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환 (영암읍 동무리)


‘산성대(山城臺)’ 자락을 매일 등산을 하면서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월출제일관(月出第一關)”이다.

그곳은 ‘산성대’ 등산로 제4봉에서(등산인들이 편의상 부르는) 약 150m쯤 오르는 지점에 가파른 암벽이 나타나는데 우측 바위에 자세히 살펴보면 가로 20cm, 세로 90cm, 깊이 1cm 정도 깍은 다음, 음각으로 “月出第一關”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좌측에 “松隱”이라는 글자도 나란히 음각되어 있다.

음각 되어 있는 글자에서 1m 좌측에 일직선(130cm)으로 바위 상단부와 하단부에 홈이 파여 있고, 2m50cm 건너편 암벽에도 홈이 파여 있어 하단부 홈끼리 연결하여 빗장(차단 목)을 걸어둘 수 있게 되어 있는데<사진 참조>, 상단부에 파여 있는 홈은 어디에 연결되는지 건너편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이곳 암벽에 한사람이 앉아 있을 만한 면적을 평평하게 깎아 놓아 빗장을 걸어두고 누군가가 망을 보고 있었을 것으로 상상해 본다.

그런데, 이 글자는 누가 언제 무엇 때문에 새겨 넣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월출제일관’이란 월출산을 오르는 제일 관문이란 뜻이고, 그 옛날 군사적 요충지로써 빗장을 걸어두고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송은’이라는 두 글자는 이 글을 새긴 사람(?)의 아호가 아니었을까 추측도 해본다. 아무튼, 이것은 월출산에 남겨진 선조들의 훌륭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영암 사람들의 건강과 폐활량을 늘려주는 ‘산성대’ 등산로는 실내체육관에서 출발 ‘산성대’ 초입 ‘입산금지’ 간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좌측은 능선 코스요, 우측은 시누대 밭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는 숲길코스다. 지금이야 두 갈래로 4봉까지 오를 수 있지만 전에는 계곡을 따라 오르는 우측 길 밖에는 없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따라서 생활 방식이 지금과 다른 옛날에는 땔감의 수송로가 되었고, 군사 요충지로써 병사들의 보급로가 되었으며, 봉화를 올리기 위해 올라갔던 길이요, 빨래터로 가는 길목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월출제일관”을 통하지 않고는 ‘산성대’에 오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산 아래쪽을 면밀히 관찰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산성대’를 사수하는 천혜의 관문으로 생각된다. 바라건대, 등산을 하시다가 ‘산성대’를 오를 때 한번쯤 관심을 가지고 이곳을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독자께서 이 글을 읽고 “월출제일관”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계신다면 여러 사람이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지상을 통해 발표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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