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 문         영암읍 역리  전 영암재향경우회장
박 정 문  영암읍 역리  전 영암재향경우회장

 기억 속에 사라져간 우리 조상님들의 농사 짓던 시골 풍경이 오늘날 우리 농촌의 기계화 영농으로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린 그때 그 시절 기억들을 뒤돌아봅니다

70년대 이전의 농사 짓는 데는 소와 쟁기가 제일 중요할 필수 농기구이고 나무에 쇠붙이 기워 호미·낫 등 농사일에 편리 기구뿐 사람의 힘으로 했던 것을 80년대부터 농기계의 발전으로 논 밭갈이 소 쟁기는 사라지고 콤바인·트랙터·이앙기 등의 농기계가 모심고 논갈이하고 벼, 보리, 베는 자동화 기계 영농시대가 현 농촌의 시골 풍경이다.

옛날 농촌 시골 일꾼들은 봄이 되면 논갈이를 시작해 3월이 되면 못자리, 하지 전후로 모심어 놓고 망종 전후에는 보리 베어 탈곡하고 밭에 여름작물 심었다. 남자들은 논농사, 여자는 밭농사를 분담하는 시절에 초·중복, 말복 삼복더위 논밭에서 잡초 제거 땀으로 범벅된 농사꾼들의 비참한 모습이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나갔다가 저녁 어두워서 집에 들어오는 시절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울며불며 온몸이 흙범벅이 되었고 70년대 이전 우리 농촌경제 가난에 쪼들려 남의 집 하루 일해주고 품삯으로 남자는 쌀 한 되, 여자는 보리쌀 한 되씩 받고 하루 12시간 품삯 받아 식구들 먹여 살리는 세월을 보냈다. 가난한 농부들은 일년 내내 식량부족으로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그 시절 후손들은 알지 못하고 밤에 대한 개념도 잊고 지내는 현실이다.

7, 8월이 되면 월동준비로 남자들은 산에 올라 나무를 베어 말린 다음 집 근처에 쌓아두고 겨울 난방 연료로 썼다. 도시 사는 사람들은 나무 짐 사서 겨울 연료로 쓰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석유 곤로, 석유 보일러에서 LPG 도시가스, 전기장판, 가스보일러 시대 돌아오니 산골이나 들에는 나무가 천지인데도 베가는 이 하나 없는 세상 되었다. 9~10월 논벼 수십 명씩 무리 지어 논바닥에 베어 말린 다음 볏단 묶어 논둑에 열 단씩 쌓아두고 밭걷이, 보리갈이 동지 안에 끝내놓고 들벼 집으로 날라 마당에 눌러두었다.

동지 섯달 품앗이 벼 타작해서 어리통 만들어 쌓아두고 부자들은 어리통 만들고 가난한 집은 당일 정리했다. 부자들은 설 지나고 정이월에 어리통 털어 작석(벼 가마에 담는 일)하여 정리했다. 오늘의 농촌 가을걷이는 콤바인으로 논바닥에서 벼 탈곡하여 화물차에 포대로 싣고 정미소에서 건조, 아침에 백미로 집으로 들어오고 당일 수매 등으로 처리하고 통장에 입금되는 시대다. 이것이 어제와 오늘의 농촌 농사짓는 풍경이다.

우리 조상님들이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고생하고 고달프게 살아왔는지 회상해 보면 노동에 못 먹고 돈 없어 병원 못 가고 60 회갑 못 살고 돌아가신 젊은 청춘 영혼, 우리 조상님들 불쌍타 아니할 수 있을까. 오죽했으면 회갑 잔치 꼭꼭 찾아 했겠는가. 지금은 회갑 잔치가 없어진 지가 오래되고 팔십에 생일 새고 구십 잔치 세월 앞에 오늘의 후손들이여 고생하신 선조님들의 신위(信位) 전에 정성 다해 보살피고 내 조상 내가 안 모시면 누가 내 조상 모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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