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규 용 / 덕진면 영보리
이때에 문중은 문중대로 마을은 마을대로 봄부터 복까지 고달픈 심신을 보호하고 다음일을 위해서 복날 잔치를 하고,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추수목영까지의 영농설계를 하며 즐겨 노는 날이다. 우리 전주최씨 문중에서는 낙남 연촌선조가 오신지 600여년이 지났지만 문중행사로 매년 복달음을 한다. 기록으로는 복달음 한 기록이 200여년전부터 였지만 아마도 그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문토 1천여평이 복회답으로 정해져 매년 거기서 나온 수확으로 복회잔치를 하곤했다.
초복과 말복 그러다 행사를 하다보니 초복은 장마와 겹쳐 여간 어려움이 있어 中年에 초복행사를 약하고 말복으로 통일했다. 또한 문중 임시총회일로 정했다. 정초부터 6월말일까지 행하여진 문중에 중간보고도 있고 해서 80년대초, 지금부터 20여년전부터는 복달음행사의 목적이 일종의 양로(養老)행사인데 60년대부터 출향한 2세들이 힘들게 노력한 결과 밥은 먹게 됐다 해서 말복날 노인들을 대접하겠노라는 특지 종인들이 생겨나 80년대 초부터는 2백만원씩 들여 복달음 비용을 자부담해가면서 행사를 하고 있다.
금년에는 서울에 계신 미암출신 종인께서 요즘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도 2백여만원을 들여 수박이며 맥주, 소주 등 음식을 장만해 행사를 가졌다. 서울이며 충청도, 전북의 방방곡곡에서 2백여명이 모인 올해 복달음은 진실로 고향사랑운동이며 경노효친 정신이다. 음식들기 전 학교장 출신의 일가께서 연촌선조에 대한 특강은 종인들에게 매우 의의있는 대목이었다.
행사를 끝내면서 우리 조상들이 이같은 미풍양속을 후대에 물려준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영암신문
yanews2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