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영암에서 ‘황군 위문을 위한 부녀자 모집’ 등 위안부 동원과 관련된 말을 이웃에 전했다는 이유로 주민 4명이 ‘유언비어(조언비어) 유포’로 금고형 또는 집행유예의 형사 처벌된 판결문 2건이 최근 확인됐다. 재판은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이 1938년 10월 7일과 27일에 선고했으며, 이는 일제가 위안부 동원 실태를 은폐·통제하기 위해 ‘소문 유포’ 자체를 군형법 위반으로 다스렸음을 보여주는 1차 사료이다.
판결문은 식민 권력이 군사법과 식민지 사법을 동원해 정보 유통을 범죄화하고, 구장 등 지역 행정조직과 결합해 생활 세계까지 침투했음을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이는 전시동원 체제에서 사실 자체보다 ‘말’과 ‘두려움’을 통제하는 것이 통치의 핵심 수단이었음을 드러낸다.
이 사건은 “모집이 진행 중”이라는 주민 간 전언과 부녀자 수 조사 등 일상적 정황이 판결문에 기록되면서, 위안부 동원이 지역 사회에서 실제 진행되고 있었다는 정황증거를 제공한다. 동원을 부정·축소하려는 논리에 대해 국가문서(판결문)가 오히려 동원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확인해 주는 증거다.
사건의 당사자 다수가 딸을 둔 어머니, 혹은 ‘딸 가진 집은 빨리 시집 보내라’는 공포의 언어에 휘말린 이웃들이었다. 이는 식민-전시 체제가 여성의 신체와 혼인, 가족계획까지 규율했고, 소문을 말한 것조차 처벌 위협에 놓였음을 보여준다. 공권력의 물리적 강제뿐 아니라 성·가족 영역을 겨냥한 구조적 폭력이었음을 시사한다. 위안부 연구는 오랫동안 생존자 증언과 일부 행정문서에 의존해 왔다. 이번 판결문은 사법 기록이라는 다른 축을 통해 ‘동원–은폐–처벌’의 메커니즘을 입증한다. 영암의 지역사 차원의 연구와 국가 차원의 서술을 연결하는 매개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영암군은 후손 발굴과 국가 차원의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문은 ‘동원 사실’만이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하는 행위까지 범죄화했던 식민지 통치의 실체를 증언한다. 이는 위안부 문제가 단지 개별 피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조직적 은폐·검열과 결합한 구조적 폭력이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단서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와 같은 1차 사료의 지속적 발굴과 교차검증을 통해 지역의 기억을 공적 역사로 정착시키고 피해자·당사자와 그 후손에게 실질적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