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만이 정적을 깨6·25의 상흔…불 탄 마을, 고향 떠나

 

         #찔레꽃 향기 그윽한 상촌계곡

▶영암읍 한대리 상촌마을
한대리 상촌마을은 평촌마을의 산기슭 위쪽에 있다고 해서 위 상(上), 마을 촌(村)의 이름을 따 ‘상촌’이라 부른다. 평촌마을을 지나 남쪽으로 하천을 따라 400m쯤 가면 둔덕양수장이 나온다. 양수장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각동마을로 가고 왼쪽길 300m 앞에 상촌마을이 있다. 집은 7~8채가 있으나 현재는 4가구가 마을을 유지하고 있다.


부부가 논에 비료를 주고 있다. 아내는 한대리 부녀회장이라고 한다. 부녀회장은 “상촌마을 위쪽 계곡은 시원하고 물은 차가워서 그런지 피서철이면 외지에서 온 자동차가 100대 이상은 올라 갑디다. 풀장시설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마을을 지나 1Km쯤 가면 ‘가든전원생활’이라는 음식점이 나온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푸르름이 짙어가는 나뭇잎과 흘러내리는 물은 화창하게 비치는 햇볕을 받고 눈부시게 반짝인다.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만이 숲속의 정적을 깬다. 물가에는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는 향기에 취할 것 같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낭주최씨 제각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강진군 옴천면 신월마을(신월재)로 이어진다.


저 멀리 신월재 가는 길가에 차가 있고 주위에 몇 사람이 앉아 있다. 깊은 산 속에서 사람을 보니 기쁜 마음이 들어 걸음을 서둘렀다. 목포에서 왔다고 한다. 옴천면 쪽에서 넘어왔는데 길은 험하지만, 경치는 너무 좋았다고 몇 번이나 말한다.


내려오는 도중에 보니 길가에 여기저기 깨진 술병과 과자봉지 등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버려진 양심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구름도 쉬어가는 각동마을

▶영암읍 한대리 각동마을
각동(角洞)마을로 들어섰다. 평촌의 서북쪽 활성산 아랫마을로, 뒷산의 모습이 소뿔의 형상이라 해서 그렇게 불려진다고 한다. 둔덕양수장에서 우측으로 500여m를 올라가면 각동길의 팻말이 보인다. 직진하면 농덕리 둔덕마을로 갈 수 있는데, 길이 험하다. 우측으로 150m를 올라가면 산중턱에 각동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도 4가구가 살고 있다. 곳곳에 빈집이 눈에 띈다. 마을 앞 산계곡 사이로 멀리 평촌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에 사는 박씨 할머니(83)는 17세 때 장흥 유치에서 시집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시집올 무렵에는 이 마을에 30여 가구가 살고 있었어. 그런데 6·25사변이 나서 밤이면 반란군(빨치산)이 ‘밥을 해주라,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그렇게 했제. 그런데 낮에 경찰들이 찾아와서 반란군을 도와주었다고 죽인다고 하지 뭐여? 낮이면 경찰이 무섭고, 밤이면 반란군이 무서웠제. 그란디 어느 날, 산 속에 들어가서 숨어 있었디 온 마을이 불에 타버렸어. 동네사람들은 평촌·둔덕리, 그라고 영암읍내 등 아는 사람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어. 나는 난리가 끝난 뒤에 그래도 고향이라고 다시 이곳에 들어와서 새로 집을 짓고 살게 되었지라이.”라고 하신다.


할머니는 “마을에 논밭이 없어 아랫동네로 내려가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농사일 뿐만 아니라 오르내리기도 힘이 든다”고 한다. 이제는 무릎이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한다면서 파스가 덕지덕지 붙은 무릎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는 아예 일을 할 수가 없으시고 누워계신다고 한다.


광대골, 내촌, 섭적골, 서당골 등의 마을은 6·25 난리통에 없어져 버렸다. 산 속에 사는 순박한 사람들이 이념의 격랑에 휩쓸려 생명을 잃고, 생활의 터전마저 잃은 채 살아남은 자들은 고향을 잃고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6월은 찾아왔다. 우리민족은 아직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다. 58년 전의 아픔이 서로 서로에게 사랑과 용서로 치유되기를 바라며··· 민족이 하나 되는 희망찬 내일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영암읍 명예기자=최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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