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더위는 살인적이다. 산책 겸 밖에 나가면 숨이 막히고 볼이 따가움을 느낄 정도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고 세계적인 무더위, 물난리 등 온 세상이 이상기후로 인해 아까운 생명까지 앗아가는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요즘 한낮의 기온이 39도를 넘어가고 10일 넘게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며칠 전 갑작스러운 폭우로 많은 사상자가 속출하고 집을 잃고 이 더위에 집단 피난 생활을 하는 이재민들도 많이 발생했다. 가슴이 아프다. 119대원, 군인 등 공무원과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은 이 더위도 잊은 채 젖은 가구를 씻어 햇볕에 말리는 자원봉사가 한창이다. 어느 지하철에서는 출입문이 가열되지 않도록 외부에다 물을 뿌리는 광경도 목격된다. 하루빨리 이 어려운 순간들이 정리되고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달 전에 손녀들이 방학하는 날짜를 고려해서 바닷가로 2박 3일 여름 여행을 준비했다. 며칠 전부터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는 벌써 가방을 정리했다가 다시 풀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방학이 되자마자 친구들은 벌써 해외로 나갔다고 부러워하는 모습이 가슴 한복판에 아픔으로 느껴진다.
다행히, 우리가 계획한 날짜는 어느 정도 수해복구도 정리되어 마음 한편에 불편함은 해소된 상황이다. 그러나 더위는 여전히 참기 힘든 날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의 아스팔트 거리는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듯 달구어졌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
드디어, 아침 일찍 KTX 가족석에 앉아 서울을 벗어나 부산 해변으로 기차는 달린다. 두 손녀는 신기한 듯 창가에 앉아 밖을 구경한다. 아직도 군데군데 복구가 안 된 곳이 있다. 3시간쯤 지나 해운대에 도착했다. 해변에 위치한 호텔에서 본 해수욕장은 서울의 더위를 잊은 채 모두 행복하게 보인다. 더욱이 가족끼리, 손녀와 함께 물놀이하고, 모래 놀이하는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가는지? 어렵게 만든 모래성은 잔잔하던 파도가 심술을 부리듯 갑자기 달려와 순식간에 앗아가 버린다. 파도 중에는 좋은 파도도 있고, 방해만 하는 얄미운 파도도 있다. 그래도 재미있다. 파도에 의해 흩어져버린 망가진 모래성을 또 만들어본다, 더우면 바닷물로 뛰어 들어간다. 밀려오는 파도에 물도 한 모금 들어 마신다. 매우 짜고 토할 것 같다. 그래도 재밌다. 내가 항상 즐겨 인용하던 어귀가 생각난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잔잔해서 좋은 순한 파도가 올 때도 있고, 순식간에 위험을 느끼는 험한 파도가 올 때도 있다. 인생의 행로도 똑같은 것 같다.’ 해변에서의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니 아쉽기만 하다. 야간에는 유람선을 타고 보는 해변의 야경을 구경하니 천국이다. 손녀들도 나름 추억을 쌓기 위해 열심히 질문하고 소리도 질러본다. 행복하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값어치 있는 행복한 시간은 바로 이 순간인가 보다.
이 무더위 속에서도 해변의 거리는 요란하다. 활기차다. 세상 근심 모두 잊어버리고 즐기는 것 같아 참 좋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와 함께 동백섬을 함께 거닐면 이 바쁜 세상을 잠시 잊고 이대로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해변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들을 축복해 주고 행복한 이 나라를 이끌고 가는 것 같다.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해 잠시 기도해 본다. 서로 미워하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고 살아가라고 충고해 주는 것 같다. 기후 이변도 일어나지 않고 매일 발생하는 안전사고도 없어지고 세상에서 전쟁이라는 참혹함도 안 일어났으며 하는 기도인 것 같다. 또 작은 소망을 소원해 본다. 내년에도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다시 이곳에 와서 추억 쌓기를, 매년 늙지 않고 건강하게 이곳에 오길 욕심 많게 소원해 본다.
3일간의 여유를 담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다. 직장이 있고 학교가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마음은 편하다. 여행객 모두 나름대로 눈을 감고 내일을 설계해 보는 것 같다. 손녀들도 피곤한지 예쁜 얼굴로 잠을 자고 있다. 천사 같다. 이 애들이 잘 자라서 나름대로 행복하고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손녀로 자라길 고운 얼굴을 보면 최고의 정성으로 최선의 기도를 해본다. 기차는 빨리 달린다. 분주함이 있고 경쟁이 있고 부유함이 느껴지는 우리의 서울이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더위도 많이 무뎌졌다.
8월 이때쯤이면 현역으로 근무할 때 느끼던 불문율이 있다. 을지훈련이 끝나는 8월 중순이면 군인들은 진급 대상자가 발표되니 마음도 싸늘하여 날씨는 덥지만, 마음은 벌써 찬바람을 느낀다고들 한다. 이제 예비역이니 진급에 목메는 긴장감은 없어졌다. 이제 8월만 잘 버티면 진짜 더위는 그만 물러나고 다시금 우리 곁에 올 시원한 가을바람을 또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