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188]
■ 구림마을(98)

호은정 전경. 입구에 오래된 소나무가 한그루 우뚝 서 있다. 
호은정 전경. 입구에 오래된 소나무가 한그루 우뚝 서 있다. 

육우당에서 호은정 가는 길

박흡 장군을 비롯한 6형제의 우애가 깃든 육우당을 뒤로 하고 이제 구림마을의 숨은 비경을 간직한 호은정(湖隱亭)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곁에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대동계사가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당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지 오래되어 잡초가 무성하다. 돌담길을 지나 구림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남송교 아래로 월출산 도갑사 홍계골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도갑저수지를 거쳐 죽정마을과 구림마을 가운데를 곡선으로 가르며 상대포로 흘러간다. 유장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회사정 솔숲과 어우러져 운치 있는 풍경을 선사한다.

다리를 건너면 옛 구림중학교 터에 자리한 도기박물관이 나그네의 발길을 유혹한다. 하지만, 여기는 다음에 방문하기로 하고 호은정을 향해 계속 발걸음을 옮긴다. 구림천을 따라 서쪽으로 백여 보를 가면 제법 큰 웅덩이가 하나 나오는데 이곳은 간척지가 생기기 전까지 포구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옛 문헌을 보면 상대(上坮)와 하대(下坮)로 나누어 불렀는데, 지금은 그냥 ‘상대포’라고 부른다. 이 상대포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태호 조행립이 상대(上坮)를 유람하며 읊은 시 한 수를 소개한다.
 
취하여 서호 상대에 앉아 운을 부르다(醉坐西湖上坮呼韻) 

뾰족한 산봉우리 홀로 외로운 구름 표면을 누르고     
죽도는 쌍으로 백석 호수에 떠 있네     
여항의 누와 대는 모두 대합조개 같고     
강산의 연기와 달은 절반이 그림인가 의심되네     
모래톱의 갈매기 일제히 일어나니 긴 휘파람에 놀랐고     
노랫소리 멀리 들려 상도에 통하였네     
오늘 즐겁게 유람함은 참으로 멋들어진 일이니     
서로 전하여 서로 마시면서 기울인 술병이 얼마인가     
尖峯獨壓孤雲表 竹島雙浮白石湖
閭巷樓臺全似蜃 江山烟月半疑圖
沙鷗齊起驚長嘯 歌響遙聞徹上都
今日歡遊眞勝事 相傳相飮幾傾壺
<출처: 태호집, p.454>

죽도(竹島)는 현재 서호강 너머에 조그마한 야산으로 남아 있는데 서호(西湖)가 간척되기 전에는 대죽도와 소죽도로 나누어진 제법 규모가 있던 섬이었다.  ‘죽도가 쌍으로 백석 호수에 떠 있네(竹島雙浮白石湖)’라는 표현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조행립이 서호(西湖)를 ‘백석호(白石湖)’로 묘사하고 있는 게 흥미롭다. 갯벌 한가운데 흰 돌이 솟아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이 흰 돌을 ‘백의암(白衣岩)’이라고 부른다. 조선 말기까지 죽도는 영암 선비들이 즐겨 찾던 소풍 장소였다.

상대등(上坮嶝)에 자리한 호은정

호은정은 서호정 뒷동산(상대등) 소나무 숲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 상대포 대형 주차장 뒤편으로 대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사이에 작은 오솔길이 나 있다. 모퉁이에 접한 길이어서 자세히 봐야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솔숲에 가려진 정자가 하나 나온다. 외부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호은(湖隱) 최동식(崔東植 1860~1949)이 1933년에 은거지로 지은 정자다. 호은의 아들인 최현이 1961년 구림중학교에 기증하여 도서관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구림중학교가 구림고등학교 옆으로 이설된 후 한동안 방치되었다. 

1955년에 간행된 ‘호남누정총람’에 실린 호은정 원운시를 보면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정자를 지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호은정 원운(元韻)

땅이 개벽한 신령한 곳은 맑은 물가에 있고
새로 지은 작은 정자는 맑게 흐르는 물을 차지했네
전원으로 오라는 간청에 사람들의 바람은 지켰지만
늙고 게으르니 은자 같은 사람이라 하기에 부끄럽네
고향에서 사람들과 이웃되어 지난날을 추억하고
도원으로 온 나그네에게 오게 된 까닭을 묻네
때론 정자에 올라 어부와 나무꾼과 벗하고
베개 한 번 베고 누워 책 보며 모든 시름 잊네
地闢靈區鏡水頭 小亭新築占淸流
歸休勉副免曺願 老懶羞稱隱者流
梓里成隣懷往昔 桃源有客問來由
登臨時共漁樵件 一枕看書儘忘憂
<출처: 영암의 누정, p.398>

호은정 중수에 관한 짧은 추억

호은정은 정면 삼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 구조다. 네 귀퉁이 처마 끝에 보조 기둥을 받쳤다. 필자는 2003년 봄에 호은정에 들렀다가 서까래 한쪽이 무너지고 기둥이 5개나 썩어가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사랑채는 이미 지붕이 무너져 내린 상태였고, 호은정도 이대로 두면 머지않아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 당시에 도기박물관의 전신인 도기문화센터에서 이화여대 나선화 교수의 주관으로 도자기와 관련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김철호 군수, 박태홍 문화관광과장이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도기문화센터를 방문했다. 때마침 그곳에서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던 필자는 김 군수를 만나 조심스럽게 호은정 상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상대등 호은정으로 안내를 했다. “호은정은 구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정자인데, 이렇게 허물어지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꼭 복원해서 후손들에게 전해줘야 한다”고 간곡하게 요청을 드렸다. 

김 군수는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호은정의 규모와 범상치 않은 기상을 보더니, 현장에서 주무과장과 실무자를 불러 바로 정자 복원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그 이후 영암군은 썩은 기둥과 서까래를 교체하고 마루판도 보수했다. 정자 곁에 지붕째 무너져 내린 요사채도 철거하고 그 자리에 15평 규모의 한옥을 새로이 지었다. 호은정은 그렇게 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호은정을 볼 때마다 문화유산 보전에 한 몫한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이 든다.<계속>  

글/사진 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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