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순 희        덕진면 청림길
안 순 희        덕진면 청림길

'농촌' 하면 떠오르는 것이 가난과 무지였기에 어떻게든 자식들을 가르쳐 도시로 내보내는 것이 우리 세대의 열망이었다. 가 보지 않은 곳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으로 도시의 산비탈 판자촌이라도 비집고 자리를 잡았던 이들이 목표했던 꿈을 이루기도 하고 좌절을 맛보기도 하면서 오늘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것도 사실이다. 국민소득 3만불에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나라가 되었는데 "행복한가요 그대"란 물음에 선뜻 "예" 라고 답할 사람은 몇 %나 될까?
성장기에 살았던 우리는 늘 신바람이 났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먼 미래가 더 많이 좋을 거란 기대가 우리에게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주었으므로 등줄기를 흐르는 땀은 즐거움이었다. 가난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 주겠다는 소명 의식이 에너지가 되어 우리를 달리게 했다. 논 팔고 소 팔아 대학 공부시켰고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해서 경제적 성과도 이루었는데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

오늘의 번영을 이룬 원천인 농어촌은 빈껍데기만 남아 병든 노인들이 연료비 걱정에 마을 경로당에 모여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더 이상 할 일도 꿈도 없는 노인이 지키는 마을에 캄보디아 여성이 시집와서 낳은 세 살짜리 아이가 유일한 미래여서 가끔 경로당에 오는 날이면 어른들의 사랑이 넘쳐 얼른 집에 가자고 보챈다.

다행히 작년부터 청년창업농 제도가 생겨서 군 단위에 20여 명 대상자가 선정되어 활동을 시작한 일은 분명 비어 가는 농촌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어서 희망이 보인다. 3년 전에 뜻이 있어 직장을 접고 내려온 막내아들도 작년에 창업농으로 선정되어 힘을 얻게 되었다. 1년간 교육이며 여러 교류가 있어 지역의 새로운 세력으로 단결하는 현상은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흐뭇했다. 모두가 학교 졸업하고 꿈을 찾아 도시로 갔던 청년들이어서 각오가 대단했다.

지난번 우리 집 집들이에 가족들 데리고 와 주었는데 새댁들이 어찌나 야무지고 예쁘던지, 조용하던 집에 꼬맹이들이 모여 뛰고 달리고 소 보겠다며 아빠 손 이끌고 축사로 가는 등 한바탕 소동을 피웠지만 참 오랜만에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도 다녀 보았고 도시에서 직장생활도 해본 청년들이 농촌에서 꿈을 보았다는 사실이 대견했다. 어둡고 가난해서 떠났던 농촌에 숨겨진 보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것은 분명 희망적인 일이다.

사람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 열정이 생기고 신바람이 난다. 가난할 때는 부자 되는 것이 꿈이었다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더 높은 곳을 보니 출세했다는 사람들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도 않으니 행복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부모 세대가 땀 흘려 이룬 부가 넘치니 재미없어 지겹다는 재벌 삼세들의 일탈은 분명 큰 충격이다.

공부하라고 보낸 외국 유학에서 배워 온 것이 불법과 마약이라니, 흰 칼라에 검정 교복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세대에게 외국 유학은 특별한 사람들이 가치 있는 일 하려고 가는 줄 알았다. 인간은 어차피 자연의 일부여서 순리를 거스르고는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지식과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에 특별히 귀한 것에 대한 구분이 흐려져서 그만큼 열정도 식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은 후대에게 무엇을 물려줄까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해 주면 이루려는 노력도 할 필요가 없어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버릴 것이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열정과 신바람을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창업농 육성 정책은 참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비어 있는 곳을 개발하는 명분이 있고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부모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 줄 수 있으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는 효과도 있다.

더 많은 청년들이 돌아와 비어 있는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뛰노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밭이 되어 버린 운동장을 바라보자니 가득 찬 사람들 틈을 부대끼며 찾아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던 그 옛날의 운동회가 생각나 쓸쓸한 마음에 그때의 응원가를 가만히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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