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192] ■ 구림마을(102)
상대(上坮)와 하대(下坮)로 구분되었던 포구
옛 문헌을 보면 상대(上坮)와 하대(下坮)로 나누어 불렀는데, 지금은 그냥 ‘상대포’라고 부른다. 1943년부터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수많은 상선과 어선이 오가던 서호(西湖)와 상대포구는 그 명성을 잃고 작은 웅덩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지금은 상대포 복원사업으로 인하여 신흥동 앞까지 확대되고 ‘상대정’이라는 정자도 하나 건립되었다. 서호강을 거슬러 올라가 영산강을 거쳐 서남해 큰 물로 향하는 물길을 잃은 상대포에는 조그마한 나룻배 한 척이 외롭게 떠 있다. 이 정자에 앉아 상대포를 바라보다가 문득 감흥이 일어 시 한 수를 읊어보았다.
상대포에서
흐르는 것이 꿈이다
저 들로, 저 강으로, 저 바다로 흐르다
끝내는 다시 서호강 거슬러 올라와
그대의 핏줄을 타고 흐르고 싶다
지난밤에도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주지봉 골짜기 골바람 힘을 빌려
밤마다 묶인 몸 뒤척이며 물보라를 일으켜보지만
파도는 결코 구림천 둑을 넘지 못한다
수심이 이리 얕은데 어찌 해일이 일까
얕은 물에도 뜨는 것이 있다
상대포에는 배 대신 조각달이 뜬다
흐르지 않는 것이 상대포 뿐이랴
그대는 지금 흐르고 있는가
흘러 어디까지 왔는가
양지바른 강기슭에 닻을 내리고
혹 오던 길만 자꾸 뒤돌아보고 있진 않은가
조행립의 상대포 관련 시
태호공 조행립의 문집 ‘태호집’에는 회사정과 상대포를 읊은 시가 여러 편 있는데 그 당시 상대포가 얼마나 풍광이 아름답고 번성한 포구였는지를 말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조행립의 시 몇 수를 소개한다.
취하여 서호 상대에 앉아 운을 부르다
(醉坐西湖上坮呼韻) 3수(三首)
뾰족한 산봉우리 홀로 외로운 구름 표면을 누르고
죽도는 쌍으로 백석 호수에 떠 있네
여항의 누와 대는 모두 대합조개 같고
강산의 연기와 달은 절반이 그림인가 의심되네
모래톱의 갈매기 일제히 일어나니 긴 휘파람에 놀랐고
노래 소리 멀리 들려 상도에 통하였네
오늘 즐겁게 유람함을 참으로 멋들어진 일이니
서로 전하여 서로 마시면서 기울인 술병이 얼마인가
尖峯獨壓孤雲表 竹島雙浮白石湖
閭巷樓臺全似蜃 江山烟月半疑圖
沙鷗齊起驚長嘯 歌響遙聞徹上都
今日歡遊眞勝事 相傳相飮幾傾壺
남쪽 지방에서 십 년 동안 머리에 눈만 가득한데
오늘 거북 바위에 문득 올라 유람하네
노란 꽃 흰 꽃 핀 데다 흰 막걸리 겸했고
두세 마디 기러기 울음소리 가을임을 알겠네
일천 산에 단풍잎 지니 회포가 상하고
조각달은 빛을 더하여 헤진 갖옷 비추네
몹시 취하여 크게 노래해도 흥취 못다 하니 한 하늘 긴 피리 소리만 다시 유유하네
十年南國雪盈頭 今日龜巖却上遊
黃白花開兼白酒 兩三鴻叫得三秋
千山葉落傷懷抱 片月輝增照弊裘
大醉高歌難盡興 一天長笛更悠悠
덧없는 인생 흘러가는 물과 같음을 실컷 보았으니
어찌 단란한 모임에 마음의 불평을 토하지 않으랴
서호의 밝은 달은 동쪽을 따라 솟아오르고
남방의 차가운 매화는 북쪽을 향해 피도다
기이한 바위의 쌍학은 울음소리 멀리 통하고
화려한 촛불 하룻밤을 비추고 술은 잔에 가득하네
늙은이와 젊은이 생각을 잊고 옷깃 가지런히 하여 앉았으니
긴 피리 높은 노래소리 흥취를 재단하지 못하네
飽見浮生同逝水 豈無團會吐崔嵬
西湖皓月從東出 南國寒梅向此開
雙鶴奇巖鳴徹遠 一宵華燭酒盈盃
想忘老少齊襟坐 長笛高歌興不裁
<출처: 태호집, p.454>
죽도(竹島)는 서호(西湖)가 간척되기 전에는 대죽도와 소죽도로 나누어진 제법 규모가 있던 섬이었다. 이 시에서 조행립이 서호(西湖)를 ‘백석호(白石湖)’로 묘사하고 있는 게 흥미롭다. 갯벌 한가운데 흰 돌이 솟아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이 흰 돌을 ‘백의암(白衣岩)’이라고 부른다. 조선 말기까지 죽도는 영암 선비들이 즐겨 찾던 소풍 장소였다.
위의 시에서 구암(龜巖)에 올라 유람한다고 읊었는데 구암은 ‘거북바위’로 도선국사 탄생설화를 간직한 ‘국사암’을 말한다. 조행립의 다른 시에서는 구암 곁에 살림집이 있다는 구절이 보인다. 한편 태호 조행립은 여러 정자 중에서도 회사정을 가장 즐겨 찾았고 또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그의 문집에는 회사정을 읊은 시가 수십 편이 넘는다. 아래 시에서는 회사정에 올라 서호를 바라보며 상선이 끊임없이 오고 가는 풍경을 읊었다.
회사정에서 읊다(會社亭吟)
그림 같은 집이 티끌 세상 밖에 우뚝 솟아
많고 작은 몇몇 인가를 내려다보고 있네
고기 잡는 늙은이 아침마다 그물 들어 올리는 게 즐겁고
장사꾼의 배는 돛대를 연결하여 밤마다 호드기를 부네
아름다운 손님 끊임없이 와서 모임이 극진하고
맑은 술동이 빙 둘려 꿇어앉은 앞에 많기도 하네
호수와 산이 저물려 하니 생황과 노래가 울리고
밝은 달이 동녘에 떠오르니 흥취 더욱 보태지네
畵閣苕嶤塵外出 俯臨多小幾人家
漁翁擧網朝朝樂 商舶連檣夜夜笳
佳客聯翩來會極 淸樽環列跪前多
湖山欲暮笙歌發 皓月東升興轉加
<출처: 태호집, p.486>
1565년 구암 임호가 창건한 회사정이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소실된 뒤 1640년경 태호 조행립이 앞장서 마을 주민들과 힘을 합하여 회사정을 중건했다. 새로 지은 회사정에 손님들이 끊이지 않아 이들을 접대하느라 맑은 술동이가 회사정 마루에 가득한 모습과 서호 상대포구에 돛을 단 상선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구림마을은 물길을 잃고 완전한 농촌으로 변모했다. 상대포는 이름만 남긴 채 멀리 서호강을 바라보며 다시 옛 영화가 찾아오길 기대하고 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