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 소나무 숲 사이로 펼쳐진 꽃무릇 군락. 지금 회사정은 사방이 온통 꽃무릇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구림마을 탐방객들이 꽃무릇의 향연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이번 주말이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 사이로 펼쳐진 꽃무릇 군락. 지금 회사정은 사방이 온통 꽃무릇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구림마을 탐방객들이 꽃무릇의 향연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이번 주말이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회사정의 가을 명물, 꽃무릇
회사정은 조선 중기 1564년 구암 임호가 창건했으며,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7년 왜적들의 방화에 의해서 소실되었다가 태호 조행립이 구림마을 주민들과 함께 1640년경에 중건하였다. 이후 회사정은 구림마을 대동계의 종회장소와 손님들 접대 장소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화합과 친목을 다지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병화를 입어 소실되었다가 1985년에 복원된 파란만장한 사연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호남의 8대 정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성을 얻고 있다.
당초 회사정은 울창한 솔숲으로 유명했으나 2014년에 당시 박종대 군서면장이 회사정 뜰에 꽃무릇을 대량 식재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 영암에서는 회사정 꽃무릇 군락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해가 갈수록 유명세가 더해지고 있다.  
꽃무릇은 9월에 피는 꽃으로 6월에 피는 상사화와는 다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꽃무릇과 상사화를 같은 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꽃무릇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꽃무릇(석산, Red Spider Lily)이란? 
수선화과(Amaryllidaceae) 상사화속(Lycoris)의 여러해 살이 풀로 학명은 Lycoris radiata (L'Her.) Herb이다. 'Lycoris'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여신 '리코리스(Lycoris)'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radiata'는 '방사형으로 퍼지는'을 의미한다.
꽃무릇은 석산(石蒜, 돌 틈에서 나온 마늘 모양 뿌리라는 뜻)으로 불리며, 그 외에도 피안화(彼岸花, 저 세상의 꽃), 붉은 거미 백합(Red Spider Lily), 상사화(相思花,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특성에서 유래), 용각(龍角), 지옥화(地獄花), 일본어 히간바나(彼岸花), 불교 용어에서 온 만주사화(曼珠沙華) 등 매우 많은 이름이 있다. 일본·중국·한국에 자생·귀화하여 가을의 상징 꽃으로 알려져 있다. 

특이한 생태적 특성
늦여름부터 초가을(주로 9월)에 걸쳐 잎이 없는 꽃대(화경)가 올라와 붉은 꽃이 핀다. 꽃은 6개의 뒤로 젖혀진 꽃잎(화피편)과 꽃잎보다 훨씬 길게 밖으로 뻗어 나온 수술을 가지고 있어 마치 거미 다리처럼 독특한 모습이다. 한반도에서 보통 9월 초가을 큰비가 내린 뒤 일시에 올라온다. 잎 없이 매끈한 꽃대(scape)가 먼저 올라와 산형(우산) 꽃차례로 4~7개의 선홍색 꽃을 달고, 길게 뻗는 수술이 거미 다리처럼 퍼진다. 꽃이 진 뒤(10월경) 겨울 내내 회녹색 잎이 나와 월동하고 이듬해 봄에 시든다. 일본 등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계통은 삼배체(3배체) 불임이 많아 종자로 거의 번식하지 않고 비늘줄기(구근) 분주로 번식한다.
꽃이 완전히 시들어 떨어진 후에야 비로소 짙은 녹색의 잎이 돋아나 겨울을 나고 이듬해 초여름에 시든다. 이처럼 꽃과 잎이 평생 서로 만나지 못하는 특성 때문에 '상사화'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상사화'라고 하면 개화 시기가 꽃무릇보다 빠른 Lycoris squamigera를 지칭한다.
알뿌리(비늘줄기)를 포함한 식물 전체에 리코린(lycorine) 등의 독성 알칼로이드 성분이 있어 섭취 시 구토, 신경 마비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약용으로서 가치도 높아
꽃무릇의 알뿌리는 독성이 강하지만, 동시에 약재로 사용되어 왔다. 주요 알칼로이드 성분 중 하나인 ‘갈란타민(galantamine)’은 현대 의학에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사용이 승인되어 중국 등지에서 추출을 위해 재배되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알뿌리를 말려 ‘석산(石蒜)’이라는 약재로 사용하며, 거담(가래를 없앰), 해독, 소종(종기 치료), 이뇨 등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기침, 임파선염, 종기 치료 등에 이용되었다. 
다만, 독성이 있어 전문가의 처방 하에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구근에 리코린(lycorine) 등 아마릴리스 알칼로이드가 있어 섭취 시 구토·설사·복통 등의 중독 증상이 날 수 있다. 특히 어린이·반려동물의 접근 주의가 필요하다. 
꽃무릇은 이러한 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쥐나 해충이 기피하여 예로부터 쌀 창고 주변이나 논밭 근처, 심지어는 무덤 주변에 심어 해충의 침입을 막는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꽃무릇은 그 애절한 생태적 특성 때문에 동양에서 많은 설화와 전설을 낳았다.

만주사화(曼珠沙華) 전설
꽃의 요정인 ‘만주(曼珠)’와 잎의 요정인 ‘사화(沙華)’가 있었는데, 그들은 신의 명령에 따라 서로를 보지 못한 채 꽃과 잎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서로를 몹시 그리워한 나머지 명령을 어기고 한 번 만나게 되었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이에 분노한 신은 그들을 영원히 만나지 못하도록 벌을 내렸다. 그래서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나올 때는 꽃이 지는 영원한 이별의 숙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꽃무릇은 '서로를 그리워하는 꽃'이라는 뜻의 상사화(相思花)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등은 대표적 군락지로 승려와 처녀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이 꽃무릇으로 피어났다는 애연(哀戀) 설화가 지역 안내문에 실려 있다.

피안화(彼岸花) 설
불교에서 유래한 설화로 꽃무릇은 '피안(彼岸)', 즉 깨달음의 세계로 건너가는 강(삼도천)가에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며, 이 꽃을 보면 전생의 기억을 모두 잊게 된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꽃무릇은 이처럼 강렬한 아름다움 뒤에 이별과 상실의 애잔한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동양 문화에서 생과 사, 윤회의 경계를 상징하는 신비로운 꽃으로 깊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꽃무릇은 선홍색, 상사화는 연분홍(혹은 연보랏빛) 색깔이다. 상사화는 보통 7~8월, 꽃무릇은 9월에 핀다. 상사화가 꽃무릇보다 잎과 꽃의 크기가 훨씬 크다. 둘 다 ‘잎·꽃 동시 부재’이지만, 꽃무릇은 ‘꽃 먼저, 잎 나중(가을~겨울)’이 특히 분명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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