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팔아 생계유지했던 점등마을 사람들의 애환
옹기쟁이들 돈벌이 나서 영암5일장·신안 등지로

쓰레기매립장 뒤의 언덕은 동남쪽의 역리 뒷산에서 이어져 내려와서 매립장 오른쪽까지 이어져 있다. 이 언덕의 끝 쪽을 용왕등이라고 부르고 조금 못미쳐 매립장 왼쪽 등성이를 점등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옹기를 만들었던 곳이다. 쓰레기매립장 좌측의 길로 300m를 올라가면 3~4가구가 살고 있다. 이 마을은 한때 25~6가구가 살면서 옹기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서부현 선생은 “옹기를 굽기 위해서 우선 가마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비용이 없어서 전주(錢主)를 물색했어. 이 전주가 일정한 돈을 대서 가마를 만들어 옹기를 굽고 빌린 돈에 배 삯까지 쳐서 옹기로 값(도매 값)을 치루면, 전주는 용왕등 앞에서 옹기를 배에 싣고 신안 등지로 가서 팔았지”라며 점등마을 주민들의 애환을 들려준다. 전주는 재미(돈벌이)를 보고 주민들은 고생만 했던 것이다. 이들은 무거운 옹기를 머리에 이고 또는 등에 지고 영암5일장 등의 옹기전에 가지고 가 팔기도 했다.
점등 아래 쓰레기매립장 앞의 하천은 단오바탕이라고 하는데, 영암사람들은 뱀밭에(배받터)라고 부른다. 1950년대까지도 이곳에 배가 들어와서 정박(받쳐놓다)해서 붙인 이름인 듯 하다. 영암사람들은 단오날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찾아와서 놀았다. 특히 이곳 물은 해창만에서 들어오는 바닷물과 덕진천의 민물이 만나는 곳으로, 신경통 등 통증을 낫게 한다고 해서 아낙네들이 많이 몰려와 모래찜을 하던 명소(名所)였다.
부춘정이 있는 후정·배날리마을
영암군수도사업소에서 우회로(월출로)를 300m쯤 가면 후정·배날리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월출로 근처에 있는 마을이 후정이다. 이 마을은 25가구가 살고 있다.
후정·배날리길을 300m쯤 들어가면 우측에 우산각이 있고 그 뒤에 망호리2구 마을회관이 있다. 마을회관 부근마을을 새터라고 부르고 왼쪽 앞에 있는 배날리와 합쳐서 30가구정도 살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150m를 더 가서 오른쪽으로 난 길은 수도사업소 뒤의 둑길과 이어진다. 서부현 선생은 “예전에는 하천이 수도사업소 뒤쪽에서 이 길로 와서 흐르다 앞에 보이는 부춘봉의 오른쪽을 감싸고 돌아서 흘렀어. 오른쪽으로 난 길의 우측 언덕에는 일제시대에 정미소가 있었는데, 일본사람들이 전남지역의 9개 군에서 벼를 가져와 정미를 하여 배에 실어 목포로 가져갔던 곳이여. 하천이 지나는 부춘봉은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어린이들이 나무위에서 다이빙을 하고 놀기도 했지.”라며 옛 추억을 들려준다.
부춘봉에는 월출산 동쪽을 향하여 세워진 부춘정(富春亭)이 있다. 강진에서 영암으로 이주해온 진주강씨(입향조: 강달영) 문중에서 1618년 건립하여 몇 차례 중수하였다. 지금 이곳은 보수정비사업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은 구조가 한국의 전통건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귀성을 가지고 있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마을 김씨(72)는 “배날리 출신으로 외지에 나가 자수성가한 강병연씨가 부춘봉 근처에 미술관을 짓고 싶어하는데, 그 꿈이 이루어져 2구마을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소”라고 말한다.
하천(영암천)에 쉼터도 만들어 놓고 정비를 하면, 이곳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텐데··· 버려져 있는 것이 아깝다. 객지에서 고향을 찾아오는 자 또는 타향인이라고 할지라도 정착하여 꿈을 펼치려는 자를 관과 민이 따뜻하게 맞아주고 함께 어울려 살아갈 때 영암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영암읍 명예기자=최기홍
영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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