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201]
■ 구림마을(111)

신흥동마을 어란연구사무실에서 직접 제조한 어란을 들여다보고 있는 최태근 어란 명장. 그는 (사)대한민국전통명장협회로부터 2016년 ‘대한민국 어란 전통명장’으로 선정되었다.
신흥동마을 어란연구사무실에서 직접 제조한 어란을 들여다보고 있는 최태근 어란 명장. 그는 (사)대한민국전통명장협회로부터 2016년 ‘대한민국 어란 전통명장’으로 선정되었다.
최태근 명장의 집 마당 장독대 항아리에 보관된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씨간장. 250년이 넘었다고 한다.
최태근 명장의 집 마당 장독대 항아리에 보관된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씨간장. 250년이 넘었다고 한다.
어란의 색깔 변화가 이채롭다. 처음에는 연홍색이었다가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작은 것은 3개월 부터 큰 것은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어란의 색깔 변화가 이채롭다. 처음에는 연홍색이었다가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작은 것은 3개월 부터 큰 것은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어란’은 숭어 알집을 깨끗한 물로 잘 씻어 갈무리한 다음 염장(소금에 절임) 후 간장으로 색과 맛을 내고, 참기름을 바르며 장기간 건조·압착하는 고도의 수작업 과정을 거친다. 고소하고 깊은 감칠맛, 쫄깃하고 차진 식감, 고단백, 고영양 식품으로 귀하게 여겨진다. 대한민국 수산식품 명인 1호(어란 제조부문)로 지정된 김광자 명인(1999년 지정)을 비롯해 현재는 그 전통을 이어받은 명장들이 명맥을 잇고 있다. 

조선시대 궁중 진상품, 영암 어란
영암 어란은 영암 지역의 전통 특산물로, 조선 시대부터 궁중 진상품으로 바쳐졌던 귀한 음식이며, 현재까지도 전통 방식 그대로 제조되는 명품 수산 전통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영암 어란의 주재료는 산란 직전의 참숭어 알집(숭어 중에서도 알이 크고 지방이 풍부한 4~5년생 암숭어의 알을 최고로 침)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3대 진미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유명했다. 

수백 번의 손길과 정성이 깃든 음식
영암 어란은 기계화가 불가능하며, 수백 번의 손길과 오랜 시간의 정성이 필요한 음식이다. 성질 급한 사람은 만들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까다로운 공정을 거친다. 4월 중하순, 영암·해남 남해안에서 잡은 산란 직전의 참숭어를 사용한다. 배를 갈라 알집(난소)을 통째로 꺼낸다. 이때 알집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알집을 소금물에 5~6시간 담가 핏물과 이물질을 제거하는 염지(鹽漬) 작업을 한다. 

조선 간장을 푼 소금물에 하루(24시간) 동안 담가 간을 배게 하고 은은한 갈색빛을 낸다. 건조판 위에서 두께 약 1.2cm 정도로 가압하여 모양을 잡아주는 정형 과정을 거친다. 이때부터 20일에서 길게는 석 달 가까이, 햇볕이 너무 강하지 않은 곳에서 음건(陰乾) 한다. 하루에 1~2회씩 겉면에 참기름을 얇게 바르고 마르면 다시 바르는 작업을 반복한다. 참기름을 바르는 것은 알의 표면이 갈라지는 것을 막고, 특유의 향미를 더하며, 알을 단단하고 차진 식감으로 만들어주는 핵심 기술이다. 건조 과정 중에는 어란이 일정하게 마르도록 손으로 눌러주거나, 무거운 돌로 누르는 압착 과정을 수시로 거쳐야 모양과 식감이 완성된다.

영암 어란은 비싸고 귀한 음식인 만큼 얇게 썰어 먹는 것이 정석이다. 고단백이며, DHA 등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여 영양가가 높다. 1.5~2mm 두께로 얇게 썰어 먹는다. 썰 때 칼을 살짝 달구면 참기름이 녹아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술안주(특히 전통주), 밥반찬, 혹은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별미로 사용된다. 영암 어란은 그 자체로 역사의 깊이와 장인의 정성을 담고 있는 한국의 최고급 전통 수산식품이다.

영암 어란의 명맥을 잇는 최태근 명장
영암 어란의 명맥을 잇고 있는 군서면 신흥동마을 최태근 명장을 만났다.

2025년 대한민국 수산식품 명인 지정에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태근 어란 명장님의 특별한 제조 방법이 있으면 알려 주십시오.

“기본 조건은 물과 바람과 햇볕이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다 이곳 영암은 황토가 많아서 그 성분이 갯벌에 흘러 들어가 미네랄이 풍부합니다. 갯벌이 기름지고 영양분이 많아서 숭어의 먹이감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숭어 맛이 찰지고 기름져서 예부터 영암 숭어를 알아줬고 이 숭어알로 만든 어란이 궁중에 진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암에 갯벌이 없어져서 숭어를 어떻게 조달합니까?

“지금은 낚시로 잡아 옵니다. 낚시 바늘을 챙기고 갯벌에 가서 숭어가 좋아하는 갯지렁이도 직접 잡아서 미끼로 사용합니다. 4월과 5월 사이가 성수기입니다. 그리고 어란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콩을 재배해서 메주를 띄어 간장을 만들어야 하지요. 우리 집에는 250년 묵은 ‘씨 간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찹쌀을 재배해서 누룩을 만들어 전통주를 제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술을 15일 이상 숙성시킨 후 맑은 청주에 숭어알을 담궈 비린내를 없앱니다. 그리고 토판염을 이용하여 염장을 합니다. 작은 것은 3개월, 큰 것은 6개월 걸입니다. 

건조 과정에서 계속 참기름을 발라줍니다. 건조할 때도 오전 볕에 널었다가 햇볕이 강할 때는 그늘에 들여놓습니다. 또 오후 3시 넘어 햇볕이 약해졌을 때 다시 햇볕에 말립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습도 조절입니다. 여름철에는 습도가 높기 때문에 방안에 들여와서 불을 때서 공기를 건조하게 유지시킵니다. 어란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수백 번의 손길이 필요하지요. 먹을 때는 얇게 썰어서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2025년 대한민국 수산식품 명인 지정 신청 결과를 물었더니 한참 후에 발표된다고 한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하면서 ‘어란 명장’ 집을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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