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 농협의 개혁 현장을 여러 차례 직접 목격했다. 처음 일본의 지역농협 사무실을 찾았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우리에는 없는 것이 일본에는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는 커다란 농협 건물, 화려한 간판, 수십 명의 사무직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간소한 사무실과 소박한 건물, 그리고 농산물 직매장과 복지시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일본 농협은 위기 앞에서 먼저 몸집부터 줄였다. 1990년대 3,000여 개이던 지역농협이 이제 470여 개로 줄었다. 도도부현 단위의 통합이 진행되면서 사무·관리 인력과 건물 유지비를 과감히 줄이고, 남은 자원을 조합원과 지역을 위해 쓰도록 한 것이다. 가나가와현 하다노시 농협은 폐쇄한 지점을 노인복지센터로, 또 다른 건물은 직매장으로 바꾸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본 파머스마켓 ‘하코네야마’는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 거래하는 장터였다. 판매 수익은 다시 노인복지센터 운영비와 장애인 직업훈련비로 쓰였다.
또, 농협이 운영하는 어린이 농업체험학교에서는 도시의 아이들이 모내기와 수확을 배우며, 땀 흘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농업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려는 진심이 느껴졌다.
유통 부문에서도 변화는 뚜렷했다. 일본 전국농협(JA전농)은 비료, 농약, 농기계를 공동구매해 농가 부담을 줄였고, ‘미야기 쌀’ 같은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 해외 수출까지 확대했다.
미야기현에서는 덕분에 농가당 연평균 소득이 15%나 늘었다고 했다. 금융 부문에서도 일본 농림중앙금고는 고위험 해외 투자 비중을 줄이고, 농업 관련 융자와 설비투자로 방향을 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우리 농협을 떠올렸다. 한국의 농가 수는 약 100만 호,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역농협 수는 1,100여 개로 일본의 476개 보다 두 배나 많다.
더구나 많은 농협이 농업보다 금융업에 의존하고, 조합원보다 준 조합원 비율이 높은 곳도 적지 않다. 본래 농민의 소득을 높이고 농업을 지키는 것이 농협의 존재 이유인데, 지금 우리는 그 길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농협조직의 여러 단위에서 종합건물의 신축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농촌의 인구는 감소와 조합원의 수가 감소하지만, 조합원의 편익제공을 위해 농협들의 업무용 건물 신축, 대형직매장 시설 등 대형시설 붐이 일고 있다. 농어민 조합원들은 조합원 개인의 부담 없이 편리하고 안락한 종합시설의 신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군청 소재지의 읍 단위에 동쪽은 농협의 고층 종합건물, 서쪽에는 축협의 고층 종합건물이 들어서 있는 읍 소재지가 많이 있다. 농협중앙회 같은 소속 회원농협끼리 서로 경쟁하면서 영업을 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과연 협동조합적인지 의문이 든다.
일본 농협의 개혁은 ‘줄이는 것’에서 시작해 ‘바꾸는 것’으로 나아갔다. 몸집은 가볍게, 기능은 지역에 맞게, 수익은 다시 농민과 공동체로 환원하는 구조였다. 위기 속에서도 농협이 농협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나는 그 현장에서 배웠다. 농협이 살아남는 길은 결국 조합원과 지역주민의 신뢰 속에 있다는 것을.
이제, 한국 농협도 변해야 한다. 일본이 보여준 길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장의 관성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농촌공동체를 만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일본에서 배운 교훈이고, 우리 농협에 전하고 싶은 진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