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문씨 대동계 회계장부 ‘용하기’ 국보급 사료
남자들은 일찍 세상 떠나고 홀로 된 할머니 많아

 

         바보처럼 사는 아주머니

버드나무 옆 논길에서 아주머니가 바구니를 들고 와 논둑가에 앉는다. 바구니에는 콩순이 들어있다.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들은 논둑에 제초제를 뿌리고는 잡곡들을 심는다요. 그런데 나는 이렇게 풀을 헤집고 그냥 심어요. 바보 같죠? 나는 이렇게 갑갑하게 살고 있어요.” 그녀는 밭에 온갖 채소를 골고루 심어 놓았다고 한다. 물론 농약이나 제초제는 전혀 하지 않는다. “바보 같은 농법이지요”라며 혼자 되뇌인다. 그녀는 이렇게 사는 농촌의 삶이 좋다고 한다. 선 볼 때 남자 쪽에서 “장남인데,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셔야하고 가진 것은 오두막 한 채 밖에는 없어요”라고 했는데, 그 모습이 매력이 있어 보여 결혼했다고 한다. 정말 바보(?)같은 아주머니다. 걸음을 장암정으로 돌렸다.

 

장암 사거리 우측 무덕정길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장암정이 있고, 뒤에는 ‘마당바우마을사랑’이라는 마을복지회관이 있다. 입구에는 ‘마당바우’라고 쓰인 큰 돌이 정겹게 맞이 한다. 이 표지석은 일본에 거주하는 문영만씨가 고향에 희사해 세워졌다고 한다. 회관 뒤에는 거북바위 동산과 장암2구 마을회관이 이어져 있다. 거북바위 동산을 중심으로 부근에 바위가 깔려 있어 ‘반석정’(盤石亭)이라 부르고 마당에도 넓게 바위가 있어서 ‘마당바위’(우)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한자로 마당 장(場), 바위 암(巖)자를 써서 ‘장암’이라고 불린다. 동산 바로 앞에는 고풍스런 구암사(龜巖祠)가 자리하고 있는데, 1668년 건립된 영암의 대표적 향사우로 원래는 이후백과 문익주를 제향하다 서명백을 추배하여 삼현사(三賢祠)로 불렸다.

 

장암정(場巖亭)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동약(계)의 집회소인데, 특히 동계자료는 조선 중기 이후 경제사 연구의 국보급 사료로 평가받아 주목을 받고 있다. 즉 남평문씨 대동계 회계장부인 ‘용하기’는 국내에선 가장 오래된 복식부기 장부로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고 한다.


          모내기철엔 물싸움도      

무덕정마을은 원래 대추나무가 많아서 대추동으로 불렸다. 장암정 뒤의 무덕정길을 따라 100여m를 가다보니 정자 옆에 기품 있게 솟은 소나무가 3~4그루가 있고 양 옆으로 기와집이 눈에 띈다. 모심기를 마치고 물이 찬 논에 비치는 소나무 그림자는 주변의 운치를 더한다. 오른편 건물은 애송재(愛松齋)인데 빛이 바랜 모습은 고풍스런 맛을 풍긴다. 왼쪽 애송당(愛松堂)은 문익현이 살았던 집으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49호로 230년 이상된 건물이다.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가옥으로 지금은 후손 문창집씨가 거주하며 관리하고 있다.

 

장암 2구 마을회관 앞 정자에 할머니가 앉아서 쉬고 계신다. 나주에서 시집왔다는 이씨 할머니는 “이곳은 율산마을을 포함해서 12동네가 산다요. 지금은 여기저기 헐리고 빈집도 천지요.”라며 한숨짓는다. “물은 산중턱에 관을 연결해서 쓰는데 부족해서 앞으로는 탐진댐 물을 연결하는 공사를 한답디다.” “옛날 이맘때는 서로 먼저 논에 물을 대려고 때론 고함을 치며 싸우기도 했지라.”하며 지금은 물사정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런디 개천물은 예전같이 맑지가 못하당께라. 그때는 개울물에서 야채도 씻고 그 물로 밥도 해 먹을 정도로 아주 깨끗했는디, 이제는 하수도 물이 흘러내려 더러워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요.”라며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어째 그란지 모르것는디 남자들은 대개 일찍 세상을 뜹디다. 그래서 홀로 된 할머니가 많이 있단 말이요”라며 안타까워한다.

 

장암 사거리에서 150m쯤 가면 선황정 삼거리가 나온다. 계속가면 금정가는 길과 만나고 우측 농로를 따라가면 800여m거리에 율산마을이 있다. 선황정마을은 지형이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피리부는 형국이라 하여 신선 선(仙), 대숲 황(篁)자를 써서 선황정(仙篁亭)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때에는 역(驛)이 있었다.

 

장암마을도 지금 농사일에 한창 바쁘다. 모심기가 끝난 논은 연두빛 실크천을 대지에 펼쳐 놓은 것 같다. 더없이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이다.  /영암읍 명예기자=최기홍

장암마을 한 복판에 세워진 ‘마당바우’ 표지석이 정겹게 느껴진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장암정 그리고 애송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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