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조·신·박씨 문중 6방자리 독점정유재란 때 왜군과 혈전, 향교 자리 옮겨

 

지난번 총괄 편에서 다룬 영암읍 성안의 지도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주요 건물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소상히 밝힐 것을 요구해왔다.
따라서 이번호는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 지도를 알아보기 쉽게 별도로 작성, 설명을 곁들였다. 지도와 대조해 가면서 읽었으면 한다.<편집자 주>


▲조선시대 영암성내 주요관공서 및 건물
東軒(동헌) : 고을 원님이 직무를 보던 곳. 예방, 이방, 호방, 공방, 형방, 병방 등 6방의 장들은 이곳에서 고을 원님을 보좌하여 우리 영암 주민들의 복지증진에 힘썼다. 6방의 장은 학덕이 높았던 창녕 조씨의 조이방네, 진양 하씨의 하호방네, 평산 신씨의 신이방네, 밀양 박씨의 박이방네 등 김·하·조·신·박씨의 문중에서 6방의 자리를 독점하였다.
주민 중에서 부유하게 살면서도 탈세를 하는 자는 월출산의 엄나무(가시투성이의 나무)가지로 엮은 방석을 만들어 놓고 그 가시 방석 위에 꿇어앉히겠다고 협박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떻든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한 손에 틀어쥔 고을 원님은 막강한 권력으로 고을 주민을 다스렸다.

內獅(내사) : 고을 원님의 가족이 살던 안집. 요즘으로 치면 군수 관사 정도가 되겠다.

官廳(관청) : 고을 수령의 음식을 장만했던 곳이다. 이곳은 지금의 영암교육청이 관리하고 있는 공공도서관 자리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6.25 한국전쟁 전까지는 군수 관사로 쓰였으나 6.25때 소실되었다.

作廳(작청) : 지방 관서에 근무하던 아전이 직무를 보던 처소. 아전이란 조선시대의 하위직 관리를 일컫는 말이다.

將廳(장청) : 관아의 감영에 딸린 장교들이 집무하던 처소이다.

鄕廳(향청) : 향청의 우두머리인 좌수나 이에 버금가는 지위에 있던 별감이 일을 보살피던 처소이다.

司倉(사창) :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리는 주민에게 빌려 주기 위한 곡식을 저장해 두었던 창고이다.

職倉(직창) : 관아에서 썼던 창고이다.

鄕司(향사) : 시골 선비와 지방 유지들이 모여 고을 원님에게 자문 했던 곳.

訓練廳(훈련청) : 장병들이 군사 훈련을 연마했던 곳.

客舍(객사) : 관리 신분의 손님이 머물던 곳.

對月樓(대월루) : 2층으로 된 누각.

軍窯(군요) : 장병들의 밥을 지었던 가마솥이 있던 곳.

蓮池(연지) : 연꽃이 심어진 아름답던 연못. 현재 새마을금고와 군청 정문 앞의 주차장 일대에 걸쳐서 있었다.

獄(옥) : 감옥, 현재 영암읍 5거리에서 영암읍사무소로 넘어가는 길목(열무정 부근)에 있었다. 이곳 언덕길을 옥고사태(고샅:골목의 옛말)라 부르기도 했다.

鄕校(향교) : 조선시대 유학을 가르쳤던 오늘날의 학교로, 공자님을 위시하여 우리나라 18현을 모시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지금의 역리 3구의 古鄕校(괴생계) 자리(전 최사섭씨 집터 부근)에 있었으나 1555년 을묘왜변 때 이 향교를 보루로 왜군과 혈전 끝에 병사, 유생, 민간인이 무수히 전사하였다. 그 시신이 산을 이루고 썩은 냄새가 지독하여 어쩔 수 없이 교동리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계속> /영암신문 명예기자단 자문위원=조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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