우체국장, 전직 선생님 등이 마을 이장과 함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고향을 떠난 출향인, 이제는 퇴직하여 새로운 삶을 꿈꾸는 자. 그 열정을 자신이 태어난 고향의 발전을 위해 불태우면 어떨까?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영암읍 명예기자=최기홍
영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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